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가 사는 법] 박세경

완벽한 시골사람이고 싶은 문명인, 그 문명의 때를 벗어가는 여자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웠다는 날, 경기도 가평군 두밀리('두메산골'의 한자말) 골짜기의 수은주는 영하 15도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아,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언뜻 보기에 앳되어 보이는 여자가 숫기 없는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바로 '두밀리 자연하교'(www.soanmoo.or.kr)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박세경(41)씨다. 들살이 간 아이들이 곧 들이닥칠 예정이라 식당 한쪽에 자리한 조리실에서는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고 조리하는 손길들이 부산하다. 차분하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려면 한참은 기다려야 할 성 싶었다.

"저도 좀 도와드릴까요?"

찾아온 손님에게 미안한듯 머뭇서길던 박씨는 함께 수제비를 떠 넣으며 비로소 조금씩 이야기를 시작했다.


빵빵한 이력에 공동체 사무국장 추가

61년생으로 386끝자락을 간신히 붙들어 매고 있다는 박씨는 독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후, 굵직굵직한 출판사 편집부를 거쳐 음악저널 편집장으로 재직하다 1992년 전문 편집인으로 독립했다.

현재는 편집 프리랜서이자 김포대학 전자출판과 겸임교수로 다른 대학의 출판관련학과에도 출강하고 있다. 여기까지의 이력은 한 분야에서 열심히 뛰어온 전문인의 이력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박씨의 현재를 절반도 소개할 수 없다. 여기에 '소나무 생협'과 '두밀리 자연학교'공동체의 사무국장이란 특별한 이력 하나를 덧붙여야만 지금의 박씨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

그가 이 공동체의 사무국장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일은 그의 캐리어에 비해 너무 적거나, 너무 많다.

"처음 대안학교로 시작했을때 재정을 담당했어요. 대안학교라 하면 공교육에 반하는 개념인데 저희는 그건 아니고 공교육을 보조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자연학교'라고 명칭을 바꿨어요. 거기에 우리 공동체의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소나무 생협이 생기면서 거기 일까지 하게 되었죠.

그렇다고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고요. 아침에 일어나 홈페이지 확인하고, 공동체 조합원들 (서울, 일산, 경기지역에 흩어져 있다.)에게 연락사항이 있으면 하고, 이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돕고, 통장관리(운영비, 출자금 관리 등)랑 장부 정리들이죠.

그러니까 공동체가 잘 운영될수 있도록 자잘한 일을 하는 건데 무엇보다 모든 조합원들이 다 이 조합의 일원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첫번째 임무죠. 그래서 조합원들 간의 소식을 꼼꼼하게 챙기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죠"


스스로, 더불어 사는 두밀리 사람들의 꿈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점점 더 전문화, 세분화 되어가고 사회구성원 역시 시스템에 맟춰 자신의 영역을 견고하게 쌓아가느 현대사회에서 공동체라니! 분명한 것은 그가 이 표시도 나지 않는 고도 일을 하는 것이나 다른 조합원들이 이렇게 녹록치 않은 삶의 방식을 택한 것이 오로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먼저 소나무출판사에서 시작이 되었어요. 주로 사회과학이나 사상쪽의 책들을 만들다가 자연주의 쪽으로 색깔을 바꾸면서 1996년에 출판사 식구들, 필자들을 중심으로 공동출자 형식으로 '소나무 생활협동조합'이라는 모음을 만들었죠.

자연학교는 이런 뜻을 알리는 광고 겸, 경제적 자립의 한 방편으로 시작했는데, 처음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자연학교, 울타리 없는 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채규철 선생의 두밀리 학교를 만나 한 가족이 되었어요. 그리고 이런 삶의 방식을 쫓아 귀농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거죠."

이들 공동체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은 이들이 꾸리는 '자연학교'의 3가지 교육 목표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타율적인 규율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 깨우치는 '자율적' 질서에 순응하는 '저절로'('인위적'과 대치개념) 살기, 몸의 주인인 '내'가 자신의 기초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스스로' 살기, 장애·비장애, 남여노소의 차별을 넘어 서로 도우며 느리게 살자는 '더불어'살기를 실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해보자'는 것.

그러나 이미 타율과 편리한 속도에 젖어있는 몸과 마음이 이런 삶을 온전히 살아내기엔 적지 않은 어려움과 혼란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가장 자연에 가까운 유기농 재로를 이용한 수제비에 물김치, 김장김치를 점심메뉴호 한 점심시간은 이들 공동체의 한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막 들살이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몹시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어떤 제재도 받지 않고 식당으로 몰려와 보호대도 하나 없는 난로 곁의 배식대 앞을 가득 메웠고 곧 완성된 수제비가 배식되었다. 난로 옆을 돌아 복닥거리는 친구들을 피해 뜨거운 그릇을 들고 식탁까지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은 불안하기만 하다.

"아이들이 알아서 잘해요. 부모들의 지나친 간섭이나 과보호가 오히려 아이를 약하게 만들어요. 3, 4짜리들도 뜨거운 걸 잘 들고 다니던데요."

옛날 부모들의 양육방식처럼 아이들은 스스로 잘 자란다는 그들만의 자연스러운 교육철학이다. 한 가정의 아이들은 그수가 아무리 많아도 일정한 규칙과 질서아래 자라며, 더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돌보는 질서가 자연스레 자리를 잡는다. 반면에 고만고만한 8, 9살 아이들 7, 80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단체 활동은 이질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을 의도적으로 묶은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의 규익(적어도 '안전'에 대한)은 필요한데 타율에 대한 과민반응이 적절한 질서가 필요한 지점을 자칫 놓치고 있는 듯했다. 그 밖에도 기본적인 의식주, 교육, 의료문제들을 공동체 안에서 모두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길러내는일 역시 만만한 일이 아니다.

"먹거리 문제는 '소나무 생협', 교육문제는 출판사와 자연학교를 중심이 돼야 하는데 아직은 부족하죠. 그리고도 최소한의 경제적인 문제가 남는데 이 때문에 대부분의 귀농가족 중 한 명이 도시에 나가 경제활동을 하느라 주말부부로 살아요. 가장 시급한 의료문제도 고민하고 공부하고 있고요."


익숙한 것들과의 혹독한 이별

"왜 다 포기하고 거기 가서 그러고 있는냐?"

그를 아느 사람이라면 다 한번씩 하는 말이다. 그가 두밀리 사람들을 만난 것은 우연 같은 특별한 인연에 끌려서다.

"제 사무실을 옮기게 되었는데, 우연히 소나무 출판사 바로 옆방으로 가게 됐어요. 그 사람들은 매식을 안하고 늘 밥을 해먹는 거예요. 그러면서 한번씩 초대해줘 같이 먹고… 저는 혼자니까(웃음)그렇게 사람들과 가까워졌어요. 어려운 재정에도 소박하고 욕심 없는 그분들과 어울리며 마음이 편안해졌고 계속 그렇게 살고 싶어졌어요. 정말 내가 원하는 걸 알았고, 그러면 '완벽한 시골생활'을 해보자 싶었어요.

정말 다양한 경력을 가진 분들이 여기 들어와 정착하고 사는데 모두 친구처럼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죠. 그게 참 좋아요. 어떤 경계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거요. 사회생활에선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하는 일, 억지로 해야 하는 일 등 늘 사람에, 무엇에 시달리잖아요ㅣ 여기도 여전히 사람으로 인해 힘든게 있지만 서로 힘이 되어주기도 해요. 도회적인 삶의 양식을 다 버리지도 못했어요. 더구나 농민도 아니고, 당장 제 집은 보일러에 TV, 수세식 화장실을 다 쓰고 있거든요."

그럼에도 순전히 자력으로 어떤 것에도 기대지 않고 우뚝 자연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혹적이다, 그런데 거기에 함께 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건 큰 버팀목이 된다.

"처음 여기 왔을때, 콩 타작을 배우며 했어요. 너무 힘들었는데도, 제가 꽤 했어요. 농사짓는 분들이 칭찬하고…(웃음) 근데, 그 힘든 걸 하면서 내가 진짜 일을 잘 하는구나 하고 저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일한 후 갖는 조용한 시간이 주는 평화가 좋아요."

그러나 그가 만족스러운 '평화'를 갖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영하로 떨어지는 실내의 온도에서 견디는 것에서 시작하여 익숙한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할 만큼 혹독한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인 결혼을 완전히 배재한 것이 아닌 이상 생각해 볼 일이다.

"다시 도시 생각이 날 정도로 이 생활을 오래 한 것도 아니고(3년째), 아직도 도시에서 경제활동도 하고요. 결국 장소만 다를 뿐 여전히 도회적인 방식으로 살고 있어요. 차츰 바꿔가겠지만 정말 두밀리의 '리민'이 되는게 소망이에요. 시골, 도시 이렇게 양분하기 보단 도시와 시골이 '함께 사는'것도 가능한 것 같아요.(웃음) 결혼…인연이 된다면… 기왕이면 삶의 방식이 비슷하면 좋겠어요. "

그의 실험은 막 시작되었다. 사회시스템안에 맞추느라 잃어버린 '자신의 힘'을 찾기 위해 거울을 닦듯 자신의 몸에서 문명의 때를 조금씩 벗겨내기 시작한 것일뿐.

입력시간 2003/01/2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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