[김동식의 문화읽기] 장나라식 컨셉의 성공

현재 한국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은 장나라이다. 2001년 하반기에 가수로 데뷔해서 3편의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최근에 2집 앨범을 발표했다. 대단히 일천한 연예 경력인 듯도 하지만, 현재 장나라의 인기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장나라는 연기자·가수·MC·영화배우·광고모델 등으로 활동하는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그녀의 매력이 두드러지는 영역은 아무래도 광고 쪽이 아닐까 한다. 장나라는 공익광고와 상업광고 모두에서 가장 선호하는 모델이다. 우유 마시기 공익광고의 모델이며, 공명선거나 광주영화제와 같은 공식행사의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상업광고는 20편 가량을 찍었는데, 이동통신·패스트푸드·의류·화장품·자동차·신용대출·샴푸·소주·라면·음료 등과 같은 다양한 광고들에 출연했다. 또한 선거 광고와 모바일 게임에는 장나라의 아바타까지 등장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가히 장나라가 관여하지 않는 대중문화의 영역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듯이 장나라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매력은 편안함이다. 장나라가 세대, 연령, 성별과 무관하게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 역시 한없이 편안한 이미지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나라의 편안한 이미지는 어떻게 구성된 것일까. 타고난 재능과 부단한 노력, 신세대다운 솔직담백한 성격, 아버지의 지극한 보살핌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떤 부분이 있는 것도 같다.

어쩌면 장나라가 보여주는 편안함의 배후에는 대중문화와 관련된 중요한 코드들이 숨어 있을 지도 모른다.

데뷔 당시 장나라의 메인 컨셉은 섹시함이었다. 여성스러움을 강조한 의상과 헤어스타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자 했지만, 결과는 한 달도 못돼서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연예계에는 더 섹시하고 더 고혹적인 매력을 뽐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용어를 빌려서 말하자면 구별짓기(distinction)에 실패한 셈이다. 하지만 시트콤 ‘뉴 논스톱’에서 ‘어리버리’한 여대생 역할을 맡고,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에서 순박한 시골처녀를 연기하면서부터 장나라를 특징짓는 ‘편암함’이 확고하게 형성되었다.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섹시함을 내세운 전략은 실패하고, 어리버리한 푼수를 내세운 전략이 성공했으니 말이다. 섹시함이 푼수스러움에 어이없이 패배한 상황인 셈인데, 여기에서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섹시함과 푼수스러움 사이에는 접근가능성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관능적인 매력은 접근하는 사람에게 도덕적 위반에 대한 자의식을 은연중에 강요한다.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 짓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 말이다. 그래서 섹시함은 멀리서 훔쳐보는 관객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푼수스러움은 일반대중이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그 어떤 여백을 제공한다. 일반대중은 어리버리한 이미지에서 자신들이 참여할 수 있는 지점들을 무의식적으로 발견한다. 섹시함 앞에서는 거절당할 두려움이 먼저 앞서겠지만, 어리버리한 스타에게는 몇 마디 말이라도 붙여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현재 장나라는 성적인 이미지를 전혀 내보이지 않는다. 장나라가 보여주는 편안함의 배후에는 탈성화(脫性化:desexualization)의 전략이 유연하게 작동되고 있다. 섹시함을 강조하는 경우 섹시한 대상을 소유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과 섹시함을 멀리서 훔쳐볼 따름인 다수의 사람으로 수용자층이 나뉘어 진다.

반면에 탈성화의 전략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경우, 대중의 접근가능성이 확장되는 양상을 보인다. 어린이들에게는 착한 이모나 고모, 중고등학생들에게는 옆집 누나나 언니, 청년층에게는 사랑스러운 연인, 중장년층에게는 귀여운 자녀, 어르신들에게는 손녀라는 다양하면서도 다층적인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장나라가 세대간의 문화적 차이를 넘어 상품성과 공익성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성적 이미지는 최대한 약화시키고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킴으로써 친밀성과 편안함을 창출하는 전략이 그것이다. 1980년대 중반의 최진실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문화적 전략이, 2002년에 장나라를 통해서 확대 재생산되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입력시간 2003/01/0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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