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문화읽기] '무뇌충' 문희준

인기 댄스그룹 H.O.T의 멤버였던 문희준과 관련된 소문을 처음 들었던 것은 지난 연말의 일이었다. 송년 모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라디오 방송작가인 P가 음반 사이트인 ‘음악창고’에서 보았다며 말을 꺼냈다.

“2002년 국내 음악계의 10대 사건을 뽑았는데요. 1위는 당연히 소리바다가 저작권 문제로 소송에 걸린 것이죠. 그런데 문희준이 자신을 로커라고 라디오 방송에서 발언을 하는 바람에 시끌벅적했던 일도, 올해의 10대 사건에 들어가 있더라구요. 재미있죠?” 평소에 별다른 관심이 없기 때문에, 문희준이 솔로로 데뷔를 했는지도 몰랐고 라디오 디제이를 하는지도 몰랐다. 그냥 술자리의 안주로 적당한 재미있는 이야기였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1월 초순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무뇌충’’이라는 재미있는 용어를 발견했다. ‘핀치의 부리’‘초파리’‘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등과 같은 생물학 관련 서적을 탐독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혹시 진화와 관련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해당 문서를 클릭했다. 예상과는 달리 어느 스포츠신문의 기사였다.

무뇌충(無腦蟲)은 문희준의 이름을 문희중, 무늬중, 무늬충 등으로 변형해서 부르다가 만들어진 새로운 단어였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하는 사람’ 또는 ‘실력도 없으면서 잘난 척하는 사람’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당히 시끌벅적한 사건이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특정 개인에 대한 별칭으로는 너무 심한 것 같다는 느낌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인터넷을 뒤적거려 보았더니 무뇌충의 어록과 각종 패러디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네티즌들의 분노를 가져온 말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저를 연예인이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저는 아티스트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록을 하면서) 하루에 오이 세 개 먹었어요. 록이 원래 배고픈 음악이잖아요.” “레드 제플린이 누구예요?” “헤비메틀은 록과 힙합을 섞어놓은 것입니다.” 스스로 로커를 자처하면서 레드 제플린이나 헤비메틀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마저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은 네티즌들을 열받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기획사, 방송국, 팬클럽 등을 통해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오이 세 개 운운하며 록은 배고픈 음악이라고 말했던 일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어려운 생활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 방송국의 연말 시상식에서 문희준이 록 부문의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네티즌들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방송국에서 주는 상에 목을 매고 노심초사하는 로커들은 거의 없다. 또한 방송국 연말 시상식이 별다른 권위도 없이 펼쳐지는 그들만의 잔치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네티즌들의 분노는 무엇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 시상식 풍경에서 그들이 보았던 것은 무엇일까. 거대자본과 방송권력을 통한 록의 식민지화, 또는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초상이 아니었을까. 무뇌충 현상이 최근 몇 년간의 팬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안티 팬클럽 문화와 구별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어떤 연예인이 재수 없다는 차원이 아니라, 음악적인 진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이자 사회적인 정당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 제기이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문희준이 로커냐 아니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다. 또한 누가 그를 옹호하고 비난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어떤 가수의 음악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뇌충 현상은 한 개인에 대한 반감과 비난이라는 수준을 넘어서, 한국대중문화의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사건이라는 생각이다. 일반 대중들이 허용과 금지와 관련해서 섬세한 구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말한다. ‘보는 음악’인 댄스음악의 경우에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위해서 립싱크 정도는 허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듣는 음악’인 록의 경우에는 음악과 관련된 숙련성과 진정성을 문제 삼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일반 대중은 결코 허술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선별적으로 수용의 맥락을 구성한다. 아마도 문희준이 무뇌충으로 불리는 것은, 대중들이 설정해 놓고 있는 선별적인 수용의 맥락을 얕잡아 보았거나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김동식 문화평론가

입력시간 2003/01/3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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