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匠人열전] 인터넷 시대 바둑의 기수 문용직 4단

"사이버는 바둑의 새공동체 실험장"

인터뷰의 막바지 마치 쫓기기라도 하듯 그는 드르륵 말했다. “아, 빠뜨렸는데, 바둑만큼 존재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없어요.” 자기 실존의 핵심에 대한 말을 하면서도 그에겐 말에 무게를 보태려는, 배운 자 특유의 어떠한 제스처도 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냥 툭 내던진 것같은 한마디에 외곬같기만 하던 그의 존재가 일시에 환해져 왔다. 깡마른 체구를 버텨주는 강단(剛斷)의 요체는 그런 식으로 던져졌다.


순수의 열정을 품은 불혹의 소년

문용직 4단(44)은 평소 논리정연하게 차근차근 이야기 하다가 중요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 붓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때로 말을 더듬기까지 하는 것은 그래서다.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인 그의 부인 이향숙씨(42)는 “말을 안 더듬을 때에는 거짓말하는 것”이라며, 더듬으며 하는 말에 무게를 둘 정도다. 불혹의 그에게서는 순수한 열정을 품은 소년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진다.

서강대 영문과-서울대 정치학 박사라는 만만찮은 전력 때문일까, 그의 말 하나 하나는 묵직한 울림을 갖는다. 1994년 그의 박사 학위 논문 ‘한국의 정당 정치-민주화 과정을 중심으로 1985~1992’는 5공을 중심으로 당시 정당들의 이합집산 행태를 학문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또 바둑의 기초를 부와 권력의 균점 현상으로 해석, 국회에서 의원들이 벌이는 일련의 행태를 재화 지키기와 나눠먹기로 바둑을 해석하는 그의 바둑론은 이제 국내 바둑팬에게 낯설지 않은 논법이다.

1998년 그가 쓴 ‘바둑의 발견’(부키 펴냄)은 덤 규정과 포석의 변천 등 현대 바둑이 정착하기까지 치열히 전개됐던 이면사를 정치학 용어까지 구사해 가며 풀어 낸 역저이다.

학문적 수련을 받은 덕에 책은 잘 기획된 한 편의 논문에 가깝다. 한ㆍ미ㆍ일 3국의 저술과 논문 150여편을 섭렵하고 씌어진 덕택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토마스 쿤, 레비 스트로스, 칼 포퍼, 장 피아제 등 인문 사회 과학의 명저들은 원서로 접했다. 평소의 내공이란 바로 그런 것일 지 모른다.

그가 바둑의 사이버화 작업에 열심이다. 바로 거기 바둑의 미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토혈지국(吐血之局)’ 등 명대국에 구체적 이름 붙이기란 이미 옛날이다. 요즘은 제아무리 흥미진진한 대국이라도 xx전 제 x국 처럼 숫자화할 뿐이다. 이처럼 수요와 공급 체계 아래에 기호화의 길에 놓인 바둑이 걸어 갈 다음 길이 바로 사이버라는 설명이다.

서울 명동성당 길 건너편 중구 초동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사이버 기원 오로(www.cyberoro.com)의 이사로서 많은 시간을 거기에 할애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때로 작업의 열기가 오르면 밤을 새우는 일도 마다 않는다.

홈페이지상의 서비스 중 ‘문박사 하이라이트’의 주인공이 바로 그다. 고문서에 관한 박식을 기초로 해 바둑의 기본 원리부터 의심하고 캐들어 가는 인기 코너다. 2000년 5월 한국기원이 설립한 ㈜세계사이버기원은 다양한 서비스 덕택에 2002년 7월의 경우, 일일 동시 접속자 10만명 기록까지 달성했다.


바둑의 변혁 몸소 이끄는 선구자

그는 “이제 바둑은 사이버라는 계기를 통해 새로운 도덕 체계를 수립해 가고 있다”며 “전에 없던 공동체 실험”이라고 말했다. 오로를 통해 개인 대국, 강의, 다면기 등을 리얼 타임으로 치르기도 하는 그는 이 시대 바둑의 변혁을 몸소 체험하고 확산시키는 장본인이다. 인간적 면은 줄어드는 대신, 새로운 시장 논리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관건은 유료화의 성공 여부에 달렸다. 2002년 8월 유료화를 실시한 사이버 오로는 현재 회원 4만으로, 2위인 네오스톤(Neostone)을 상회한다. 회사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각각 개성적인 공동체가 출현하는 것도 사이버 시대 바둑이 갖는 큰 가능성이라는 지적이다. 오로의 경우, 100여개 동호회원 2,000여명이 온ㆍ오프라인 모임으로 새로운 규범을 창조해 나가고 있다.

혁명적으로 변한 바둑 패러다임에서 그는 ‘여론 주도층’으로 자임한다. 공동체 구성원의 요구를 집합하고 체계화 시켜야 한다는 책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 기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이버에 적응하지 못 하면 프로 활동에 제한을 받게 된다는 현실적 ‘위협’이기도 하다.

문 4단은 “국내 프로 190명 중 4분의 3은 이미 인터넷과 친숙하다”고 말했다. 10~20대는 물론, 인터넷에 적응한 40대까지 포함시킨 수치다. 한국과 중국의 프로가 바둑을 즐길 수 있는 기술적 토대가 바로 인터넷이다.

오로가 기술을 제공, 중국 최대의 사이버 바둑 사이트인 신랑(新朗ㆍwww.sina.com)의 경우, 한국-중국 간에 서버가 연결돼 창하오 9단 등 고수들도 애용하고 있다. 50연승을 거둔 ‘용비호’라는 ID의 기사가 딩웨이 7단으로 뒤늦게 밝혀져 큰 화제가 됐던 곳이다.


한ㆍ중ㆍ일 사이버바둑망 구축

그러나 일본에 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국 세계 최강, 중국 2강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3위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한국이 진출한다. 12월 중순, 오로가 일본의 인터넷 업체 테라크리아(www.netgame.co.jp)와 시작한 서비스가 그것이다.

일본이 유달리 뒤지는 데 대해 문 4단은 “286 수준일 정도로 신기술에 약한 일본의 국민성과 전반적인 인프라 부족”을 이유로 꼽는다. 그러나 일본도 머지 않아 사이버 바둑 추세를 따라올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렇다면 옛 방식의 직접 대국은 어떻게 살아 남을까? 문 4단은 “프로의 경우는 품격 있는 바둑 형식으로, 아마의 경우는 나름의 방식으로 즐긴다는 차원에서 명맥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 봤다. 그는 혁명적으로 전개되는 바둑의 존재 양태에서 중핵에 위치한다.

일반 기사라면 기원이 활동의 중심이다. 그러나 사이버 작업과 저술 작업 등 기원 밖에서 이뤄지는 그의 분량은 우리를 압도한다. 또 섬세하다. 문용직이라는 인간 자체는 포석과 정밀한 수읽기가 어우러져 완성돼 가고 있는 한판의 숨 긴 바둑이다.

1998년부터 2000년 그는 인터넷 전문가, 사회학자, 경제학자 등을 대상으로 1년에 한 두차례 열리는 바둑 심포지엄 ‘삼우반(三隅反)’을 주재하기도 했다. ‘논어’에 나오는 말로 ‘정신 차리고 공부나 하라’는 뜻이다. 그 표현을 빈다면 그는 정신차리고 바둑을 전파하는 일에 몰두해 온 셈이다.

“책을 쓰고 나니 책이 나를 구속하기 시작했어요. 헤겔의 말을 빌면 내 책에 의해 내가 소외된 거죠.” 그러나 책을 쓴 지 5년이 지난 요즘, 돌아 보니 쓸 게 쌓였다. “바둑 실력은 분명 줄어 들었어요. 기권을 잘 하는 편이죠. 두고 싶을 때 두지만, 그래도 프로라는 의식은 항상 있죠.” 그는 세속적 가치에 구애받지 않는 삶,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 대해 이야기 했다.

사진 취재 요구에 놀라우리 만치 성의껏 응하면서 그는 “제일 밉게 나온 사진을 꼭 써 달라”고 별난 당부를 했다. 포장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한 남자의 순수한 열정에 가식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것은 “집사람은 정말 다행스럽게도 바둑은 안 둔다”는 말은 “집안이 어지러우니 제발 밖에서 만나자”는 말과 교묘히 어울렸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안다. 그는 “지금 비록 인터넷 일을 하지만, 나는 인터넷 마인드가 없다”며 “사이버 세계에 잠깐 발을 담가 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전공인 정치학에 이제는 관심이 없다. 그는 “정치의 세계를 안다는 게 내게 삶의 행복을 주지 못 했다는 사실을 이제 깨닫게 됐다”며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리 늦더라도 대범하게, 가차없이 때려 치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도 조직은 조직이다. 여타 프로 기사들이 그렇듯 그 역시 조직 생활과는 생체 리듬이 맞지 않는다. 또 대학이란 폐쇄적 조직내에서 이뤄지는 말기적 행태는 자신과의 이질감만 확인시켰다. “웃으면서 담 타넘기, 베끼기 등 정치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데죠.”


막힘없는 삶을 꿈꾼다

대학 사회와 심정적으로 완전히 결별한 덕택일까. 빛 바랜 청바지 차림의 그는 전화 통화에서도, 인터뷰에서도 소년처럼 깔깔 거리며 잘 웃었다. 언제고 훌훌 떠날 수 있는 무애(無碍)의 삶을 꿈꾸고 있었다. 또 “승부의 세계에만 매달리지 않았으므로 ‘바둑의 발견’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라는 그의 말은 여운을 남긴다.

지금의 인터넷 작업에서 빠져 나오는 날부터 그가 세상과의 새로운 조우를 계획할 것이라는 기대는 그래서 가능하다. 그는 “프로가 됐다는 것은 자기와의 계약일 뿐 아니라 사회와의 계약”이라며 프로로서의 존재 의의를 새삼 돌이켰다.

“첫 책을 발표한 지 5년이란 세월 동안 나도 모르게 성장한 부분을 두번째 책으로 곧 토해 내고 싶다”는 다짐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인터넷의 단련을 즐겁게 받고 있는 그의 꿈은 ‘광의의 프로’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둑을 뛰어넘는, 바둑의 발견이다. 그는 “바둑을 보는 눈을 변화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바둑이라는 게임을 진지하게 대하게 되는 것은 삶을 다듬어 주는 어떤 아름다움이 바둑에 있기 때문이라는 믿음만은 변함 없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2003/01/07 15:53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