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구조 변동과 개혁 요구

한국정치를 전공하는 필자로서 제16대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2002년의 정치는 무척 흥미로운 관심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대선 결과라는 최종 종착역에 이르기까지 격동적으로 전개되었던 수많은 정치 현상들은 과연 한국정치에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 그 관심의 초점이었다.

나는 2002년 한국정치가 보여주었고 마침내 노무현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던 이 같은 변화의 모습을 한국정치의 ‘구조 변동’의 시작이란 말로 표현하고 싶다. 지역주의정치, 낡은 정치로 일컬어졌던 한국정치의 기존 구조가 점차 약화되고 새로운 정치의 구조가 구축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구조 변동의 차원에서 노무현정부 시기의 한국정치는 어떠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정치 주체의 차원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앞으로 한국정치의 세대 교체가 기대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선 기성 정치에서 배제되었던 젊은 층이 지난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정치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된 데에서 비롯되고 있다. 더구나 노무현정부의 등장이라는 정치 참여의 성공적인 경험은 그들이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50대 대통령의 등장은 정치리더십의 측면에서 세대 교체의 효과를 수반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치권의 본격적인 세대 교체는 선거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겠지만, 이를테면 대통령 인수위원회 구성에 40대 후반-50대 초반의 인사들이 대거 등장한 것은 정치권 세대 교체의 한 시험으로 간주될 수 있다.

즉,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 증대라는 아래로부터의 계기와 정치적 리더십의 세대 교체라는 위로부터의 계기가 중첩적으로 작용하게 될 때, 그 동안 노쇠한 모습을 면치 못했던 한국정치는 조만간 한층 젊어질 것이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변동이 단지 인적 변화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정치 의식과 문화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에 대한 우리의 기존 의식과 문화는 한 마디로 ‘수직적’인 것으로서, 위로부터 또는 중앙으로부터의 정치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일정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성격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새로운 정치 주체의 등장은 기존의 수직적 정치 의식과 문화를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즉 향후 새로이 구축될 정치 의식과 문화는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참여와 민주적 소통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는 ‘수평적’ 성격의 그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 주체의 측면에서나 또는 정치 의식과 문화의 측면에서 이 같은 구조 변동이 본격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진전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지난 대선을 계기로 변화를 요구받고 있지만, 한국정치의 낡은 주체 그리고 그 낡은 의식과 문화는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치 주체와 문화의 등장은 아무런 노력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정치 구축을 위한 정치개혁의 과제가 요구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노무현 정부의 등장에 즈음하여 한국정치에서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정치개혁, 정치쇄신의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요구가 과거와 다른 것은 그것이 위로부터의 요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아래로부터 제기되는 요구라는 점이다. 그런 만큼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러한 개혁의 수행이 기대되는 것은 지난 대선을 통해 그러한 요구가 아래로부터 폭발적으로 분출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분출된 에너지를 정치개혁으로 어떻게 이어갈 것이냐 하는 점이다.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입력시간 2003/01/0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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