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있는 집] 포항의 참맛 '광교 과메기'

유리창 너머로 눈발이 휘몰아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된다. 기세 등등한 동장군 앞에서는 바깥 나들이가 망설여질 수 밖에 없다. 바람소리가 귀를 때릴 정도로 차가운 겨울바람은 마음 속까지 휑하게 만든다. 추위가 기세를 부릴수록 몸과 마음도 모두 꽁꽁 얼어붙기 마련이다. 우리의 생활 모드도 게으름 모드로 자동 전환된다.

그런데 추위를 피하고 싶은 마음 한구석에서는 딴 생각이 스물스물 피어오르니 참 묘하다. 차가운 바람을 헤치고 나가 맛난 안주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고 싶은 마음. 어떤 안주를 먹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는 꾸덕꾸덕 알맞게 마른 과메기가 안성맞춤이다. 과메기와 소주는 야구에 비유하면 미국 메이저리그의 박찬호와 채드 크루터 배터리 처럼 완벽한 커플이다.

과메기는 청어나 꽁치를 짚으로 엮어 차가운 겨울바람에 보름 정도 발효 건조시킨 것으로 원래는 포항의 향토 음식 중 하나이다. 예전에는 청어로 과메기를 만들어 먹었지만 요즘은 꽁치로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기를 수 차례 거듭하면서 꾸덕꾸덕하게 마른 과메기는 붉은 속살에서 기름기가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것이 보기만 해도 절로 입맛을 당긴다. 예전에는 포항 일대에서만 먹던 것이 몇 년 전 사람들의 입 소문을 타고 전해지면서 요즘은 서울에서도 어렵지 않게 과메기 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제대로 된 과메기 맛의 진수를 느껴보기 위해서는 광교 조흥은행 뒷골목에 위치한‘광교 과메기’를 찾아가야 한다. 11년째 과메기를 간판 메뉴로 선보이고 있는 이 집은 포항 과메기의 참맛을 맛볼 수 있게 한다. 특히 과메기에 소주 한잔 곁들이기에는 광교 과메기 만큼 어울리는 곳도 드물다. 과메기는 원래 껍질만 벗겨낸 후 통째로 초고추장을 찍어 먹던 서민적인 음식인 탓에 좁은 골목통에서 오랜 세월을 견뎌낸 허름한 이 집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그 맛이 배가된다.

광교 과메기의 정식 상호는 없다. 입구에 ‘과메기’라는 작은 간판이 걸려 있을 뿐이다. 광교 과메기라는 이름은 이 집을 찾는 단골들이 광교에 있다고 해서 부르는 별칭.

이 집 과메기의 맛은 특별하다. 냉동한 과메기를 해동해 내놓으면 살빛이 검고 수분이 많아 비릿한 맛이 느껴지는데 이 곳은 과메기를 항상 건조대에 보관하기 때문에 살빛도 붉고 꾸덕꾸덕하게 알맞게 건조되어 있어 전혀 비릿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초장을 듬뿍 찍은 과메기를 야채와 함께 김에 싸서 먹으면 과메기의 담백함에 새콤하고 고소한 맛이 더해져 더욱 맛이 좋다.

김배곤 사장은 “과메기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면 술이 잘 취하지 않아 술을 잘 못하는 아가씨들도 소주 한 병쯤은 거뜬히 해치운다”며 과메기 예찬론을 펼친다. 이 집 과메기는 껍질을 벗기고 몸통을 반으로 가르는 게 손질의 전부다. 반으로 갈랐다 해도 길이는 한 마리 상태 그대로이기 때문에 한입에 먹기에는 다소 힘들게 느껴진다.

왜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내놓지 않느냐는 물음에 김 사장은 “몸통과 꼬리부분을 같이 먹어야 과메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을 해준다. 정말 그의 말처럼 한 마리를 통째로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수분을 적당하게 머금은 부드러운 몸통과 쫀득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인 꼬리가 입 속에서 한데 어우러지는 것이 겨울철 별미로 꼽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 메뉴

과메기 5,000원, 고래고기 20,000원, 오징어 5,000원, 생선회 10,000원. 소주 2,000원.

■찾아가는 길

광교 조흥은행 본점을 오른쪽으로 끼고 청계고가쪽으로 가다가 나오는 첫 번째 골목 내에 위치. ‘과메기’라는 조그만 간판을 내걸고 있다. 02-720-6075

■영업시간

오후 4시~자정. 명절과 일요일은 휴무.

손형준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3/01/3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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