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인터넷은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일본에서 권위를 인정 받는 아사히 신문 1989년 4월20일자에 ‘산호초를 망가뜨린 KY는 누군가’라는 제목의 사진이 실렸다. 인간의 자연파괴 현장을 고발하는 시리즈의 하나로, 오키나와현 이리오모테섬 앞의 바다 속 산호초에 이름 이니셜을 새긴 몰지각한 행태를 폭로한 기사였다.

큰 반향을 불러온 이 사진은 그러나 산호초에 KY를 새긴 사람이 바로 그 사진기자 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아사히 신문에겐 치욕적인 한 ‘컷’으로 변했다. 사장과 편집국장 등 간부진이 바뀌는 것으로도 끝나지 않고 사죄광고를 두번이나 내야 했다.

유력 신문의 권위를 떨어뜨린 유사한 사건은 미국에도 있었다. 120년 전통을 지닌 동부지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는 98년 6월 흑인여성 칼럼니스트 패트리샤 스미스의 칼럼에 나온 인물과 인용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져 사과문을 싣는 등 홍역을 치렀다.

스미스는 당시 퓰리처상 논평부문 최종후보에 오를 정도로 필명을 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칼럼에 등장하는 인물과 인용들이 어쩌면 쓰고자 하는 주제와 그렇게도 딱 들어맞는지, 의심을 사다가 결국 들통이 났다. 예를 들면 이렇다. 생쥐를 대상으로 한 암치료가 성공한 다음날 그녀의 칼럼에서는 ‘클레어’란 이름의 암환자가 등장해 “당장 그 생쥐라도 통째로 먹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한다.

이 말보다 더 암환자의 절박한 심정을 느끼게 하는 표현은 없었다. 하지만 확인결과 클레어란 인물은 미국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98년 5월 KBS 1TV는 ‘일요 스페셜’에서 야생 수달의 생태를 취재한 ‘자연다큐멘터리-­수달편’을 방송했다. 이 다큐에서는 강원 인제군 내린천에 사는 수달의 움직임을 자연상태에서 촬영한 것처럼 방송했으나 사실은 제작팀이 4개월간 수달을 1㎞가량의 철망 속에 가둬놓고 촬영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건은 사실을 확인하고 진실만을 보도해야 하는 언론 매체의 속성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일어나곤 한다. 기자 개인의 그릇된 특종 의식과 과욕, 언론사간의 지나친 경쟁 등이 기사 조작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논란을 부른 인터넷 신문 오마이 뉴스 시민기자(뉴스 게릴라)의 촛불시위 자작 기사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가 언론의 도덕성이나 책임, 자세 등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인터넷의 익명성은 구조적으로 사실 조작 혹은 왜곡 문제를 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민기자에게도 이름이 두개 였다. 사이버상에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앙마라는 ID와 오마이 뉴스에 쓰는 김기보 기자. 앙마라는 이름으로 사이버상에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쓴 뒤 그 글을 인용하는 형태로 네티즌의 주목을 끄는 김 기자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촛불 시위 자작기사는 인터넷의 역기능으로 따지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각 사이트마다 난무하는 욕설과 비방, 허위사실 유포 등 ‘사이버 폭력’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 21세기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인터넷 에티켓의 정착이 시급한 실정이다. 자정작업은 물론 관련 법규 마련도 필요하다.

대통령 취임을 한달여 앞둔 노무현 당선자는 현재 인터넷을 이용한 직접 민주주의를 추진 중이다. 인터넷을 통해 정책에 대한 민의를 수렴하거나 정책 대안을 제시받고, 인사 추천 및 검증을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장ㆍ차관이 참석하는 국무회의도 인터넷 생중계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구상이 실현된다면 고대 그리스 시대에나 가능했던 직접 민주주의가 인터넷을 통해 전자민주주의 혹은 e-민주주의 형태로 화려한 꽃을 피울 것처럼 보인다. 인사나 정책 조율에서 비선조직을 통한 독주나 밀실정치, 부정부패 등이 사라지고, 정책 기획 및 구현의 투명도가 높아지는 등 인터넷이 21세기 한국 정치의 요술 방망이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촛불시위 자작기사에서 보듯 검증되지 않은 인터넷 민의는 예상치 못한 문제들을 불러올 수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얼굴을 감춘 채 익명으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왜곡부터 난무할 지 모른다.

또 2030세대를 겨냥한 감각적 선동주의로, 감성적 집단주의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부작용들은 이미 서울시의 시정 운영이나 언론사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확인된 것들이다. 정보 혹은 민의의 가공ㆍ분석 단계에서 진실과 허위의 선별이라는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기대한 성과를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인터넷을 국정운영의 한 축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첫 시도인 만큼 무수한 도상훈련을 거쳐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이 설 때 본격적으로 도입하라는 말이다. 그 이전에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인터넷이 마법의 상자나 요술 방망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진희 부장

입력시간 2003/01/19 15:08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