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왕고객은 '나가요 걸' 언니들

신종 호스트바 DJ바 강남 일대 성행

“고객이 OK할 때까지!”

대기업 광고 카피가 아니다. 손님들을 시중 드는 DJ바 남자 접대부들의 말이다. 이른바 ‘DJ바’가 여성들 사이에 인기를 누리고 있다. DJ바는 호스트바를 한단계 발전시킨 ‘진화형 호스트바’. 각 방마다 DJ가 한 명씩 배치돼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게 이곳의 특징.

그러나 말이 분위기 메이커지 실상은 술시중을 드는 호스트나 다름이 없다. 손님이 원할 경우 2차까지도 서슴없이 나간다.


간판은 텍바, 영업은 호스트 바

DJ바가 몰려있는 곳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을 비롯해 인천 연수구, 대전 유성구 등이다. ‘선수’들에게 있어 이곳은 ‘3대 특구’로 통한다. 특히 ‘나가요 걸’들이 몰려있는 논현동의 경우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일이 생길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DJ바는 주로 ‘텍바’ 혹은 ‘텍가라오케’ 등의 간판을 걸어놓고 영업을 한다. 강남에서 일한다는 한 DJ에 따르면 DJ바는 호스트바와 달리 합법적으로 영업하는 게 특징이다. 종전의 호스트바는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문을 잠근 상태에서 철저하게 음성적으로 영업을 했다.

또 좀 유명해지면 장소 알려지기 때문에 게릴라식 수법으로 장소를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비해 DJ바는 당국의 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단속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물론 겉으로 볼 때 얘기다. 영업 형태는 기존 호스트바와 다르지 않다. DJ가 남자라는 점을 이용해 눈속임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강남구 논현동의 P가라오케. 최근 문을 연 이곳은 가라오케를 가장한 호스트바다. 150여평 남짓한 내부로 들어가면 각종 조명과 음악이 우선적으로 손님을 맞는다. 한쪽에는 종업원이 신청곡을 받는 등 일반 가라오케와 다른 점이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하는 DJ들은 대부분 호스트바 선수(호스트) 출신이다. 하나같이 외모가 특출할 뿐 아니라 말솜씨도 뛰어나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 이들은 DJ 형식으로 손님들과 함께 룸에 들어가서는 술시중을 든다.

영업은 보통 저녁 6시를 전후로 시작한다.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7∼8시 사이가 1차 피크타임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이 되면 근처의 전문직 여성들이나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몰려든다.

인근에 거주하는 사모님들도 자주 찾는 편이다. 호스트바와 달리 합법적으로 영업을 하기 때문에 걸려도 변명할 거리가 있다는 게 이들이 찾는 이유다. 일부 사모님들은 계를 조직해 정기적으로 DJ바를 찾기도 한다.

P가라오케의 한 종업원은 “아는 사람들끼리 ‘DJ바 계’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찾는 일이 종종 있다”며 “이 경우 고급 승용차를 타고 몰려와서는 하룻밤에 200만~300만원씩 뿌리고 돌아간다”고 귀띔했다.

간판만 보고 들어왔다가 분위기를 눈치 채고 혼비백산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는 “DJ바는 보통 가라오케 등으로 간판을 내걸기 때문에 술김에 찾아와 아가씨를 불러달라는 남자 손님이 가끔 있다”며 “대부분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는 쑥스러워 하며 나간다”고 말했다.


남자 말고 여자만 오세요

DJ바의 최대 단골손님은 역시 ‘나가요 걸’. 때문에 나가요걸들의 일이 끝나는 새벽 3∼4시가 DJ바의 피크타임이다. DJ바의 모든 시스템이 사실 이 시간대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일반 손님들과 달리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편이다. 하루 동안 손님들에게 당한 스트레스를 이곳에서 풀기 때문이다. 먹기 싫어하는 술을 억지로 먹인다거나 쇼를 강요하는 식

으로 보복(?)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씀씀이가 상당한 편이기 때문에 DJ바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왕고객’이다.

이렇듯 서울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DJ바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인천 등 수도권 일대 및 광역시 등에도 DJ바가 생겨나고 있다. 온천 명소로 꼽히는 대전 유성구가 대표적인 예다. 이곳에는 현재 10여개의 DJ바가 성업 중이다.

이중 가장 큰 규모로 꼽히는 W가라오케의 경우 월 수입만 수억원대에 달할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이 업소에서는 현재 22개의 밀실에 60여명의 DJ를 확보하고 있다. 손님이 오면 밀실로 안내하기 때문에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업소 입구에는 실수로 들어오는 남성들을 제지하기 위한 직원이 배치돼 있다.

최근 들어서는 손님들의 나이가 부쩍 젊어졌다는 인근 업주들의 설명이다. 일부 업소들이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가격을 대폭 낮췄기 때문이다. 일부의 경우 맥주 3병과 안주를 포함해 1만9,000원의 기본료만 받는다고 선전하기도 한다.

물론 술을 먹다 보면 술값이 부풀기 마련이지만 업주들의 입장에서는 ‘제살 깍아먹기식’ 가격 경쟁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한 업주는 “손님들의 나이대가 젊어진 데는 호프집 수준의 술값으로 룸살롱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오는 여대생 때문”이라며 “이들은 보통 재미있게 놀기보다는 호기심에 들르기 때문에 매출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방학마다 원정 아르바이트 떠나

서울 K대에 다니는 김모(24)씨는 이번 방학에도 대전에 내려갈 예정이다. 그동안 방학 때마다 대전의 DJ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수입이 꽤 짭짤하기 때문이다. 김씨가 한 달에 벌어들이는 액수는 200만원 내외. 이것저것 빼고도 최소한 100만원 이상은 떨어지기 때문에 두달만 고생하면 다음 학기 등록금 정도는 마련할 수 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보통 4명에서 5명 정도의 친구들과 같이 내려가요. DJ바의 경우 보통 10명 단위(1박스)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는 고향 친구가 현지 마담으로 있어 4명 정도 데려가고 따로 박스비를 받습니다.”

이곳에서 김씨가 하는 일은 호스트바의 선수와 다른 점이 없다. 여자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술을 따르거나 쇼를 한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2차를 나가기도 한다. 손님들의 대부분의 술집 여종업들이다.

가끔 대학생들도 찾아오긴 하지만 대학생으로 위장한 ‘나가요 걸’인 경우가 많다. “제가 일한 2개월 동안 주부는 한 명도 보지 못한 것 같아요. 주변에서 일하는 술집 여종업원들이 대부분입니다.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러 오는거죠. 번호판을 보면 서울과 대전이 반반입니다.”

김씨는 고생만 죽도록 하고 돈 한푼 없이 올라오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고 말한다. “대부분 처음에는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술집 등을 전전하며 번 돈을 고스란히 날리는 경우가 많아요. 함께 내려간 제 친구도 올라올 때 20만원 벌어가고 왔더군요. 돈에 대한 씀씀이를 조절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석 르포라이터

입력시간 2003/01/0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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