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의 한의학 산책] 아침밥이 보약이다.

오늘 아침은 바쁜 일이 있어서 아침을 굶고 나왔다. 굶는다고 표현하니까 처량하게 느껴지지만 실은 수많은 아버지들이 아침을 안 먹고 출근한다. 어떤 친구는 아내가 힘들어 할까 봐 아침을 안 먹고 나온다고 하고, 어떤 환자는 도저히 아침에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하소연하기도 한다. 반면에 한 끼만 굶어도 못살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밥이 뜸이 들 때 나는 고소한 냄새를 맡으면 하루 일과가 훨씬 수월해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침밥에 콩이 송송 박혀 있으면, 그야말로 임금님 식탁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여기에 따뜻한 국 한 그릇만 있으면 든든한 배를 안고 출근할 수 있다. 늘 먹던 아침을 거르면 정말 속이 허해서 아무리 점심을 잘 챙겨 먹어도 그 허전함이 풀리지 않는다. 아침식탁을 차려주는 아내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아침과 점심을 잘 먹을 것을 강조해 왔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도 양생의 요건으로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사항이다. 요즘처럼 아침 거르고 점심 대충 먹고 저녁을 풍성하게 먹는 것은 사실 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 밤에는 위장도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시(時) 등 하루를 12시간으로 나눠 각각의 장부가 움직이면서 기능을 한다. 낮에는 위장이 주로 활동하지만 밤이 되면 낮에 모았던 물질들을 갈무리하고 저장하여 내일을 준비하게 된다.

이 흐름이 깨지면 아무리 잘 먹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인체 생리는 농사짓는 일과 비슷하기 때문에, 씨 뿌릴 때 씨 뿌리고, 김 맬 때 김매고, 거둘 때 거두고 해야지, 시간 없다고 가을에 씨 뿌리고 겨울에 김매고 여름에 거둘 수 없는 것과 같다. 모든 일에서 그렇듯이 여기에서도 때를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에는 토스트다, 생식이다 하여 밥 대용으로 많은 먹을거리들이 나와 있지만, 사실 밥과 담백한 반찬이 주는 에너지를 따라갈 음식은 없다. 음식물을 먹으면 우리 몸에서 각 차원 별 에너지들이 생성된다.

원유로부터 석유, 휘발유 같은 것을 뽑아내듯이 층층이 정(精), 기(氣), 신(神), 혈(血), 진액(津液) 등을 만들어낸다. 그 중 우리 뼈를 튼튼하게 하고 각 오장육부에 깊이 저장되어 힘의 원동력이 되는 정(精)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쌀 미(米)자와 푸를 청(靑)자의 합성으로 밥과 나물을 먹어야 가장 잘 만들어진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고 밥하고 풀만 먹을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밥과 나물반찬을 위주로 해서 식단을 구성하되 여러 재료가 골고루 포함된 음식을 먹어야 진정 건강할 수 있다. 그런 예들을 우리 식단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쇠고기를 먹더라도 그냥 고기만 구워 먹을 게 아니라, 된장과 상추 또는 깻잎과 같이 먹으면 훨씬 건강한 식사가 되는 것이다. 갈비찜에도 밤, 은행, 파, 마늘, 무, 배 등 여러 가지를 함께 넣어서 최대 효과를 추구한다.

돼지불고기의 경우에도 찬 돼지고기에 따뜻한 성미를 가진 고추장으로 양념을 하고 깻잎쌈에 싸서 마늘을 넣어 먹으면 이 역시 중화된 음식이 된다. 연어 같은 등 푸른 생선에는 양질의 단백질은 물론 우리 몸에 좋은 성분인 EPA, DHA와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있는데, 여기에 더덕을 함께 넣어서 조리하면 맛도 좋아지고 향기도 좋다.

더덕에는 사포닌이라는 성분이 들어있어서 입맛을 돋우며 게다가 칼슘, 단백질, 인, 섬유질 등의 성분도 들어있다.

밥이 보약이라는 옛말은 딱 맞는 말이다. 간혹 환자들 중 좋은 약을 복용하면서 밥은 잘 안 드시는 분들도 있는데, 이건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 정성이 들어간 밥 세 끼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 지 모르겠지만, 아침만은 꼭 밥으로 먹고 다니자.

이건 우리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이 우주를 짊어지고 살아야 할 우리 자식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부모님을 보고 배우는 아들 딸들을 위해서라도, 좀 귀찮기도 하고, 어쩌면 많이 힘들 수도 있지만 꼭 아침을 먹도록 하자.

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 병원장

입력시간 2003/01/3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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