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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살생부 진짜 있나?

지도부 진화노력 불구 일파만파, 평가 비교적 정확

최근 수년간 인기순위 상위권에 오른 TV 프로그램에 ‘사극(史劇)’이 빠지지 않는다. ‘용의 눈물’ ‘여인천하’에서 현재 방영 중인 ‘제국의 아침’에 이르기까지 제목만 들어도 기억이 생생한 사극들이 안방무대를 점령해 왔다. 시대배경이야 후삼국시대에서 대한제국 시절까지 다양했지만 주 내용은 왕국의 흥망이나 정권 교체 등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사로 요약된다.

사극에서 공통적으로 빠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정권을 만든 공신(功臣)들에 의해 작성되는 살생부가 그것. 신 실세들이 권력을 확실히 장악하기 위해 구 정권의 측근이나 차기를 넘보는 잠재적 적군들을 일거에 제거해 버리는 모습은 항상 ‘클라이막스’로 묘사됐다.

이렇게 수백년전에나 또는 드라마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최근 정치권의 최대 이슈로 등장했다. 노무현 홈페이지(www.knowhow.or.kr)에 한 네티즌이 민주당 의원 전원을 특1등 공신에서 역적중의 역적까지 7단계로 구분해 띄워 놓은 것. 대선기간 노 후보 당선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와 어떤 식으로 방해했는지를 비교적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지난해 12월31일 ‘빛이 되어’라는 필명의 네티즌이 작성했으며 “이것 작성하느라고 죽을 뻔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이른바 ‘민주당 살생부’ 문건에는 소속 의원 94명의 선거기간 행적을 압축해 평가해 놓았다.

물론 민주당 관계자들은 “네티즌의 장난기 어린 글이며 정권교체시 늘 발생하는 해프닝일 뿐”이라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이상수 사무총장도 “개인이 작성한 것을 언론이 무책임하게 실명까지 박아 보도하면 어떡하느냐”며 “1등 공신 격인 장영달 의원을 3등 공신에 넣은 것을 보면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당 핵심 관계자들이 ‘일회성 해프닝’으로 치부하고는 있지만 내용의 정확도 면에서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데다 실제 있었던 일들을 케이스로 섞어가며 평가해 놓았다는 점에서 ‘역적’으로 몰린 의원들은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더구나 “노 당선자가 그동안의 공과를 따져 논공행상을 벌일 재료” “차기 총선의 공천 잣대”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확산되면서 살생부 파문은 지도부의 진화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1등 공신들은 입각 여부까지 촌평

살생부 내용을 보면 제법 그럴 듯하게 구성돼 있다. 먼저 특1등 공신 19명은 소장 개혁파와 선거기간 노 후보 캠프에서 활약한 인사들이다. 총리와 당 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김원기, 정대철 의원에서 이상수 사무총장, 정세균 정책위의장, 임채정 인수위원장, 노 후보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한 신계륜 의원 등 대부분 노 당선자 주변에서 핵심 보직을 차지한 의원들이다.

신기남 이해찬 조순형 천정배 추미애 의원 등 줄곧 친노계열에 몸담은 인사들도 영예(?)의 특 1등 공신에 합류했다.

또 살생부에는 공과(功過)를 따져 입각 예상자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김영진 의원은 농림부, 천용택 의원은 국방부, 이상수 사무총장은 행자부장관 후보로 추천돼 있다. 또 정세균 정동영 의원 등은 입각 예상자 또는 내각 경력을 쌓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적고 있다.

1등공신 11명은 대표적인 친노계열이면서도 비교적 ‘점잖게’ 선거운동을 도운 인사들로 짜여져 있다.

김희선 의원을 여성부 장관 후보로 올려놓았고,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는 한화갑 계열이지만 최선을 다해 도왔다고 평가했다. 이미경ㆍ이낙연 의원의 경우 “옳고 그른지를 잘 판단해 끝까지 변절하지 않았다” “진지한 자세로 노 당선자와 함께 했다”등 온통 칭찬 일색이다.


“휴” 가슴 쓸어내린 2, 3등 공신들

2등 공신(17명)과 3등 공신(16명)에 이르면 중도 성향에서 노 당선자를 도왔거나 반노ㆍ비노계열 쪽에 있다가 재빨리 말을 갈아탄 인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공신 칭호는 받았지만 전체 7가지 분류 중 기타 군을 제외하면 6단계에서 3,4위급에 해당되기 때문에 사실상 중간 점수를 받은 편이다.

김상현 김홍일 김효석 설훈 의원 등 2등 공신들은 대부분 동교동계 한화갑계 이인제계에 속해 있다가 단일화 이후 노 당선자 쪽으로 돌아섰거나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공격에 앞장섰던 사람들이다. 이중 강봉균 김효석 의원을 각각 재경부와 정보통신부 장관 후보로 격상시키고 있다.

3등공신부터는 서서히 감정적인 표현이 눈에 띈다. “선거 막판에 조금 도왔을 뿐” “유세기간 잘 안보였다” 정도로 평가가 박하다. 김성순 김영환 김화중 박병석 의원 등 반노와 친노를 오갔거나 중도ㆍ비노의 길을 선택한 인사들이 많다.

이밖에 김근태 김홍일 이원성 한화갑 의원 등 7명은 끝까지 정치색을 띠지 않거나 노 당선자와 일정 거리를 유지했던 인사로 구분됐다. 한화갑 의원은 오락가락하는 안개 같은 행보로 노 당선자의 애를 태웠고 선거 막판에는 좀 도와주었지만 명예롭게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적었다.

2,3등 공신과 기타부류에 속한 이들은 “왜 내가 1등공신이 아니냐”며 불만을 표출하는 인사도 있지만 그래도 역적 군에 속하지 않은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인사들도 상당수 있다.


“진상 밝혀야” “틀린 얘기 아니다”

살생부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대역무도한 죄를 지은 역적들이 누구냐에 있다. ‘역적중의 역적’으로 평가등급중 최하위를 차지한 이는 박상천 박양수 정균환 의원 등 3명. 물론 이들은 한결같이 “왜 내가 역적이냐. 나도 선거 기간에 최선을 다해 노 당선자를 도왔다”고 서운함을 토로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살생부상의 촌평은 노골적이다 못해 인신공격 수준이다. 박상천 의원에 대해서는 ‘반노의 거두, 반드시 퇴출. 민주당과는 상관없는 공안검사 출신’으로 적었고, 박양수 의원은 “이제 노무현은 아웃이야라는 발언을 했고 노무현 괴롭히기에 발벗고 나섰다. 그에게 금배지는 너무 무거워보인다”고 비난했다.

또 정균환 총무은 ‘역적의 수괴, 모든 음모의 출발점, 점령군 운운하며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고 혹평했다.

역적 군에 속한 21명은 후단협과 반노파의 대표적 인물들. 공천금지 대상에서 퇴출대상까지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있다. 세부적인 평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당창당 운운하며 설쳤음. 17대 총선 공천금지대상”(강운태) “치가 떨릴 정도로 노골적인 반노”(김경천) “발등에 떨어진 불끄느라 쩔쩔맸음. 퇴출 대상”(김방림) “반노의 깃발을 높게 들었음. 필히 퇴출”(김충조) “국회부의장 자격을 망각하고 반노모임에 적극적. 진실로 퇴출 대상”(김태식) “정말 꽤나 괴롭혔다”(설송웅) “노 당선자를 갖고 놀았다”(유용태) “권노갑계열. 말해 무엇하랴”(윤철상) “한화갑계열로 강경주문 앞장”(조성준) “영남권 지방선거 패배로 집요하게 후보직 반납을 요구했다”(조재환) “반노의 핵심. 지겹게 괴롭혔다”(이윤수) “이인제맨으로 민주당 분란에 앞장”(이용삼) “원수진 것 처럼 괴롭혔다”(최명헌) 등이다.

이에 대해 역적으로 분류된 의원들은 “작성자 색출을 통해 당의 분란을 꾀하는 무리들을 처단해야 한다”고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유용태 이윤수 의원 등은 “당 지도부는 그냥 놔두지 말고 마땅히 진상을 밝혀야 한다”며 “일부사례를 보면 배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반면 1등공신 등으로 묘사된 신주류측 의원들은 표면적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내심 반기는 듯한 인상이다. 한 의원은 “크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 않느냐”며 “역적으로 분류된 자들이 지난 선거기간때 어떤 행태를 보였는 지는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1등 공신에 속한 신기남 의원도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그같은 것이 나도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본다”며 은근히 역적으로 분류된 의원들을 겨냥했다.


작성자 배후는 탈레반?

살생부 파문이 커지자 노무현 당선자가 직접 진화에 나섰다. 노 당선자는 1월18일 정균환 총무에게 “인위적인 인적 청산은 있을 수도 없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면서 “당내 의원들을 많이 이해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이낙연 당선자 대변인도 “노 당선자의 뜻은 당이 단합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노 당선자는 공적인 자리에서 줄곧 인적 청산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부연 설명했다.

노 당선자의 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파문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당 윤리위가 살생부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이훈평 윤리위원장은 “많은 의원들이 이미 구두로 조사를 요청해와 현재 실무선에서 살생부 출처 파악 등 진상 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작성자가 밝혀지는대로 수사기관에 명예훼손 혐의로 사법처리토록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음 초점은 ‘과연 누가 작성했는가’에 맞춰져 있다. 유세상황과 대선이후의 실제 행적을 기술했다는 점에서 일반 네티즌의 작품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당연히 ‘1등공신으로 분류된 인사 주변이 아니겠느냐’ 하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이 경우 ‘탈레반’으로 비유되는 소장 개혁파들 주변으로 범위가 압축된다. 한 의원은 “신 실세들 주변에서 작성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이미경 의원을 왜 특1등 공신에서 제외시켰겠느냐”고 배후설을 일축했다. 천정배 의원도 “살생부는 당 외부에서 작성한 것 같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한편 노 당선자의 인터넷 홈페이지 관리자인 천호선 인수위 전문위원은 “왜 글을 지우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런 글은 성격상 지우면 오히려 더 확산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인터넷 홈페이지에 오른 살생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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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급          의원수     민주당 의원(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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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1등 공신        19명     김경재 김영진 김원기 신계륜 신기남 이상수 이재정 
                       
                             이해찬 이호웅 임종석 임채정 정대철 정동영 정세균

조순형 천용택 천정배 추미애 허운나 ------------------------------------------------------------------------------ 1등 공신 11명 김덕규 김희선 문석호 문희상 송영길 이강래 이낙연

이미경 이종걸 정동채 함승희 ------------------------------------------------------------------------------ 2등 공신 17명 강봉균 고진부 김상현 김성호 김운용 김태홍 김택기

김효석 박인상 설 훈 유재건 이만섭 이정일 전갑길

정장선 조배숙 최용규 ------------------------------------------------------------------------------ 3등 공신 16명 김기재 김성순 김영환 김화중 남궁석 박병석 배기선

심재권 이창복 장영달 장재식 장태완 정범구 정철기

조한천 홍재형 ------------------------------------------------------------------------------ 역적 21명 강운태 김경천 김방림 김충조 김태식 박병윤 박상희

박주선 설송웅 송석찬 송훈석 유용태 윤철상 이용삼

이윤수 이 협 이훈평 조성준 조재환 최명헌 최영희 ------------------------------------------------------------------------------ 역적중의 역적 3명 박상천 박양수 정균환 ------------------------------------------------------------------------------ 판단유보 및 기타 7명 김근태 김옥두 김홍일 배기운 이원성 최재승 한화갑 ------------------------------------------------------------------------------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입력시간 2003/01/2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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