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보는 사회] 수상하고 답답한 시절 "占 보러가세"

정권교체기에 입시·인사철 겹쳐 최고 대목, '용한 집'은 문전성시

점(占)집 문턱이 닳는다. 연일 몰려드는 손님들로 점집마다 문전성시다.

기존 점집에서 인터넷 사이트의 유료 역술코너와 전화를 이용한 700 점술까지 새해를 맞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흔히 해가 바뀌는 1월은 이들 역술계에서는 최고의 대목. 토정비결 등 신년 운수를 보기 위한 고객들로 고객 수가 급증하는 데다 대학입시와 관련해 학교 선택과 당락 여부를 묻는 학부형 고객들의 출입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권 교체에 따른 사회적 급변기란 점이 이들 점가(占家)를 들뜨게 하고 있다. 정ㆍ관ㆍ재계 인사들이 앞 다퉈 ‘앞날 엿보기’를 시도하는 데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발걸음을 하는 인사들도 많아 소문난 점집들은 은근히 ‘대박’까지 기대할 정도다.

신 정권이 들어서는 데 승진운은 있는 지, 이동운이 있는 지, 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 지, 사업이 제대로 잘 될 지 온통 불안한 마음 속에 점집 문을 두드리고 있다.

점의 세계는 크게 역술계(易術界)와 신통계(神通界)로 나뉜다. 역술인들 사이에서는 학문적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역학계(易學界)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들은 사주 주역 관상 풍수지리 점성술 등의 분야에서 통계를 기초로 한 전문성을 갖고 있다.

신통계에서는 신(神)이 미래를 보여준다는 무속인과 함께 종종 앞날에 대한 예측을 하는 종교인들도 여기에 속한다.

역술계에서는 흔히 “신통계는 신기(神氣)가 떨어지면 보통 사람과 다름없다”고 하고, 신통계에서도 “복잡다단한 인간사를 통계수치에 의존할 수 없다”며 서로를 폄하하고 있다. 그래서 단골 고객들은 역술계와 신통계를 엇갈려 다니며 공통분모만을 취득하려고 한다.

이들 두 부류는 상대를 비하하면서 공존하는 자기 모순 속에 있지만 이들을 찾는 손님들은 IMF체제 이후 정권교체와 맞물려 날로 늘어만 가고 있다.


정ㆍ관계 고위직 사모님들 총 출동

점집의 1등 고객이 정ㆍ관계 ‘어르신’이란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권의 세력 변화에 가장 민감할 뿐 아니라 윗선에 의해 자리가 좌우되기에 누구보다 점술 의존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최근처럼 정권이 바뀌는 와중에는 더욱 그렇다. 기대감과 불안감이 극명하게 교차되는 선상에서 그들은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다닌다. 특히 ‘누구의 당선을 맞췄다’ ‘누구의 죽음을 미리 예측했다’는 등의 입소문이 나면 어김없이 해당 점집 앞에는 고급 승용차들이 줄을 잇는다.

서울 마포구 윤태현 철학원에는 지난달 대선 이후 10여명의 고위급 손님(역술가 추정)이 다녀갔다고 한다. 물론 부인이나 보좌진이 찾는 경우가 많고 당사자 이름을 밝히는 것을 꺼리지만 외모나 말투에서 정ㆍ관계나 군 계통인지 사업가 쪽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다고 한다. 또 2~3명이 함께 찾아오기도 하고 “누구 소개로 왔다”며 정확히 집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대개 “어른의 사주를 풀이해달라”고 말을 꺼낸 뒤 “올해 연 초에 대운(大運)이 있는 지” “큰일을 할 수 있는 지”를 문의한다고 한다. 내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어느 지역이 운세에 맞는 지” “누구를 따라가야 좋은 지”까지도 묻는다. 윤씨의 경우 사주를 먼저 풀어본 뒤 관상과 어투 등을 종합해 평가하는 데 가부(可否)를 잘라 말해주는 편이다. 복채는 4만~5만원선.

서대문구의 다른 철학원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보다 우회적으로 설명해주지만 당사자들이 기대감에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상당수 된다고 한다. 이 역술가는 “대부분 승진이나 당선에 따른 신분 상승을 기대하고 찾는 고객들이라 운이 썩 좋지 않게 나올 경우 답해주기가 부담된다”며 “한정된 자리에 후보자들이 몰려있어 웬만한 좋은 운이나 기세로는 선뜻 자리에 오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대선을 앞두고도 현불사 설송스님이 “화합의 기운이 승하는 해이므로 영남과 호남의 지지를 함께 받는 새로운 인물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전해지자 각 후보 진영에서는 서로 본인을 뜻하는 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ㆍ관계 만큼 권력변화에 민감한 곳이 기업들이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올해의 사업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정ㆍ관계 고객들이 부푼 기대를 갖고 점집을 찾는다고 할 때 이들 비즈니스 맨들은 우려 섞인 문의가 많다고 한다. “사업이 잘 될 수 있느냐” “OO종목과 나와 운대가 맞느냐”가 주류를 이룬다.

전통적인 단골손님으로 정치 경제 관련 인사에다 최근 들어서는 영화ㆍ방송ㆍ연예계 종사자들이 주 고객으로 편입되고 있다. ‘영화가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지’ ‘신곡이 뜰 수 있는 지’ ‘신 프로의 MC를 교체해야 하는 지’ 등이 단골 메뉴라고 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역술산업

예전에는 점을 놓고 사회 혼란기에 미래를 예측하고 싶은 심리를 이용한 미신에 불과하거나 일부 계층의 비뚤어지고 불건전한 행태로만 여겼다.

하지만 결혼과 궁합, 토정비결에서 연애ㆍ건강ㆍ관상 성형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중요한 일들이 있을 때마다 점을 보는 관행이 늘어나면서 이젠 계층과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오락의 일종이거나 통과의례적인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 자녀의 대학 선택과 사업운 및 직장의 인사이동 여부는 기본적인 문의사항이고, 추가로 요구되는 것이 신세대들의 연애운과 결혼운, 관상 성형 방향 및 건강 이상 여부까지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308명의 네티즌 여론조사결과 “운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믿는 편”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43.5%인 반면 “믿지 않는 편”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49.4%로 조금 더 높았다. “모른다”는 7.1%. 과거에 대해 점 보는 인구는 늘었지만 의존도나 신뢰도는 상대적으로 낮아진 편이다. 즉 재미있는 오락쯤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고객들이 전 연령층으로 늘어나면서 과거에 ‘도사’로 일컬어지면서 소규모의 영세 점포로 운영되던 점집들이 기업화 대형화 하는 등 비정상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역술인협회에 등록된 역술가는 전국적으로 10만여명. 신통계 무속인까지 합하면 20여만개의 업소가 성업중인 것으로 집계된다. 또 역술업이 번창하면서 고학력 실업자들이 너도나도 돈 잘버는 ‘점쟁이’가 되기위해 역술학원으로 몰리고 있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역술인은 올해 안에 3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이며, 전체적인 역술사업 규모도 연간 1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가히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불릴만 하다.

이런 점성술은 인터넷 등 정보통신의 발달에 의해 직접 찾아가지 않고도 안방에서 컴퓨터나 전화로 손쉽게 점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더욱 확대일로를 걷고 있다. 야후 다음 네이버 등 유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운세 코너가 유료와 무료로 나뉘어 어김없이 올라와 있다.

이중 한 사이트 역술 서비스의 경우 하루 매출액이 1,000만원을 훌쩍 넘고 있으며, 사이트에 들러 운세를 본 네티즌들은 하루 100만여명에 달할 정도다.

인터넷 점성술과 함께 붐을 타고 있는 수단은 700 전화 역?서비스. 스포츠 신문이나 잡지 광고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전화 역술도 200~300업체가 성업중이라고 한다. 전화 상담은 남의 이목을 의식하지 않고 쉽게 역술인과 접촉할 수 있어 성업중이다.


전통적인 신념체계 자리에 미신ㆍ무속 활개

전문가들은 역술산업 호황에 대해 “전통적인 신념체계가 무너지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및 소비욕망이 결합해 금기였던 미신과 무속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보고 있다. 이런 불안심리를 이용해 돈벌이를 추구하는 역술계 종사자들의 증가 역시 새로운 형식의 배금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하고 있다.

정체성을 상실하면서 허황된 점술에 의존하는 것은 본인은 물론 사회 경제적인 낭비와 허무주의의 만연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최근의 점술 호황은 IMF이후 극심해진 경기 하락에 따른 취업난 및 실업난이 가중되면서 심화된 측면이 있다. 미국에서도 실업과 물가불안으로 사회가 불안정할 때 신비주의 및 악령숭배ㆍ컬트주의 등이 유행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의 신비주의와는 또 다른 요인이 존재하고 있다.

능력보다는 ‘끈’에 의해 좌우되는 비합리적인 인사원칙이 사회 전체적으로 만연돼 있어 특히 정권 교체와 같은 변혁기에는 더욱 미래에 대한 불안심리 및 기대심리가 커져 이들 점집을 찾게되는 요인이 된다.

게다가 이번 노무현 정권과 같이 세대교체와 지역ㆍ노선 교체 등 이중ㆍ삼중의 변화가 일시에 진행되는 변혁기에는 더더욱 의존도가 높아진다. 또 정치와 경제원칙의 일대 변화에 따라 전 분야의 인사들이 이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위해 찾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해결의 열쇠는 건강한 사회 구현에 있다. 올곧은 인사원칙 확립과 원만한 시장경제구도의 고착화 등 밝고 건전한 사회로의 좌표만 설정되면 미신ㆍ무속의 입지는 당연히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3/01/21 13:34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