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하루 200번의 거짓말

부모들이 자식들을 교육시키면서 빼놓지않고 당부하는 말이 있다. 절대로 거짓말 하지 않기.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저도 모르게 타고난 본능으로 배우고 습득하는 것이 바로 거짓말이다.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면서 아이들은 자라고 그 아이들이 자라 자식들에게 역시 당부하는 것 또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이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거짓말이 얼마나 나쁜지 누누이 이르고 때로는 거짓말을 하다 들켰을 때 호된 꾸지람과 벌을 주기도 하지만 정말이지 곰곰이 따져보건대 하루에 한번 정도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게 용서되고 통용되는 범위에서 작은 거짓말은 우리의 삶을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단언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내가 한때 3개 공중파 방송국의 일을 동시에 맡았던 적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연예인도 아니면서 KBS, MBC, SBS의 일을 모두 하게 됐었는데 물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장덕균이 3개 공중파를 점령했다’며 부러운 눈치들이었지만 정작 나는 죽을 맛이었다.

몸뚱이는 하나인데 각각 떨어져있는 3개 방송국을 돌아다니며 회의를 하고 아이디어를 짜는 일은 시테크 개념을 떠나 초단위로 세심하게 계획을 세워야 하는 일이었다. 한 방송국에서 회의를 하다 슬쩍 시계를 보면 다른 방송국의 프로그램 회의시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하고는 그야말로 꽁지에 불이 날 정도로 다른 방송국으로 달려간다. 거기서 잠깐 회의를 하다 또 슬그머니 일어나 ‘ 어, 나 점심을 못 먹어서 기운이 없어, 잠깐 나가서 뭐 좀 먹고 금방 올게’ 하고는 또 달려간다.

정말 못 먹어서 기운이 없는데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또 다른 프로를 향해 달려가고… 정말이지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고 나의 잠깐은 최소한 1시간짜리 공백이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사정을 알고 적당히 모르는 척 눈감아 주기도 하지만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내 맘은 정말이지 그런 지옥이 없었다. 잠깐 화장실에 간다는 사람이 두어 시간이 지나서 숨가쁜 얼굴로 돌아오니 서로 민망한 일이었다.

그래도 내 딴에는 머리를 쓴다고 탁자 위에 놓아둔 가방이나 수첩들을 그대로 두고 나오는 기민성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피곤하고 심신이 고달프기 짝이 없었다.

손바닥만한 여의도를 동서남북으로 뛰어다니며 택시로 이동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차량이 정체되면 택시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 아예 내려서는 뛰어가기가 다반사였다. 숨가쁘게 뛰면서 ‘내가 이거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고는 했다.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에게 연락을 취해보면 ‘지금 가고 있는 중이야. 거의 다 왔어’ 한다. 거의 다 왔다는 게 그제야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있을 때도 있고 ‘야, 나 지금 올림픽대론데 차가 무지 막힌다. 30분째 그냥 서있네’ 하며 너스레를 떠는 경우도 있다.

사실 약속시간에 제대로 닿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의 애타는 심정도 누구든 경험했을 것이다.

사람은 하루에 최대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200번이라는 놀라운 수치에 설마 그럴까 하겠지만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녹화를 끝낸 연기자가 ‘나 괜찮았어?’ 하고 물어오면 사실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않아도 ‘죽였어, 좋아 좋아’ 한다거나 ‘어제 새로 산 옷인데 어때요?’ 하면 어울리지 않아도 ‘딱 네 옷이다, 근사해’ 하며 추켜올려주기도 한다. 연예인들이 어쩌다 스캔들이 터지면 으레 친한 동료라거나 그저 오빠 동생하는 사이라고 발뺌하다가 나중에 우리 결혼해요 하는 천연덕스러운 거짓말도 많이 겪어봤다.

또한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우리는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이 들어 왔다.

사소한 거짓말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 채 우리는 숨가쁘게 살아간다.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범위를 정하는, 기준 없는 판단에 의한 사소한 거짓말을 이제는 조금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입력시간 2003/01/1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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