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도 아닌 것이… 대체종교 시대

21세기 종교의 가능성 연기ㆍ요가ㆍ단, 종교적 다방향 문화의 길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지난해 단학선원의 창시자인 일지 이승헌 대선사의 초청으로 선원 본부를 방문했다. 당시 그는 생태계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사회의 환부까지 치유한다는 ‘영성(靈性) 문화’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단학선원은 이미 한국과 미국에 360여개의 단군상을 세워 그 앞에서 고유의 의식은 물론, 명상ㆍ단학ㆍ안마ㆍ지압 등 실제적 요법까지 실시하고 있다. 2000년에는 지구상에서 우주의 기(氣)가 가장 많이 모여 있다는 미국 애리조나주 세도나 지역에 호텔을 인수해 ‘마고 가든’으로 이름 짓고 대체 의학, 기 요법 등을 펴오고 있다.

김지하 시인은 1990년대 소리꾼 임진택, 작곡가 김영동, 연출가 김민기씨 등 민주화 투쟁 현장의 동지들과 함께 ‘율려(律麗) 학회’를 결성, 문화 운동을 종교성과 결합하고 있다.

또 민족 문화와의 친화력이 강한 천주교의 경우, 기(氣)나 풍수(風水) 등 전통 문화 유산과의 공존을 강조하는 사례가 낯설지 않다. 80년대 후반 일부 목사들의 농촌 귀화 운동과 맞물리는 부분이다. 토지와 교감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자는 움직임이었다.


성과 속의 공존

성(聖)과 속(俗)은 더 이상 대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21세기 들어 교권(敎權)과 왕권(王權)은 ‘대체 종교(alternative religion)’이라는 커다란 울타리 안에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터득했다.

단학, 요가, 초월명상(TMㆍtranscendent movement), 기공, 마인드 컨트롤 등은 현대인에게 친숙해진 대체 종교적 모습이다. 정신세계사를 비롯해 이 같은 종교문화적 양상을 집중 탐색하는 문화 그룹은 이를 HPM(human potential movement), 즉 인간 잠재력 개발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구미 지역의 종교학에서는 1960년대 이후 ‘신종교ㆍ신과학 운동’으로, 일본에서는 70년대 후반 ‘대체지(代替知)’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던 바람이었다. 미국의 경우 뉴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동양사상과 물리학을 접목한 UC 버클리대 물리학과 프리초프 카프라 교수의 ‘유기체적 과학’론이 대표적이다.

한편 원불교와 증산교 등 80년대 선보인 국내 신흥 종교들은 문화적 요소의 비중이 기성 종교에 비해 훨씬 커졌다.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요가도 단학도, 나아가서는 특정 스포츠 같은 것도 종교가 될 수 있다는 현대 종교의 변신이기도 하다. 기성 종교로는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채워 줄 방편이 개인적 실천과 영성이라는 이름으로 장려돼 대체 종교의 양상을 강하게 띠게된 것이다.

종교 연구가 박상언(38ㆍ한국 종교 문화 연구소 연구원)씨는 “이 같은 움직임은 국내 기성 종교 안에서 확산 일로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천주교는 참선 수행법까지 종교적 수련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며 “목사의 말씀 중심이었던 개신교의 일부 목사도 참선 등 불가적 방식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양상들은 이단(haresy)이나 이교도(pagon) 등 기존 기독교의 개념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박 연구원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체 종교의 움직임은 사회 운동처럼 연대를 지향하지 않고 개별적 운동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내세나 영생보다는 개개인 심신의 평화를 지향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출구없는 사회에서 싹트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대체종교적 양상이 왜 1980년대 이후에 싹트기 시작했을까? 당시 국내의 대학가나 지성계는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과 변혁 운동 등 거대 담론 일변도여서 인간 실존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의 공간이 너무 협소했다는 점이 우선 지적된다.

또 이 시기, 전국의 캠퍼스에서는 전통 사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일부 종교적 성향과 결합한 것도 이유로 제시된다. ‘국풍’ 행사가 관주도의 행사였다면, 당시 출구 없는 사회에 대한 대응 양식의 하나가 전통 종교적 방식에 기반해 싹트기 시작한 대체 종교였다는 것이다. 기, 요가, 단 등 대체 종교적 현상들을 주제로 한 서적들도 당시 서점의 서가에 슬슬 꽂히기 시작했다.

관계자들은 그 출발점을 1970년대 모습을 드러낸 국선도(國仙道)였다고 본다. 당시부터 유입되기 시작한 도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국선도의 창안자는 청산거사로서 김정빈의 소설 ‘단(丹)’에서 주인공의 모델이 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국선도에 대체의학 등 현대인에게 보다 친숙한 과학적 요소로 발전시킨 것이 단학선원이다.

21세기를 전후해 대체 종교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높아 가지만, 국내 아카데미의 상황은 정반대다. 먼저, 한국내에서 종교학과가 개설된 대학은 서울대 서강대 가톨릭대 모두 5곳에 불과하다.

한국의 인문학이 전반적으로 겪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 비실용적 학문인 종교학, 그 중에서도 신종교의 한 분야만으로서만 자리를 점하는 현실이다. 대체종교학이 번듯하게 설 자리는 아예 없다.

마이너 학문에서도 비주류인 대체 종교는 그러나 사회 변동과 이해의 중요한 지표로 작용한다. 당대 사회 문화의 중요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그러나 사회 과학 분야의 시각으로는 포착될 수 없는 사회 변동의 순간을 포착해 낸다. 9ㆍ11 테러 사건 등 근본주의적 종교의 폐해 역시 이 분야가 보다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기독교와 불교라는 양대 종교에로의 집중이 지나친 한국의 경우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 한 문제점들을 대체 종교적 현상이 지적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존 종교관행에 반성의 계기

목회자 개인의 영적 능력을 지나치게 강조, 마치 신자는 그로부터 은혜를 기다리고 받기만 하는 피동적 존재로 폄하시키는 듯한 인상을 주기 십상인 한국 개신교 특유의 관행을 반성하는 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불교의 경우, 개별적 기복에 초점을 맞추는 선(禪)에만 집착하기 일쑤인 양상을 탈피하는 긍정적 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요구다. 실제로 내면의 세계뿐 아니라 주변의 세계에도 집중해야 한다는 최근의 ‘아바타 명상’이 바로 이 같은 아쉬움에 화답한 대체 종교 현상이다.

원불교가 1990년대 이후 원경 고등학교 등 산하 종립 학교에서 실시 중인 ‘마음 공부’ 강좌는 이른바 문제 학생들을 위한 대체 종교 프로그램이다. 기성 학교에서 실시해 온 도덕 과목에 대한 반성과 대안이다. 마음 공부 일기 쓰기, 곱씹어보기 등의 지속적 프로그램으로 이 종교가 강조하는 바 인간 본성 특유의 순수성을 회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종교 연구가들은 대체 종교를 일컬어 ‘종교의 패스트 푸드’라고 압축한다. 기성 종교는 신자로서 교리의 가르침과 제약에 순응해야 하지만 대체 종교는 집회를 무술 도장이나 스포츠 센터에서의 활동으로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구원이란 거대한 문제가 ‘치유’라는, 보다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로 특화된 결과다. 대체 종교적 현상이 증가하고 있는 데 대해 종교 연구가들은 “세계화와 고도의 자본주의화로 도덕성에 큰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명상이나 건강 등 영적 영역에서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의의를 말한다.


기성 문명에 대한 저항

서울대 종교학과 정진홍 명예 교수는 “자신의 종교만을 좇던 ‘종교의 시대’에서 종교간의 대화를 강조하는 ‘종교들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때가 지금”이라며 “앞으로는 ‘종교적인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 아닌 것들이 종교가 되는 시대, 극단적으로는 종교가 수단화되는 시대로 가는 과정상의 현상이라는 관측이다. 정 교수는 “불교가 힌두교의 전통을 깨트려 출현했고, 기독교가 유대교 율법 전통(legal system)의 대안으로 생겨났다”며 “역사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종교는 사라진다, 종교도 망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덧붙여 박 연구원은 “대체 종교적 양상들은 결국 기성 문명에 대한 대항”이라며 “이들을 제대로 읽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박 연구원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대체 종교적 양상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즉, 대체 종교가 지나치게 개인 중심적이어서 사회 의식이 결여됐다는 점이 가장 큰 역기능이라는 것이다. 또 최근 인도에 대한 사회적 붐에서 드러났듯, 그 관심이 신비적ㆍ실용적인 방향으로 경도되다 보니 인도의 실체를 놓쳐 버릴 뿐 아니라 그릇된 오리엔탈리즘으로 귀결될 소지 역시 다분하다는 것이다.


사회로부터 고립될 위험성도

더불어 이들 대체종교가 수련자들을 일상 생활의 부적응자로 만들어 결국 사회로부터 고립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따른다.

현대 종교학은 ‘종교의 본질은 내세의 유무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하물며 대체종교 등 비주류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고수할 경우 우리의 문화적 역동성을 놓쳐버린다고 지적한다. 대체 종교는 우리 사회가 강성(强性)의 문화, 즉 이데올로기 중심의 문화에서 연성(軟性)의 문화, 즉 다양한 문화의 사회로 옮아가고 있다는 징표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은 월드컵과 반미 촛불 시위 등 일련의 거대한 물결로 그 과정을 관통해 내고 있다. 여기에 대체종교적 움직임들이 가세함으로써, 한국은 이제 ‘쌍방향 문화’는 물론 ‘다방향 문화’의 길로 접어 들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성(聖)과 속(俗)의 윈-윈 게임’인 대체종교학이 제시할 수 있는 길은 무한히 열려 있다.

박 연구원은 “그러나 현재 학술진흥재단에서는 아예 종교 분야에 대한 지원 조차 전무한 실정”이라며 “우후죽순으로 번지고 있는 대체종교적 양상이 방치될 경우, 신비주의로 경도돼 지나치게 개인중심적으로 귀결될 수 있다”며 당국의 체계적 연구 지원을 강조했다.

미국 하버드대 과학사 강좌는 국가의 지원 아래 ‘정신-육체-두뇌(Mind-Body-Brain)의 상호 연관’이라는 주제로 강좌를 개설해 대체종교적 가능성을 꾸준히 탐색하고 있다.

장병욱 기자

입력시간 2003/01/21 14:16


장병욱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