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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人事, 알아서 기는 일은 없다?

盧 정권 출범 앞둔 첫 포석, 후계경영구도와 맞물려 큰 관심

연말 연시를 맞아 주요 그룹들이 인사를 단행하고 있다. 이번 인사의 외관상 큰 특징이라면 역시 젊은 세대들의 등장이다. 아직은 세대교체로 부를 단계로 그 폭이 확대되지 않은 만큼 신-구 조화로 불린다.

간판급 최고경영자(CEO)들은 그대로 두고, 실무급 임원들을 젊은 인재로 채우는 식이다. 배경으로 거론되는 것은 무엇보다 고객이나 사원들의 세대간 차이가 워낙 심해 예전처럼 연공서열 인사로 그 변화에 부응할 수 없고, 조직통제도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후계 경영 구도와 맞물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기업들의 이번 인사에는 2세, 3세 경영 가시화를 위한 밑그림들이 조금씩 그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사의 세 번째 특징은 재벌개혁을 공약으로 내건 노무현 정권의 출범과 관련돼 있다.

여성 임원과 고졸 출신, 지방대 출신의 중용, 그리고 정치적 고려를 계산한 지역 안배 등이 이와 관련된 현상으로 우선 꼽을 수 있다.


삼성, 이재용 상무보 어디까지 승진?

지난 대선 때 줄서기의 후유증도 이번 인사에 반영될 것이란 추측을 낳고 있다. 가령 H그룹은 해외에서 현 정권의 경제정책을 신랄히 비판하고 정권교체를 외쳐, 너무 나간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아직 인사를 단행하지 않고 있다.

아직 정치적 해석을 낳게 하는 인사가 가시화하진 않은 상태이지만, 기업별로 노심초사하는 모습들은 관측되고 있다. 비록 조용하게, 또 별다른 의미부여 없이 이뤄지는 기업인사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기업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나, 지향점 등이 잘 드러난다.

삼성그룹은 1월 중순에 사장단을, 다시 일주일 뒤에 임원급 인사를 할 예정이다.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둔 만큼 사장급의 물갈이는 많지 않다는 것이 지배적인 전망이다. 실적이 좋지 않아 교체될 CEO가 오히려 관심이다. 삼성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계가 관심을 갖는 것은 삼성이 인사를 통해 시사하는 내용들이다.

이건희 회장이 핵심 인재를 의사결정 부문에 배치시키도록 지시한 만큼 기술인력을 핵심포스트에 전진 배치하는 것도 예상된다.

남는 관심은 이재용 상무보가 어디까지 올라갈 지이다. 상무보가 된지 2년이 꽉 찬 상태라서 ‘보’를 떼고 상무로 승진하는 것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과연 상무보다 위인 전무나 부사장까지 승진할 지에 대해선 아직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편이다. 개인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무리수를 두지 않은 삼성의 스타일로 볼 때 보다 신중한 행보를 할 것이라는 해석에 무게를 실린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한 만큼 이 상무보가 전무로 승진해도 재벌세습 경영이란 비난에선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있다.

이와 함께 삼성 인사에서 관전할 부분은 세대교체다. 현재 삼성으로선 이 상무보의 승진과 관계없이 3세 경영체제 구축을 위한 세대교체를 이른 시일 안에 이뤄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재계 2위인 LG그룹은 대통령 선거일 이전인 12월 중순부터 시작해 계열사별로 인사를 단행하고 있다. 과연 강유식 구조조정본부장이 LG전자의 CEO로 갈 것인가도 관심거리였는데, 오너 가족인 구자홍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는 구조조정의 지속과 함께 오너십의 강화로 읽히고 있다. 허씨 가문의 수장격인 허창수 회장이 이끄는 LG건설은 동생 허명수 상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고, LG칼텍스정유는 허동수 대표CEO의 직함을 회장으로 바꾸어 역시 오너 친정 체제를 강화한 모습이다.


LG, 오너 친정체제 강화

LG는 올해 상반기에 지주회사가 공식출범하면 추가적인 전보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또 오너 가족인 구-허씨 사이의 회사 나누기도 보다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선 오너들이 주식을 사고파는 과정에 문제가 많았지만, 모양상으로 LG가 기업지주회사 1호가 되기 때문에 새 정부가 바라는 재벌 형태의 모범 답안이 될 것이란 전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주회사가 완성되면 구씨와 허씨가 갈라 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렇게 되면 임원진의 줄서기도 한결 힘들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SK그룹은 신-구 조화를 모토로 해 12월 임원인사를 단행했는데, CEO급에선 SK케미칼 홍지호 대표이사 부사장이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된 것을 제외하곤 부사장급 이상 임원 인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홍 사장은 SK케미칼을 화섬업체에서 정밀화학과 생명과학기업으로 변신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장단의 이동이 없었다는 것이 SK 인사의 특징이고 보면, SK가 경영의 안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SK㈜의 황두열 부회장이나, SK텔레콤의 조정남 부회장, SK글로벌의 김승정 부회장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점도 이 같은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CEO인사를 최소한으로 유지하면서 실무급 임원진에는 신규임원 49명의 평균연령이 44세일만큼 40대 젊은 인재들을 중용했다. 연공서열을 뛰어넘어 경영 성과와 능력위주의 인사는 손길승 그룹 회장의 경영방침과 일치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세대교체 성격이 짙다는 시각이 없지 않다.

세대교체는 젊은 감각의 필요성과 함께 SK㈜ 최태원 회장 체제를 공고히 하는 모양새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노종 그룹 홍보담당 전무가 예상외로 부사장에 오르지 못한 것 등을 두고 ‘손 회장 라인은 이제 지는 별’이란 식의 외부 시각도 없지는 않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8월에 이어 1월 3일 인사를 단행했다. 8월 인사는 일부에서 경기고의 전진 배치란 정치적 해석을 낳기도 했지만, 엄정한 성과주의였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회사측은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장인 정순원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는 등 사장단 및 임원 12명에 대한 승진 전보인사가 이뤄진 이번에는 기획부문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인사의 초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현대, 3세 경영체제 본격화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인사내용은 정몽구 회장의 아들 정의선 현대차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부본부장 겸 기아차 기획실장에 선임한 것이다.

정 회장의 동생인 고 정몽우씨의 아들 정일선 비앤지스틸 전무와, 정 회장의 둘째 사위인 정태영 기아차 전무, 셋째 사위인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전무도 모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현대차 그룹의 이번 인사는 결국 3세 경영체제의 본격화가 두드러진 특징이 됐다.

환란 이후 ‘황제경영’이란 비난을 받으면서 기업들은 인사 시기를 2월이나 3월의 주주총회 시즌으로 미뤄왔다. 오너가 주주동의 절차도 받지 않고 황제처럼 경영자를 제멋대로 바꾼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인사가 또 앞당겨져 과거로 회귀한 것은 기업 입장에서 연초에 집중적으로 인사를 단행해야 조직개편이나 사업목표 수립 등 기업활동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기업들이 실적도 좋아지고, 경영투명성도 높아지면서 인사에도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입력시간 2003/01/1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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