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개(그콘서트) 끗발

지난해 말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작가상을 수상한 나에게 연초부터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전화가 끊이지 않고 날아왔다. 가깝게는 방송국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 선후배 작가들, PD들, 그리고 내가 가르친 제자들, 또는 이름마저도 가물가물한 옛날 친구들의 전화를 받으니 놀랍고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약간 ‘오버’ 해가면서 수선스럽게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는데, 끝마무리는 대개 비슷하다.

“너 개그콘서트로 작가상 받은 거 다시 한번 축하한다. 요새 개그콘서트가 인기 캡이야. 방청권 좀 구해줄래?”

아, 치사한 녀석들, 만약 내가 개그콘서트 작가가 아니라면 평생 전화 한 통 안 했을거 아닌가 하는 서운한 마음도 들지만 그래도 사나이 의리가 또 그런가. 녀석들이 요구하는 대로 표를 구하느라 애를 쓰지만 그게 쉽지 않다.

방송국 다닌다고, 또는 어떤 프로를 맡고 있다고 아주 쉽게 방청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어느 조직이든지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고 시청자와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내부 관계자가 마구잡이로 방청권을 독점할 수는 없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 쉽고 당연하게 방청권 얘기를 끄집어낸다.

술집에 가서 옆 자리에 앉은 아가씨가 내 신분을 알자마자 금방 콧소리를 섞어가며 말한다. “오빠, 나 그거 너무 보고싶었어. 나 표 좀 주라.”

“야, 넌 그 시간에 영업 안해?”

“하루 쉬지 뭐.”

3선급의 A국회의원도 개그 콘서트 제작진에 전화를 걸어 방청권을 구하려다가 퇴짜를 맞았다

“저 000 의원님 보좌관인데요. 우리의원님 지역구민 몇 명이 개그콘서트를 보고싶어 해서 부탁드리는 건데 방청권 몇 장만 부탁합니다.”

“네 그러시면요 인터넷에 신청하세요.”

국회의원 끗발도 안 통했다는 얘기다

하도 여기저기서 방청권 때문에 청탁을 받다보면 은근히 스트레스가 쌓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 이름 팔아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다. 언젠가 운전하다가 신호를 위반해서 교통경찰한테 그야말로 딱 걸리고 말았다.

“한번만 봐주세요.”

“안됩니다 면허증 제시 하세요.”

“아 저 KBS작가에요.”

“KBS 아니라 KBS 할아버지라도 안돼요. 면허증 주세요.”

“내가 개그 콘서트 작가인데 회의 시간이 늦어서 그랬어요. 한번만 봐줘요. 아 참, 혹시 조카들 있어요? 이거 딱 한 장 있는 방청권인데 같이 구경하러 와요.”

“어, 정말이네. 이 표 구하기 되게 어려운데…”

“그럼, 3개월을 기다려도 얻을까 말까 한 표요.”

동네 형처럼 어깨까지 두드려주고 ‘바이바이’ 인사하고 헤어졌으니 간만에 인기 프로 덕을 톡톡히 봤다.

며칠전에도 방송작가를 양성하는 아카데미에 가서 강의를 하는데 학생이 부탁을 해왔다.

“선생님, 개그콘서트 작가시잖아요. 우리 모두 20명인데 개그콘서트 볼 수 있죠?”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녀석들까지 “꼭 보고 싶어요” 하는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하는데…

“당연하지, 너희들 다 보게 해줄게.”

“이야호 선생님 최고에요 정말 개그콘서트 보게 해주실 거죠?”

“그래 일요일 저녁 8시 50분, KBS 2TV로 다 볼 수 있어.”

난들 보여주기 싫어서 안 보여주겠냐,표가 없는 걸 어쩌란 말이냐. 수표까지 위조복사하는 세상에 개그콘서트 방청권도 위조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심히 걱정스럽다.

노무현 당선자가 앞으로 인사청탁을 하는 사람들은 패가망신할 것이라는 강한 경고성 메시지를 발표했다는데 방청권 청탁하는 사람들도 패가망신시킨다면 조금 청탁이 줄어들라나…

입력시간 2003/01/0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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