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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열풍] 인생역전, 대박 신드롬

당첨금 무제한에 '돈벼락 꿈', 사행심 조장 부작용도

‘너도 나도 인생역전’

지난해 초에는 ‘부자되세요’라는 덕담이 유행하더니 올해에는 벽두부터 ‘인생역전 신드롬’이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 ‘인생역전’은 지난해 12월 국내에 도입된 온라인연합복권 로또가 내건 광고 슬로건.

이 복권이 얼마 전 국내 복권사상 최고 당첨금인 65억 7,000만원의 잿팍을 터트리면서 인생역전이 가능한 꿈 으로 서민 속에 파고들고 있다.

‘복(福)을 주는 종이’라는 뜻의 복권. 원래의 어원과는 달리 그 동안 사행심을 조장한다는 면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아왔다. ‘복권을 산다’고 하면 으레 주변에서는 ‘성실하게 일해서 돈 모을 생각은 하지 않고 허황된 꿈을 꾼다’고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 일쑤였다.

복권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인식은 요즈음도 여전하다. 그러나 복권 판매량은 급속도로 늘어간다. 평생 뼈빠지게 일을 해도 내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하는 서민들에게, 자녀들 사교육비를 대기 위해 ‘매춘’도 마다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팍팍한 현실에서 단 한번에 오늘의 삶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인생역전’이란 말은 마지막 남은 희망이요, 빛이기 때문이다.


로또 판매액 한달만에 4배로 껑충

택시기사로 일하는 이모(55)씨는 “65억 7,000만원의 복권 1등 당첨자가 나왔다”는 뉴스를 본 뒤 이튿날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근처 복권판매소에 들렀다. “65억이나 되는 그 돈을 어디다 쓰냐”고 혼잣말을 하면서 4,000원으로 ‘인생역전’의 주인공을 배출한 화제의 로또 복권 두 장을 구입했다. “무슨 복이 있어 당첨되겠어? 혼자 공상으로 하룻밤에도 집을 열 채는 지었다 부쉈다 하는 재미로 사는 거지.”

주택복권이 처음 나올 무렵인 1970년대 초부터 매주 복권을 사왔다는 이씨. “최고 당첨 금액이 2,000원이었다”고 푸념하면서도 ‘이번에는 혹시’하는 기대감이 역력한 표정으로 운전대를 다시 잡는다.

‘인생역전 신드롬’은 이미 우리 사회에 폭넓게 퍼져가고 있다. 로또복권한 장으로 무려 51억원이라는 현금을 손에 쥐는, 인생을 역전시킨 주인공이 탄생하면서 지금껏 복권에 무관심했던 일반 직장인과 여성들까지 복권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서울 서초 방배동 ‘복권천국’앞에서 만난 여대생 소모(23)씨는 “주식이나 복권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에 하도 주변에서 로또복권 얘기를 하길래 구입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벤처 열풍이 휘몰아치던 2000년 초반에 대학가에 밀어닥친 ‘벤처 신드롬’ 못지 않는 열기가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복권천국’의 주인 박병윤(34)씨는 “6회 추첨을 앞둔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밥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겨우 우유 하나로 허기를 때우고 손님들을 맞았다”고 말했다.


명당복권 배달, 로또계 성행

로또복권은 판매 개시 단 한달 여 만에 국내 복권시장(주당 판매액 약 200억원)의 절반 이상을 잠식했다. 로또 복권 주관은행인 국민은행에 따르면 50억원 이상의 사상 최대 당첨금을 내걸었던 6회차에는 1주일간 판매금액이 153억원에 달했다. 1회차 판매액이 37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불과 한 달반 만에 판매액이 4배로 급증한 셈이다.

대박의 꿈은 젊은이들의 세상인 인터넷으로도 급속히 전이되고 있다. 다음과(www.daum.net)과 프리챌(freechal.com) 등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연일 복권 당첨비법을 제공하거나 정보를 교환하는 관련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개설한 다음의 ‘lotto6/45’카페는 회원수가 무려 7,000명을 넘어섰다. 이들 사이트에는 로또 관련 최신 소식은 물론 ‘당첨 노하우 공개’ ‘예상 당첨 번호 제시’ 등 로또 당첨율 높이는 비법이라는 갖가지 글들이 올라와 있다.

해외의 로또 관련 동향을 파악해 의견을 제시하는 열성파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심지어 ‘명당 복권’을 구입해 배달해주는 아르바이트도 생겨났다. 글로리아포스트(www.glorypost.co.kr)는 전국에서 1등 당첨자를 배출한 복권판매소에서 복권을 직접 사서 배달해 준다.

로또복권 관련 부대 상품도 인기 상한가. 2만~10만원 대에 이르는 로또복권 숫자지정 자동구매 프로그램이 수입됐고, 로또 숫자를 고르는 방법 등을 소개한 ‘로또마스터’라는 번역서도 나와 인터넷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최근에는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끼리 한꺼번에 많은 양을 구입해 당첨됐을 경우 당첨금을 나눠 갖는 ‘로또계’나 공동구매 모임도 우후죽순 생겨나는 추세다.

1월 초부터 인생역전을 꿈꾸는 주변 사람들을 모아 로또계를 운영하는 외국어학원 강사인 유모(30)씨. 그는 지난해 말 미국에 어학연수를 나갔다가 로또 복권을 알게 됐다. 이때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복권을 구입한 뒤 당첨금을 나눠 가졌다는 뉴스를 보고, 귀국 후 동료 강사들을 모아 계를 조직했다.

유씨는 “공동으로 복권을 대량 구입하면 아무래도 당첨이 될 확률이 높아질 것 같다”며 “좋지 않은 이미지로 오해를 사는 경우도 많지만 서로 믿을만한 사람들과 더불어 행운을 나누는 것은 공동선이자 단합놀이”이라고 말했다.


100억대 당첨금 시간문제

로또복권이 ‘인생역전 신드롬’을 일으키며 인기를 얻는 가장 큰 이유는 ‘초대박 당첨금’에 있다. 복권을 구매할 때 기왕이면 당첨금이 큰 것을 구입하려는 것은 복권 구매자들의 공통된 심리. 복권판매점 주인들은 고객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당첨금이 얼마냐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점에서 로또복권은 특혜 시비를 얻을 정도로 조건이 좋다. 판매액에 따라 당첨금이 늘어나고, 1등 당첨자가 없으면 해당 금액이 다음 회로 이월되는 특성상 당첨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최고 당첨금 액수도 무제한이다.

올해부터 다른 복권의 상한선이 5억원 이하로 제한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야말로 한 번 걸리면 단숨에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미래사회전략연구소 곽보현 부소장은 “외국 로또의 경우 1,000억대가 넘는 잭팟이 터지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국내에서도 머지않아 100억대 이상의 1등 당첨자가 탄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정해진 숫자를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숫자를 고르는 과정도 마치 게임을 하듯 즐거움을 준다. 특히 젊은 층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는 이유다. 내가 선택한 숫자가 나의 구질구질한 인생을 역전시켜준다? 얼마나 멋진 꿈인가.

국민은행 복권사업팀 한희승 과장은 “젊은 직장인들이 밀집한 오피스타운을 중심으로 복권 판매율이 높은 편”이라고 밝혔다.

강남의 증권회사 직원 김모(34)씨는 수학의 확률 문제를 푸는 심정으로 기존의 당첨 번호를 분석한다. 로또 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복권 추첨 전날엔 친구들과 같이 먹고 자며 연구하기도 한다. 김씨는 “스스로 선택한 번호에 나의 행운을 걸어본다는 점이 흥미를 자극한다”고 말했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소탈한 이미지의 모델 송강호를 내세워 ‘당신에게도 인생역전의 기회가 올 수 있다’고 외치는 광고도 서민들의 눈길을 빼앗는다. 복권은 경기 불황의 시대일수록 많이 팔린다고 한다. 일거에 굴러들어오는 행운으로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심리가 확산되기 때문이다.

동국제강이 지난해 말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샐러리맨들은 나름대로 윤택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금전적 기준(10억원 이상 47%)을 정해 놓고 있지만, 직장 생활을 통해 평생을 벌어도 그 기준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고 싶으냐”는 질문에 ‘꾸준한 직장생활을 통해’라고 답한 응답자는 9%에 불과했다. 이런 심리가 통상적인 돈 모으기보다 한 순간에 거액을 잡을 수 있는 ‘인생역전’의 마력에 빠져들게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한창수 수석연구원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지면서 서민들은 실제 현실의 경기 상황을 더욱 비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며 특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벼락맞은 확률보다 적은 당첨확률

로또 복권은 판매액의 50%를 당첨금으로 지급한다. 소비자는 복권을 사는 순간 이미 절반의 손해를 본다. 더욱이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 분의 1이다. 사람이 1년 동안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은 4,000분의 1, 벼락을 맞을 확률은 50만분의 1임에 감안할 때 로또 당첨의 확률은 거의 환상에 가깝다.

어떤 이는 한 정신병자가 여의도 대한생명 63층 꼭대기에 올라가 뒤돌아서서 돌을 던질 때 내가 그 돌에 맞아죽을 확률이나 다름없다고 우스갯 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로또 복권이 이상 과열 조짐을 보이면서 ‘사행심 조장’에 대한 비판 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서천범 소장은 “대박 열풍으로 한탕 심리가 만연해지면 성실하게 일하는 대다수 근로자들의 힘을 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로또복권은 노동부 건교부 등 7개 복권발행기관이 연합해 만든 것으로 판매금액의 30%를 근로복지진흥기금, 국민주택기금 등 공익을 위해 사용한다. 미래산업연구소 곽보현 부소장은 “복권 기금을 투명하게 사용하고 투기성 게임을 지양한다면, 한 주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레저 문화로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2003/01/2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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