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 여행] 은희(上)

'꽃반지 끼고' 가요계 강타한 비바리

은희만큼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를 모았던 1세대 포크 여가수는 없었다. 1년후에 데뷔한 국가대표급 포크가수 양희은도 은희의 인기를 능가하지는 못했다.

1970년대 초반 발표되는 곡마다 트로트 가수들을 제치고 가요차트의 상위곤에 랭크되었던 통기타 가수는 은희가 유일했다. 애간장을 태울 만큼 달콤하고 상큼했던 그녀의 노래들은 학생층에 국한되지 않은 폭넓은 계층의 사랑을 받았다.

대표곡인 '사랑해'. '꽃반지 끼고' 등은 국민적인 연가로 지금은 애창되고 있다. 하지만 높은 인기만큼이나 당돌하고 튀는 행동으로도 유명했던 그녀는 대중의 관심을 몰고 다녔던 뉴스메이커였다.

본명이 김은희인 은희는 1951년 5월13일 제주도 모슬포의 평범한 집안에서 2남1여 중 막내로 태어났다. 6살때 농협의 전신인 금융조합 제주지점장이던 부친의 정년퇴직을 한 이후 집안사정은 어려워다.

하지만 제주남 초등학교 시절 제주방송국의 어린이 합창단원과 어린이 성우로 활약할 만큼 그녀는 예능부문 솜씨로 인기만점의 소녀였다. 그녀는 뛰어난 예능소질로 입학료를 면제받고 제주여중에 진학했다. 중학교에 진학한 그녀는 방과후 음악실에 홀로 남아 피아노를 연습할 만큼 음악에 빠져 들었다.

제주여고 때는 민속예술단의 일원으로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 제주 해녀의 춤 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1967년 12월 여고1학년 겨울방학때 은희는 서울구경을 위해 내무부(현 행정자치부)에 근무하는 작은 오빠 집에 상경했다. 어머니가 선물한 손목시계를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작은오빠에 꾸지람을 듣자 고향으로 내려온 후 집안으로 발칵 뒤집어 놓는 대사건을 터뜨렸다.

1968년 1월, 홧김에 어머니에게만 귀뜸을하고 가족들 몰래 여군에 지원한 것이다. 뒤늦게 집안이 난리가 났지만 그녀는 이미 서울에서 여군훈련을 거친 후 대구에서 육군 제2군사령부 소속 여군 타자병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충동적으로 여군에 입대했을 만큼 그녀는 당돌하고 자유분방한 소녀였다.

군에서도 작지만 노래잘하고 귀염서 있던 은희는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 여군생활에 싫증이 났던 그녀는 또 한번 사건을 터뜨렸다. 1968년 6월15일 보름간의 정기휴가를 얻는 김은희 일병은 귀대하지 않았다. 탈영을 한 것이었다.

가정으로 돌아온 후에는 서울예고 2학년에 전학해 학업을 마쳤다. 1970년 3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은희는 서울의 '살롱'가에서 무명가수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새롭게 결성된 이필원, 박인희로 구성된 혼성 듀엣 뚜와에무와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에 자극 받은 세기음악학원 기타 강사 출신 무명가수 한민은 혼성듀엣 결성을 위해 여성파트너를 찾고 있었다. 무명 통기타 가수 김은희는 세기음악학원 오르간 강사 김학성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었다. 그의 소개로 한민을 만났다.

맑고 청아한 고음으로 노래하는 김은희의 목소리에 반한 한민은 이탈리아어로 개구리와 두꺼비라는 뜻의 '라나에로스포'란 이름으로 혼성듀엣을 결성했다.

대학가에 흘러 다니던 주인이 분명치 않던 '사랑해'를 타이틀곡으로 1970년 8월부터 화음연습을 하며 녹음작업에 들어갔다.

1971년 1월, 첫 음반 <사랑해-성음>이 발표되자마자 그녀는 "한민과는 성격이 맞지 않다"며 돌연 솔로가수로 독립해 버렸다. 당시는 남녀 혼성듀엣에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던 기기. 석연치 않은 이유로 팀을 탈퇴해 미8군 무대와 청개구리 홀에서 미니 리사이틀을 벌이며 솔로가수로 활동했던 은희에게 "미국 유학생인 남자친구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탈퇴를 했다"는 소문이 뒤늦게 나오기도 했다.

음반 발표가 되고 몇달이 지나자 '사랑해'는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또한 '사랑해'의 애절한 노랫말은 중앙대생 오경운이 백혈병으로 죽은 애인을 그리며 지은 곳이라는 애틋한 사연과 더불어 여자 목소리의 진짜 주인공이 2기 라나에로스포로 호라동하고 있던 최안순이 아닌 은희로 알려지면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가요계의 기인으로 유명했던 우주 프로덕션의 황우루가 관심을 보이며 찾아왔다. 그는 1971년 3월 은희를 스카우트해 자신이 경영하던 그랜드레코드사에 전속시켜 첫 독집음반 <꽃반지 끼고-유니버셜>를 발해했다.

오랫동안 변혁 편곡, 은희 작사로 알려진 이 노래는 일본 곡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김세환도 제목만 '오솔길'이고 '꽃반지 끼고'와 가사내용이 같은 곡을 몇달후에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누가 진짜 주인이냐는 의문을 품게 되자 장안의 화제로 떠올랐다. 사실 이 노래는 60년대말 마닐라 아시아 잼보리 대회에 일본팀의 일원으로 참가한 한 재일교포가 작곡한 곡이었다.

이 곡은 은희 이전에 이미 김세환이 방송과 밤무대에 불렀다. 김세환은 "종로의 출연업소에 은희가 찾아와 이 노래를 취입하고 싶다고 했지만 취입을 앞두고 있는지라 거절했었다. 헌대 원제목인 '오솔길'을 '꽃반지 끼고'로 바꾸고 가사도 조금 수정해 먼저 음반을 발표해버려 황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입력시간 2003/01/2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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