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수 없는 사랑을 나눠요"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천사표들'

나 아닌, 남을 돌아보는 일. 이는 성품이 다정하고 성실하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우선, 아침 일찍 일어나, 가족들을 챙겨야 하고, 부엌에서 조금씩 덜어낸 반찬을 들고 부지런히 좁은 골목길을 오르내려야 한다.

여기에 가족 중 누구 하나 반대하기라도 하면, 이 또한 시집살이로 어쩔 수 없이 가족들의 눈치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몸 보다 마음이 더 고되 지기 마련. 그래도 그들은 한결같이 어제 들른 집을 오늘도 방문하여 말벗이 되어주고, 딸이 되어주고, 때로는 엄마가 되어주고 있다.


내 몸 챙기듯 이웃을 섬기는 일

인천종합사회복지관(윤국진 대표,학익동)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진선미(33세)씨는 “처음엔 공명심(功名心)에 이 일을 시작한 것 같다”며 부끄럽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지금은 결코 누구를 돕는다 거나,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단다.

“내가 내 몸 아파 병원에 입원해 보니 알겠더라구요. 얼마나 다른 사람 손이 필요하고 그 손이 감사한지. 이거구나 했어요. 내 몸 챙기듯 챙겨야겠구나. 섬겨야겠구나…” 진씨가 이렇게 몸이 불편한 이웃들을 섬긴 지는 올해로 다섯 해를 넘기고 있다. 진씨는 독거노인 방문, 시각 장애우 봉사, 간병인 등을 번갈아 하며 틈틈이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에서 할머님들의 목욕봉사를 하고 있기도 하다.

시각 장애우 봉사의 경우 외출이나 병원 출입, 방 청소를 주로 하게 되는데, 앞을 못 보기에 처음 만남에서 신뢰를 쌓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시각 장애우분들 같은 경우엔, 청소할 때 봉사자 뒤를 졸졸 따라다니세요.” 그 이유는 아직 봉사자를 믿지 못하는 까닭이라고 진씨는 설명했다. “청소하면서 서랍을 열거나 장롱을 열면 뒤에 바짝 붙어 서 계시죠.” 그렇기에 봉사자의 기본 자세는 상대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진실된 마음이라고 나름의 요령을 펼쳤다. 이런 진씨의 소원은 작은 차 한 대를 갖는 것이다.

작은 차라도 자신만의 차가 생긴다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싣고 세상 구경을 해 주고 싶단다. 그러한 까닭에, 낮에는 파출부로 오후엔 식당에서 일을 하며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돈벌이를 하고 있는 진씨이다.


진실된 마음이 최고

현재 간병인 봉사를 맡고 있는 이옥선(41)씨의 경우도 쉽게 맘을 열지 않는 노인분이라는 복지관의 설명에 처음부터 신뢰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냥 내 부모처럼 모셨어요. 목욕도 같이 하고, 이불 호청도 맘에 드시는 걸로 끊어다 드리고.” 그러다 보니, 이젠 할머니 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 딸자식에게 얘기하듯 주저리 얘기를 풀어 놓으신단다.

이씨는 친 부모님의 병간호를 위해 배운 간병인 교육을 그냥 썩히고 싶지 않아, 스스로 복지관을 찾아 나선 경우이다. “아프면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사람이 아니냐” 며 이씨 또한 자신의 경우에 비춰 자신의 행동이 누구를 위한 봉사가 아닌, 내 몸을 돌보는 일 중 하나라며 나름의 신념을 펼쳤다.

하지만 이씨의 경우는 아직 집에서 자신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씨의 몸 또한 그리 건강한 편이 아니다. “오래 전에 허리를 다쳐 힘든 일을 오래 하면 쉽게 피곤하고 잔병치레를 많이 하는 편이예요. 그래도 조심만 하면 건강한 거나 다름없어요.” 라며 애써 자신의 병을 숨겼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손

봉사자들이 도착하면 독거노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반갑게 봉사자의 두 손을 꼬옥 움켜쥔다. 새벽녘부터 잠에서 깨어 사람 구경을 그제 서야 하는 까닭이다. 이러한 외로움의 갈증은 독거노인 뿐만이 아니다. 특수장애인이나, 소년소녀 가장의 경우도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이유로 외로움과 그리움에 지쳐있다.

그러다 보니, 술과 담배가 친구가 되어 건강을 많이 잃은 분들도 계시다고 한다. 사회복지관을 통해 10년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조세희(36세)씨는 “많은 분들이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으로 외로워하고 있다” 며 “물질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가족 같은 심정으로 다가가 곁에 서 있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씨는 10년 전, 처음 독거노인을 방문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처음 집을 방문했는데, 할머님이 반갑다며 저녁상을 차려주셨어요. 근데, 그게 밥에 곰팡이가 잔뜩 끼어있는 거예요. 도무지 그걸 먹을 수가 있어야죠. 헛구역질까지 나오는데…” 아마도, 눈이 어두운 할머니의 눈에는 곰팡이가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면서, 한 숟가락도 뜨지 못하고 그냥 나왔던 그 날을 절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그 밥을 먹지 못한 게 죄송하고 후회가 돼요. 그래서 결심했죠. 내 마음부터 제대로 고쳐야 겠구나.”

그 후로 조씨는 틈나는 대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손과 발이 되어 주고 있다. 며칠 전에는 독거 노인 한 분에게서 꿈자리가 사납다는 전화를 받고, 그 길로 달려나가 밤새도록 손을 잡아 드리며 잠을 청해 드렸다고 한다. 이렇듯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닌 따뜻한 정이라고 조씨는 강조했다.

앞서 소개한 이옥선씨의 경우에도 노인분들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 5학년인 딸아이에게 일년 전부터 플롯을 배우게 했다고 한다. “이젠 노인잔치가 있을 때마다 딸아이가 연주를 하죠. 딸아이의 재롱에 노인 분들이 얼마나 좋아하시는데요.”만만치 않은 학원비는 아침에 우유배달로 충당했다고 한다.

처음엔 어색해 하던 딸도 이젠 자신이 하는 일이 어렴풋이 좋은 일 임을 아는지 아빠와의 비밀을 철썩 같이 지치고 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없기에 더 많이 가진 자들

보람이나 자부심이 뭔지 묻는 말에 다들 손사래를 친다. “그런 거 생각할 겨를도 없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는 것이 모두의 공통된 대답이다. 그렇다고 형편이 넉넉하거나, 시간이 남아돌아 이웃을 돌아보는 것도 아닌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배운다며 감사해 했다.

한 해를 보내도, 빛 바랜 비닐 속에 담긴 과일과 양말밖에 드릴 것이 없는 자신들의 형편을 되려 죄송해 하는 그녀들을 통해, 어쩌면 삭막한 이 세상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은 이런 그녀들의 손길이 아닐까 한다.

황경란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3/01/17 17:00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