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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가 사는 법] 권인숙

자전적 에세이집 '선택' 출간 "이젠 소설 써보고 싶어"

“딸과 친구네랑 속초 워터피아에 다녀왔어요. 한쪽은 바다고, 한쪽은 설악산이고, 생각지도 못한 호사를 누렸어요!”

최근 출간한 에세이집 <선택>(웅진닷컴 펴냄)의 저자 권인숙(사우스플로리다 주립대 여성학 교수, 38세)씨는 영하 10도의 맹추위에도 까딱없다는 듯 시원시원하게 말문을 열며 인사동 길목으로 들어섰다. 그녀와 함께 예정된 장소로 걸으며 필자는 잠시 15년 전의 그 사건 속으로 들어갔다 나와야 했다.

그녀는 1986년 부천의 여성노동자로 위장 취업 해 있다가 검거된 후 경찰서에서 겪었던 성 고문을 사회문제화시키며 당시 민주화 운동의 커다란 발화점이 되었기에 그 사건을 생각하는 것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만나는 사람 모두가 감당해내야 하는 몫일 듯싶다.


삶을 기반으로 한 운동의 연장선에서 택한 ‘여성학’ - 첫 번째 선택

권인숙이란 이름 옆에 붙은 여성학자라는 낯선 꼬리표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사건의 주인공을 바로 생각해내기엔 뭔가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었다. 노동운동의 정점에 서있던 그녀가 왜 갑자기 여성학인가.

“그래요, 사실 저는 살면서 여성 차별적인 개념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남녀차별이 없는 가정에서 바로 위의 언니와 다섯 살 차이는 막내로 부모님들께서는 장난스럽게 받들어주셨던 것 같아요. 그냥 별종이니까, 별종인가보다 그렇게 여유 있게 봐주신 것 같아요.”

‘86년 그녀가 자신의 케이스를 공론화 시킨 것도 성차별적인 시각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큰 틀 안에서였다.

“개인적으로 그 이전에도 남녀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인 적은 없지만 결혼생활이란 것을 시작하면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차별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저는 단 한번도 ‘아내’라는 이름으로 내 자신을 규정지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제 주변에는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이 결혼을 하고 나면 남자운동가와 여자운동가의 사는 모습이 너무 달랐죠.

여성운동가들에만 부당하게 지워지는 짐이 너무 많은데, 그 부당함을 문제의식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정당하게 인정하지 않는 그런 분위기. 왜 있잖아요, 결혼생활이나 남녀차별에 관해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은 덕이 부족하고, 이기적이고, 여유가 없는 그런 사람으로 비쳐지는 거.”

물리적으로 참 오랜 시간이 지나간 사건의 그림자가 다시 이야기 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사실 뭔가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고는 있었겠지만 그 이전까지는 전면적으로 내 삶 속에 들어오지 못했던 거죠. 남자들과 가까이 지내는 게 더 힘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그 사건 후, 사회에 나와서 노동인권 쪽 일을 하고 결혼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일상적인 차별과 편견들에 대한 의문을 풀지 않고는 내가 건강하고 여유 있고 밝은 인간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노동운동 일변도로만 가서는 풀리지 않는 문제가 여성노동자들 안에 있었던 거죠.”

노동운동만으로 풀리지 않는 여성노동자들의 문제를 자신의 결혼과 경험들을 통해 건져 올리는 과정에서 삶을 기반으로 한 운동을 시작한 권인숙씨. 그녀는 “지난 학기 ‘아시아 여성노동자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강의를 하였으며 앞으로 ‘한국의 지역주의가 여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제 3세계 국가들 역시 여성주의에 대한 편견들이 퍼져있지만 특히 한국사회에서 여성주의나 여성학에 대해 더 심하게 부정적이고, 코드화 되어있다. 왜 여성에 대한 시선이 그렇게 고정되었는가. 현재 한국에서도 여성들의 부당함에 대해 다양한 얘기들이 진행되고 있어 반갑기는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여성들에 의해 더 많이 이야기되어져야 해요.”


그 두 번째 선택 ‘싱글 엄마’로 살기

1994년 미국으로 건너가 여성학 석사, 박사과정을 밟고 현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딸 강이를 키우고 사는 싱글 엄마의 하루 일과는 어떤 것일까.

“미국에서의 생활이란 게 별 특별한 게 없어요. 일상이 없어요. 그저 수업 준비하고 공부하고, 가끔 아주 가끔은 주말에 딸과 야외에도 나가고 그렇죠.”

오전에 수업이 없는 날이며 집 근처의 헬스클럽을 찾아 운동하고, 독서하고 딸과 함께 TV보기를 좋아하는 엄마의 일상을 두고 그녀는 ‘일상이 없다.’고 말한다.

“아마 ‘9 to 5’로 일하는 엄마였다면 힘들었을지도 몰라요. 비교적 시간에 매이지 않아서 저녁엔 친구들이랑 저녁도 같이 먹어요. 또 딸아이가 무던해서 별로 힘들게 안 하죠. 한 가지, 매일 오후 5시 반까지 아이를 픽업하러 가야 하는데 우리는 대신해 줄 사람이 없잖아요. 저녁에 회의 같은 것이 있을 때는 그야말로 전쟁이죠. 미국법상 13세 미만의 아이를 혼자 집에 있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디든 데리고 다녀요.”

그렇게 바쁘지는 않다고는 하나 자신의 확고한 영역을 가진 엄마 혼자 딸아이를 기르기가 미국이라고 만만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여기(한국)서는? 당연히 절대로 안 데리고 다니죠. 여기서라도 혼자 다녀보고 싶어서.(웃음)그런데 정말 힘들게 하는 건 미국유학생들 사회에서도 공부하는 남자는 인정이 되어도 공부하는 아내는 인정받기 어려워요. 마치 특별한 자유로움을 원하는 여자로 보는 시선들이 너무 힘들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섣부르게 미래를 예측하고, 의도에 맞추고 규정짓지 않는다는 것을 기저로 ‘교육에는 정도가 없다’는 나름의 교육철학을 가진 권인숙씨. 그녀는 한국 엄마들에게도 자식과 일정 정도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지만 ‘너무 힘든 입시 경쟁 때문에’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나에게 공부를 포기하고 아이만을 키우라고 했다면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이제까지 나와 아이의 삶을 지켜냈던 의지로 아이를 키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아이를 키우는 삶을 만족스럽게 바라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좋은 사람이 있느냐는 물음에 웃으면서 부정하지는 않았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 위에서

부천서 사건의 주인공은 독특하고 교묘하게 희생자와 투사가 결합된 이미지였지만 실제의 자신은 그 두 가지와 별로 닮지 않았다. 그러니 정체성에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1987년 출소 후, 93년 복학하기까지 왜 그렇게 모든 것이 부끄럽게 기억되었을까. 그녀는 사건에 대한 국가보상금으로 차린 노동인권 회관에서 일하는 동안 ‘자신의 꼬이고 닫힌 마음’이 감당할 수 없어 나쁘게 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가장 컸다고 털어놓는다.

“그때 이후로 그 무거운 이름의 주인공으로부터 나 자신을 어떤 식으로든 분리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있었습니다.”

커다란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이름이 주는 ‘근원적인 자부심’과 더불어 그 무게를 감당해내야 하는 ‘자신에 대한 연민’도 적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안고 그녀가 한국을 떠난 뒤 다시 찾아올 때까지 우리는 너무 오래 그녀를 잊고 지내왔던 것은 아닐까. 권씨의 미국행은 그 자체로 엄청난 물리적 거리감을 가져왔고, 거기에 8년여 시간적 거리가 더해졌다.

그리고 오늘 그 동안 온 몸으로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오며 기록한 그의 자전적 에세이집 <선택>을 들고 그녀가 먼저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나름대로 중요한 사건이었고, 어차피 삶이 지속되는 한 평생 가져가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 사건에 매이지는 않지만 내 나름으로 내 삶을 경영해야 하는 책임은 있죠. 돌이켜보면 도망간 건 아니고, 거기가 공부하기에 여건이 더 좋았고, 다행히 경제적인 여유가 좀 되었다는 거죠. 이번에 온 것도 책 때문만이 아니고, 선거도 해야겠고, 연구자료 조사할 것도 있고요.”

일과 함께 하는 삶의 길을 찾아 들어섰으며 세상에 대해 ‘말 걸기’를 새롭게 시작한 그녀가 40세를 바라보는 지금 자신의 삶에 대해 품고 있는 소망은 무엇일까.

“일상적인 것은 특별한 게 없고요, 소설을 한편 써보고 싶고, 나를 보살피며 내 욕구와 내 마음이 가는대로 즐겁고 균형 있게 살고 싶어요.”


인사동 골목을 돌아 나오며

“어느 게 더 예뻐요?”

거울 속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이 반짝거렸다. 1월 8일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그 곳의 지인들을 위한 선물을 사기 위해 인사동 골목을 헤집고 다니다 한 공방에 들어가 자신을 위한 목걸이를 고르며 진지하게 필자의 의견을 물어왔다.

“더 환해 보이는 쪽으로 하세요. 그게 훨씬 더 잘 어울려요!”

이렇게 목걸이 하나를 포장해 든 그녀와 필자는 사춘기소녀들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인사동 골목을 걸어 나왔다.

양은주 자유기고가 wayfar@hanmail.net

입력시간 2003/01/1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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