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있는 집] 서울 망원동 ‘고모네 낭화(浪花)’

겨울 추위가 위세를 더할수록 머릿속 가득 따뜻한 먹거리 생각이 절로 난다. 따끈한 팥죽은 동짓날뿐만 아니라 겨울철 내내 추위에 언 몸을 녹이고 뱃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맛난 먹거리로 요즘처럼 바람이 쌀쌀하게 부는 때에 적격인 음식이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퇴근을 하노라면 뜨거운 팥죽 한 그릇을 훌훌 비워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생각처럼 맛보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편의점에서 전자렌지에 2~3분만 돌리면 금방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팥죽이 나오긴 했지만 어디 어머니가 직접 해주시는 맛에 비할 수 있을까. 팥죽에는 겨울 추위를 녹이는 훈훈함과 함께 마음 속을 짠하게 울리는 고향의 맛이 스며들어 있어야 제격이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고모네 낭화’에서는 예전 고향집에서 해먹던 그대로 모든 과정을 일일이 손으로 하는 정성이 깃든 팥죽을 맛볼 수 있다. 굵고 쫀득쫀득한 새알심이 듬뿍 들어있는 이 집의 새알팥죽은 맛이 좋아 찾는 이들이 많다.

찹쌀과 멥쌀을 적당하게 배합해 딱딱하게 굳지도 않고 그렇다고 물컹거리게 무르지도 않은 새알심은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맛이 배어 나온다. 또한 삶은 팥을 채에 내려 정성을 다해 갈아낸 팥죽도 맛깔스럽다.

이 곳에서는 팥죽 외에도 맛좋고 푸짐한 팥칼국수를 맛볼 수 있다. 상호에 들어간 낭화(浪花)라는 단어는 절에서 해먹는 올이 굵은 밀국수를 일컫는 것으로 새알팥죽과 함께 이 집의 주력 메뉴다. 밀가루 반죽을 목판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밀어서 펼 때 생기는 굴곡이 바다에 일렁거리는 파도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선방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특별한 먹거리가 없는 선방에서는 낭화가 유일한 별식으로 스님들은 이 낭화를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올 만큼 좋아한다고 한다.

직접 손으로 밀어낸 칼국수 면발에 뜨거운 팥국물을 부어 내놓는 이 집의 팥칼국수는 어머니가 직접 해주신 듯 고향의 진한 맛이 묻어 나온다. 뜨거운 팥칼국수에 그릇 가득 담겨 나오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곁들이면 그 맛이 배가된다. 전북 김제의 친척집에서 담가온다는 동치미는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아 금새 동이 나버린다.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이가 있을 정도로 단골이 많은 것도 이 곳의 특징이다. 그 이유는 음식 맛도 맛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느껴지는 편안함 때문이다. 화려한 인테리어로 심적 부담감을 안겨주는 시내 고급 음식점들과 달리 소박하게 꾸며진 내부와 마음씨 좋은 주인들이 편안함을 갖게 한다.

손님을 맞는 초로의 할아버지와 음식을 만들어 내오는 두 분의 할머니는 고향집을 찾아온 자식과 친척을 대하듯 따뜻하게 손님을 맞는다. 전북 김제가 고향이라는 세 사람은 모두 남매간이라고. 그래서인지 이 집의 분위기는 더욱 훈훈하고 가족적이다.

이 곳을 찾는 단골들은 주인들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 그대로인 음식 덕분에 자주 들르게 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동네에 마실 나왔다가 이웃집에 들른 듯 주인과 손님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이 곁에서 보기에도 무척이나 정겹게 느껴진다. 그 덕에 식사를 마치고 나면 든든해진 뱃속만큼이나 마음 속도 고향집을 찾은 듯한 정겨움으로 가득찬다.


▶ 메뉴 팥칼국수 3,500원, 새알팥죽 4,000원, 보양(검정)깨죽 4,500원, 호박죽 3,500원, 잣죽 6,000원. 포장 판매 가능.


▶ 찾아가는 길 6호선 망원역 2번 출구에서 망원1동 사무소 방향 서부농협을 바라보고 좌측으로 두 번째 건물 1층. 2호선 합정역 합정로타리 홀트아동복지회 앞에서 7번 버스를 탄 뒤 두 번째 정류장(구망원1동 사무소)에서 하차하면 길 바로 건너편에 위치. ☎02-336-5058


▶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10시. 일요일 오전 휴무(2시 이후 영업).

글ㆍ사진 손형준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3/01/0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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