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 훤하게 삽시다] 비만은 타고난 것이 아니다

‘Set Point’ 이론, 꾸준한 다이어트 댄 뒤바꿀 수 있다

체중을 줄이는 식이요법과 운동요법, 그리고 약물에 대한 지식은 이제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까지 배운 지식으로는 뚱뚱한 사람은 너무 많이 먹고 게을러서 운동을 제대로 안 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비만을 너무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 생각하는 것이다. 비만은 단순히 칼로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전적인 요인과 생활습관, 스트레스, 호르몬, 대사, 영양상태 등 다양한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기는 질환이다. 따라서 체중조절 역시 단순하게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만으로 모두 해결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리적인 설정치와 다이어트

체중을 성공적으로 뺀 후에도 90% 이상의 사람들은 2년 이내에 다시 원래의 체중으로 돌아가는 요요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 8주 이상의 열량 제한식이로 체중감량에 성공한 사람들을 추적관찰한 결과 약 7%만이 지속적인 체중감소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최근에 대두된 체중조절에 대한 이론인 ‘Set Point’이론으로 일부 설명이 가능하다. ‘Set Point’이론은 사람의 키나 머리카락의 색깔 혹은 눈의 색깔이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듯이 사람의 체중도 태어날 때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서 스스로 체중을 변화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이론이다. 즉 사람은 체지방을 일정 수준으로 보존하려는 생리적인 설정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에 대한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체중감소를 하는 경우에는 생리적인 설정치 자체도 바꿀 수 있다는 것.

‘Set Point’이론을 조금 쉽게 이해하려면 체중을 고무줄에 한번 비유해서 생각해보자. 고무줄의 양쪽 끝이 체중이라는 눈금을 가진 두 개의 막대 사이에 놓여 있다고 가정해 보자. 체중이 70kg인 사람은 양쪽 고무줄의 끝이 70kg의 눈금 위치에 고정되어 있고 가운데 부분은 자유롭게 아래위로 이동이 가능한 상태에 놓여있다. 이 사람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식사조절을 해서 65kg으로 체중을 줄였다고 생각해보자.

이 경우 양쪽 끝의 눈금은 70kg에 그대로 고정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고무줄의 가운데만 손가락으로 내려 65kg에 맞춰진 상태다. 만약 체중을 감소시키려는 의지가 약해져서 수년 안에 다시 예전처럼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는 생활습관으로 돌아간다면 막대의 양쪽 눈금이 65kg으로 내려오기 전에 고무줄의 가운데가 다시 튕겨 올라가 70kg에 머물게 된다.

즉 아무리 노력을 해도 고무줄의 가운데 부분은 일시적으로 내려올 수 있지만 양쪽 끝의 눈금은 아래로 내려오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Set Point’이론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요인이 비만에 큰 영향

그렇다면 다이어트를 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체중을 줄이고 약 5~10년 미만의 기간 동안에는 이 이론이 성립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이론에 대해 반하는 현상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이민을 간 사람들의 경우다.

아시아인들 중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들에서 비만환자 비율이 자국에서 보다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서구화된 고지방, 고열량식이 체중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다른 현상은 세계적으로 부유할수록,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비만할 확률이 적다는 것. 이는 사회경제적인 요인 역시 비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Set Point’이론이 존재하더라도 체중감소를 위한 나의 노력, 즉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생활습관이 10년 이상 지속이 될 수 있다면 양쪽 막대의 눈금도 고무줄의 가운데 부분과 함께 아래로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체중은 늘어나기는 쉬운데 줄어들기는 어려운 것일까. 미국의 유명한 비만전문의학자는 이러한 현상을 인류의 역사에 비유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인간은 원시 수렵시대부터 늘 부족한 식량으로 인해 고통을 받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먹을 식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인간의 몸은 적은 칼로리의 섭취로도 생활하고 활동하기에 적절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적응을 하면서 주로 체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인체의 호르몬과 영양대사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

실제로 인류에게 먹을 음식이 풍족해지기 시작한 시점은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이고 그 이전까지는 늘 식량의 부족으로 고통을 받아 왔다. 비만이 인류에게 큰 재앙으로 다가온 것 역시 최근 20~30년전부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의학자의 주장도 받아들일 만하다.

사람의 몸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체중의 양쪽 고리가 있고 체지방을 늘리려는 시도가 끈임없이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의 삶이 절반은 주어진 운명에 따라가지만 그 운명도 그 사람의 노력과 성격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비만도 마찬가지다. 나의 체중에 정해진 ‘Set Point’가 있고 끊임없이 체지방이 늘어나려고 하는 현상이 계속되더라도 스스로 체중조절을 위해 오랜 기간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노력한다면 정해진 체중의 운명도 바꿀 수가 있을 것 같다.

여에스더 에스더클리닉원장

입력시간 2003/01/0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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