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타운] '품행제로'

'품행제로'의 조근식 감독은 단편영화 '발전소''워너비'의 연출을 맡은 바 있고 1999년 장선우 감독의 영화 '거짓말' 연출부를 통해 충무로에 첫 발을 디뎠다.

2002년 한국영화의 흐름은 족폭, 코믹, 복고였는데 그의 데뷔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품행제로'도 그런 충무로의 흐름을 답습하고 있다. 얼마남지 않은 2002년 끄트머리에 개봉된 '품행제로'는 2003년 한국영화의 흐름을 예고하기 보다는 피날레를 장식하는 성격이 강해 일부 영화 팬들은 "또 이런 영화!"하며 싫증을 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는 영화팬들의 이런 불만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있다. 그것은 바로 리얼리티보다 상상력에 기초한 만화적 영상이 그것이다. 두근 두근 첫사랑의 떨림도, 화끈한 주먹질의 아찔한 찰나도 모두 끝없는 상상력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상상력은 3D 그래픽 효과기술을 이용하여 보여지는데, 초감각적 스타일의 이 영상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줄 것이다.

'품행제로'의 영상과 사운드 트렉을 잠시 살펴보면 우선 영상에서 향수를 자극하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3D 컴퓨터 그래픽을 많이 썼다.

시대 배경은 아날로그 지만 비주얼 만큼은 디지털 신기술을 총동원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온라인 게임과 <런덤>, <아크> 등 극장용 애니메이션울 제작했던 3D 컴퓨터 그래픽의 '간판'격인 디징털드림스튜디오가 발벗고 나서서 상상만으로 가능했던 영상을 재현해 놓았다.

음악은 영화의 코믹하고 거침없는 표현이 낳은 이미지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DJ DOC의 이 하늘과 제이가 담당했는데, 영화 분위기에 딱 맞다 떨어지게 편곡한 음악을 귀로 들으면서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뮤직비디오를 즐기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 정도다.


전형적인 '류승범류'의 캐릭터

문덕 고등학교의 '짱'인 중필(류승범 분)은 같은 학년의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은, 그러니깐 정학을 받아 유급한 학생이다. 산발한 머리스타일에 촌스러운 하늘색 트레이닝복, 구겨 신은 운동화가 그의 캐릭터다.

인상을 구기며 길을 가다 침을 '찍'하고 뱉은 불량기 어린 중필은 전형적인 80년대 '고삐리 양야치'다. 담배 꼬나 물고 당구를 치다 지도 선생님의 단속을 피해 도망을 다니고 동네 아이들의 돈으 빼앗는가하면 롤러스케이트장이나 나이트 클럽 등을 들락거리며 껄렁껄렁 하는 게 하는 일의 전부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동네 미장원을 하는 어머니의 일손을 도와주려는데 우연히 손님과 눈이 마주치게 되고, 그 순간 중필 뿐 아니라 두 사람 모두 묘한 감정에서 사로 잡히게 되는데, 그녀는 바로 이웃 여학교의 '퀸'카 최민희(임은경 분)였다.

그때부터 중필의 삶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녀가 클래식 기타를 배운다고 해서 그 기타 강습소를 수강해 안 되는 기타를 억지로 치려고 노력하다든가, 평생 인연이 없을 것 같던 독서실을 간다든가, 성문기본 영어와 참고서를 끼고 다니는 등 그녀의 레벨에 맞추는데 여념이 없다.

중필은 서서히 변해 가고 있었다. 어둠의 자식이던 그가 서서히 핑크빛 사랑에 눈을 떠가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중필의 그러한 변화를 호락호락하게 봐주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문덕고 '짱'이라는 제왕의 위치를 위협하는 라이벌 상만(김광일 분)이 등장한다. 평소 중필을 짝사랑하던 여고생 '짱' 나영(공효진 분)이 중필을 위해 상만이를 응징하려다 오히려 그야말로 늘씬하게 얻어 맞는 사건이 발생한다. 나영은 민희와 같은 학교의 다니는 오공주파의 두목이다. 나영이가 두들겨 맞았다는 사실을 안 중필은 민희와의 사랑행각을 계속할 것인가, 나영의 복수를 함으로써 동시에 명예회복을 할 것인가 라는 갈림길에서 망설이다 결국 명예회복을 택한다.

상만과 치고받는 공방전이 계속되는 그 시간,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민희는 자신의 기타 연주회에 올 중필을 기다리는데… 결국 중필은 피터지는 공방전을 벌인 끝에 진정한 '짱'이라는 명예를 회복한다. 그러나 민희와의 핑크빛 사랑은 피빛으로 변해가고…


소재·아이디어 빈곤에 아쉬움도

초반부의 화려한 특수효과 때문인지 몰라도 중반부에 약간 지루한 느낌을 준다.

중간중간에 코믹터치가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밋밋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류승범이 능청스레 보여주는 자연스런 연기가 시선을 붙들어 매주고 있는데, 그것 하나만으로 이 영화가 지탱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조연들의 역할을 너무 절제시킨 탓이다.

얼마 전 개봉한 '색증시공'처럼 주연은 이야기를, 조연은 장면을 끌어나가는 터치를 잘 살렸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치 주연이 이 영화의 구세주 인양 초지일관 그의 터치로 이뤄져 있어 다른 이들의 연기는 그야말로 '쭉정이' 같은 느낌이다.

영화를 본 일부 관람객 중에는 류승범의 변화 무쌍한 표정밖에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충무로 영화계는 계속 코믹 위주와 오락성 위주의 영화를 주로 내놓고 있는데, '오버 리얼리티'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이런 코믹이 자꾸 반복되는 것은 충무로의 아이디어와 소재의 빈곤들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쉬움을 남긴다.

입력시간 2003/01/0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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