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노무현과 도널드의 ‘링컨’

데이비드 허버트 도널드 하버드대 역사학부 명예교수는 올해 83세로 메사추세츠 링컨시, 링컨가에서 살고 있다.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에 대한 전기작가이자 역사가다.

도널드가 1995년에 낸 ‘링컨’은 그 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1961년에는 남북전쟁 때 메사추세츠 상원의원으로 외교분과 위원장으로 활약했던 강경 노예해방론자 찰스 섬너에 대한 전기 ‘찰스 섬너와 남북전쟁’으로 역사 부분 퓰리처 상을 탔다.

이어 1988년에 ‘천사들이여 돌아보라’를 1920년대에 쓴 소설가 토마스 올프에 대한 평전, ‘집을 돌아보라-토마스 올프의 일생’으로 또 퓰리쳐 상을 받았다.

‘링컨’은 게티스버그 대학이 주는 링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0년 11월에는 1990년 부시 전 대통령 때 백악관에서 미국역사를 강의 한 것을 정리해 ‘가정에서의 링컨- 링컨의 두가지 면모’를 책으로 냈다.

왜 갑작스럽게 도널드 교수의 ‘링컨’을 이야기 하는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그마한 분노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5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서울 용산 한미 연합사령부를 이례적으로 방문했다. “우리는 좋은 친구 입니다”라는 서명과 함께 노무현 지음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란 책을 선물했다. “미국 역사에 대해 부럽고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고도 말했다.

노 당선자는 이 책의 서문 ‘왜, 다시, 링컨을 만나야 하는가’에 40여 년 전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읽은 위인전 ‘링컨’, 서강대 명예교수 이보형의 ‘미국사 개설’(1993), 그리고 2000년 4ㆍ13 총선 낙선 후 읽은 링컨의 1864년 3월 4일의 재취임 연설문 등에서 “겸손한 권력으로 강한 나라를 만든 정치인” 링컨을 느꼈다고 썼다.

그래서 지금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있는 배기찬(서울대 동양사학과 출신) 전문위원에게 기획을 맡겨 김대영, 임상현씨에게 링컨의 일생을 정리케 하고 2001년 11월 책으로 냈다. “내가 이 책에 기여 한 것은 링컨과의 만남과 그 감동적 순간을 공유 한 것 뿐이다”고 겸손(?)해 하면서 ‘노무현 지음’이라 필자 이름을 박았다.

302쪽쯤 되는 ‘노무현이 만난 링컨’ 에는 데이비드 허버트 도널드 교수가 ‘링컨’의 저자로 참고문헌에 딱 한 줄 나와 있다. 도널드 교수 책을 본 사람이나 노 당선자의 책을 읽은 사람은 놀란다. 누가 초역했는지 모르지만 도널드 교수의 ‘링컨’이 글자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이 책에 절반 이상 들어 있는 것이다.

도널드 교수는 1995년 12월 24일 미국 C-SPAN 케이블 TV에 나와 ‘링컨’을 쓰게 된 이유와 집필 과정을 밝혔다. 1942년 미시시피 대학에서 미국사를 마치고 미시시피주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링컨 역사의 권위자 제임스 란달 교수가 있는 일리노이 대학원으로 왔다.

그는 란달교수가 48년에 낸 ‘대통령으로서의 링컨(4권)’의 조교로 그를 도왔다. 란달 교수는 “링컨과 동업한 윌리엄 헌던을 연구하면 링컨을 가장 잘 알 수 있다.”고 조언했다. 도널드는 헌던을 통해 링컨을 살폈다. 아니 링컨이 본 헌던을 통해 다시 링컨을 고찰 한 것이다. 48년에 박사학위와 함께 ‘링컨의 헌던’이 책으로 나왔고 꽤나 팔렸다.

이때부터 그는 링컨을 축으로 그와 접했던 헌던, 섬너 상원의원, 샐몬 체이스 등을 살폈다. 링컨의 장남 로버트가 의회 도서관에 맡긴 기록은 1947년에야 학자들에게 공개 되었다. 마이크로 필름으로 95개, 한 필름이 1,500쪽이나 되는 방대한 것이었다. 1988년에는 링컨이 변호사, 주 의원으로 활약하던 일리노이 스프링필드에 그가 취급한 재판 기록이 모두 채집 보관 되었다. 어떤 링컨의 답변서는 43쪽을 깨알같이 손수 쓴 것도 있었다.

이때부터 7년간 그는 스스로 링컨이 되어 온갖 서류더미, 그가 쓴 편지, 백악관에서 쓴 전쟁 결정의 의견서 등을 보면서 노예해방서, 게티스버그 연설문, 취임연설, 연두교서 등의 작성 배경을 살폈다. 그는 문장을 쓰고 난후 그것을 소리 내 읽었다. 링컨이 옆에서 들으라는 듯이. 이런 작업 끝에 95년에 714쪽의 ‘링컨’이 나왔다.

노 당선자는 ‘노무현이 만나 링컨’의 제목을 “내가 읽고, 내가 느낀 데이비드 도널드의 ‘링컨’”, 추천자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당선자 노무현으로 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지음’은 너무 했다. 그건 겸손한 대통령 당선자의 태도가 아니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3/01/3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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