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 풀 우리나무] 노루귀

해가 바뀌면 금새 봄이 기다려진다. 겨울의 한 가운데 있는데도 말이다. 일단 마음 속에 봄바람이 불면 참 마음이 성급해진다. 지난 겨우내 참아 왔던 수 많은 이 땅의 야생 꽃들에 대한 그리움들이 한번에 밀려오기 때문이다. 설레는 새봄, 첫 산행을 떠나면 만나게 될 작고 앙증스런, 그러나 너무도 사랑스런 꽃, 내 반가움 마음을 일깨워줄 노루귀.

노루귀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에는 제주도부터 함경도까지 자라는 풀이다. 다 자라봐야 높이가 10cm를 넘지 못하는, 이른 봄 작게 피는 꽃이다. 그러나 이른 봄에 만나는 노루귀는 꽃을 먼저 내어 보내므로 노루의 귀를 닮은 잎을 보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얼었던 땅이 녹기 무섭게 연하디 연한 꽃자루를 반 뼘쯤 되는 길이로 내어 보내는데 그 꽃자루에는 보드랍고 하얀 솜털이 다복하게 나 있다. 한자리에서 나오는 여러 개의 꽃자루 끝엔 2cm가 조금 못 되는 귀여운 꽃이 흰색 또는 분홍색, 아주 드물게는 보라색으로 피곤 한다.

그러나 노루귀는 꽃잎이 없다. 우리가 꽃잎 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꽃받침이며, 그 가운데로 미색의 수술과 좀더 진한 노란빛의 암술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꽃이 한껏 자태를 뽐내었다 싶을 즈음 잎이 나오고 노루귀 같던 잎새가 활짝 펼쳐지는데 크게 세 갈래로 갈라진 잎의 모양은 물론이거니 약간 두터운 질감이며 간혹 잎 표면에 나타나는 흰색의 얼룩이 매우 특색 있다.

깔때기 모양으로 말려서 나오는 잎의 모양이 마치 노루의 귀를 닮았다 하여 노루귀라는 정다운 이름이 붙었다. 봄소식을 알리듯 눈을 헤치고 작은 꽃을 내민다 하여 파설초(破雪草), 설할초(雪割草)라고도 한다. 학명 중 속명 헤파티카(Hepatica)는 간장(肝腸)이란 뜻을 가진 헤파티커스(hepaticus)에서 유래되었는데 세 개로 나뉘어진 잎의 모양이 간장을 닮아 생겨난 명칭이다. 영어 이름 역시 유사한 뜻의 아시안 리버맆(Asian liverleaf)이다.

노루귀는 예로부터 약용으로 이용되어 왔다. 한약명으로는 장이세신(樟耳細辛)이라 부르는데 뿌리를 포함한 모든 부분을 여름에 채취하여 볕에 말려 두었다가 약으로 쓴다. 진통, 진해, 소종에 효능이 있다.

잎을 따다가 나물로 무쳐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나리아재비과의 식물이 그러하듯 독성이 있으므로 뿌리는 제거하는 것이 좋으며 또한 약간 쓴맛이 있으므로 살짝 데친 다음 물에 쓴맛이나 독성을 우려내고 먹어야 한다.

관상용으로도 좋은데 작고 앙증맞은 꽃 모양새는 화단 앞쪽에 모아 심어도 좋다. 흔히 키우는 아프리칸 바이올렛과 같은 크기와 느낌이면서도 훨씬 정감있고 아름답다.

게다가 노루귀의 꽃 색깔은 아무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앞에 간략히 말했지만 자연 상태에서 나는 노루귀의 꽃은 연분홍색, 진분홍색, 남색, 줄무늬가 있는 꽃잎, 가장자리에 흰색의 테가 둘러 있는 것 등 참으로 다양하고 아름답다. 게으른 사람은 볼 수 없는 봄날 숲 속의 요정같은 노루귀. 서로 다른 노루귀 꽃색만 찾아 다녀도 봄 숲은 충분히 즐겁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2003/01/30 11:17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