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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북한 핵이라는 유령은

“무시무시한 유령 하나가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공산당 선언이 나온 것은 지금부터 150여년 전인 1848년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모두 4장으로 된 이 선언을 통해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며 프롤레타리아는 혁명계급”이라고 규정하고 “프롤레타리아들이여, 그대들이 잃을 것은 쇠사슬 뿐이고 얻을 것은 세상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쳤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1917년 레닌은 당시 자본주의 후진국 제정러시아에서 붉은 혁명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그가 터를 닦은 공산당 1당 체제는 또 70년이 흐른 1989년 동유럽을 시작으로 차례로 무너졌다.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중국마저 최근 후진타오 총서기 등 제4세대 지도자들이 권력 전면에 나서면서 당헌을 수정, 계급투쟁을 강조한 공산당 선언을 지워버렸다. 공산당 선언이 남은 곳은 북한과 쿠바가 유일하지 않나 싶다.

사망선고를 받은 공산당 선언에 빗대자면 한반도 상공에는 공산주의라는 유령보다 더 무시무시한 ‘북한 핵’ 유령이 배회 중이다. 93년에 이어 다시 나타난 북한 핵문제는 최근 누그러진 미국의 태도와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의 중재 움직임으로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에서는 벗어난 듯하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를 보는 시각이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선(先) 핵 개발 포기라는 전제를 강요하는 부시 미 대통령의 태도는 바뀐 세계전략의 산물이니 그렇다치고 우리 사회가 느끼는 체감 위협은 93년에 비해 훨씬 약해졌다. 젊은 세대에서는 ‘전쟁이야 나겠어’ 하는 생각이 대세를 이룬다.

다행스럽게도 달라진 것은 북한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북한은 핵개발 프로그램 시인-제네바 핵합의 파기-IAEA 봉인 해제-NPT 탈퇴로 이어가며 위협의 강도를 높여 왔지만 속내를 완전히 감추지는 못하고 있다.

북한의 대외창구라고 할 수 있는 주중, 주러 북한대사관을 보자. 두 대사관은 북한의 양대 동맹국답게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주중 대사관은 그 규모가 구 소련대사관에 이어 두 번째라는 말을 들을 정도고, 모스크바에 있는 북한 대사관도 마찬가지다.

아시아와 유럽으로 ‘열린 창’역할을 맡다 보니 부지내에 5~8층 아파트를 지어 베이징과 모스크바를 오가는 많은 관리와 무역 일꾼들에게 숙소로 제공해 왔다. 그 역할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대사관은 그동안 한국특파원은 물론 외신 기자들에게도 빛 좋은 개살구였다. 출입이 철저히 차단돼 단신 하나 쓸 기사거리조차 제공받지 못했다. 기껏해야 체제 홍보차 친북 언론 3~4개사를 초청해 대접하곤 했다.

그런 대사관이 북핵 문제가 불거진 지난해 10월이후 활짝 열렸다. 주중 대사관의 경우 11월부터 최근까지 기자회견 명목으로 세 차례나 외국 특파원들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뻣뻣하던 최진수 대사와 공관원들의 자세도 몰라보게 나긋나긋해졌다. 한국 특파원들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주중 대사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주러 북한대사관도 서방 기자들에게 처음으로 개방됐다. 박의춘 대사가 북핵 기자회견을 가졌던 1월13일의 일이다. 한국특파원을 초청할 만큼 대담하지는 않지만 친북 언론 3~4개사를 살며시 부르던 때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TV촬영까지 허락했다고 한다.

구 소련 영화의 산실인 모스필름이 자리한 필리모프스카야 거리에 있는 주러 북한대사관은 그동안 TV 촬영에는 아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97년 8월 말에는 국내 모 방송의 현지 카메라맨이 대사관 앞에서 촬영하다 몰려나온 험악한 대사관 직원들에게 폭행 당하고 카메라 장비를 빼앗기기도 했다.

당시 오디오에 잡힌 북한 일꾼들의 발언은 “남조선 첩자야, 죽여 버려, 밟아 버려”였다. 그 때가 장승길 주 이집트 북한대사 일가족이 망명하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라고는 하지만 북한대사관 취재는 늘 그렇게 위험하고 살벌했다. 그런데 TV카메라를 마음대로 돌리게 하다니 놀랍다.

대사관의 변화로 북한 전체를 말할 수는 없다. ‘특유의 선전 공세’라고 색안경을 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 속에 흐르는 개방과 화해의 기운은 뚜렷하다. 미국에 대해 불가침 및 체제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나 ‘말’과는 달리 현저하게 누그러진 적대‘감정’ 등이 대사관 개방과 일맥상통한다.

노무현 당선자의 북핵 문제 다루기는 이제 시작이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생각할 것은 북한이 어떤 형식으로든 변하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지난 대선을 계기로 혁명적 변혁을 맞고 있듯이 북한도 바야흐로 화해를 바탕으로 한 신사고를 모색하고 있다면 그 흐름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북한 핵이란 유령을 잡는 방법이 의외로 쉽게 나올지 모른다.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2003/01/2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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