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프레소] 첫 음반 'Flying' 낸 임미정

사람들이 재즈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을 깨보려는 듯 그녀의 첫 음반은 접하기 어려웠던 기상(奇想)들로 가득하다. 맨해튼 스쿨 오브 뮤직의 재즈 퍼포먼스 석사 과정 1학기 재학 중인 임미정(32ㆍ피아노)이 미국에서 현지의 1급 재즈맨들과 녹음한 첫 음반 ‘Flying’을 들고 돌아 왔다. 2002년 10월 뉴저지의 재즈 전문 녹음 스튜디오로 유명한 크눕(Knoop)에서 취입됐다.

10곡이 수록된 그녀의 첫 음반은 상투적이지 않다. 누구나 아는 스탠더드 작품도 물론 있지만 그녀는 리듬과 즉흥 등에서 기존의 해석을 거부한다. 무엇보다 5곡을 헤아리는 자작곡에서, 기존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붙잡을 수 없는 박자 형식들은 듣는 이를 긴장하게 만든다. 즐거운 퍼즐을 푸는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몽(夢)’은 8분의 10박자이고, ‘뱃놀이’는 8분의 12박자다. 또 앨범 타이틀 곡이기도 한 ‘Flying’은 4분의 6박자다. 일상을 벗어난 것은 박자뿐이 아니다.

한국인에게 낯익은 테마가 간간이 들리는 ‘뱃놀이’는 국악적인 세 박자 장단을 기조로 해, 블루스와 라틴적 선율로 변주를 펼쳐 나간다. 인도의 난해한 리듬에 심취했던 존 콜트레인의 재즈를 한국화한 느낌이다. 나아가 콜트레인이 타블라와 지타 등 인도의 전통 악기에 심취했던 것처럼 임미정은 시조창을 연상케 하는 구음(口音)과 거문고 등 국악적 재료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여기에다 인디언의 작은 북과 소프라노 색소폰까지 얹히니 현대화된 한편의 민속 음악을 듣는 느낌이다.

이보다 더 파격적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임미정은 이번 음반에서는 참았다. “데뷔 음반은 스탠더드의 느낌을 주고 싶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빠진 곡이 미국서 실연 당시 열띤 반응을 불러 일으켰던 프리 뮤직 작품이다. 5척 단신으로 거한들을 사이드 맨으로 두고 따라잡기조차 힘든 가지각색의 엇박자(odd meter)들을 오가며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모습은 미국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기에 족했다.

앨범 역시 만만찮다. 톰 하렐(트럼펫), 요리스틴(베이스), 랠프 피터슨(드럼) 등 5~6순이 되는 현지의 노련한 재즈맨들과 이틀만에 녹음했다. 이번은 그러나 평소의 진취적이고 공격적인 연주를 많이 접어두고 되도록 간결하게 쓰려 무척 애를 썼다. “팔리는 음반이어야 한다며 주장하는 음반사의 입장을 고려한 거죠.”

간단한 음악은 아니지만, 음과 박자의 현란한 향연은 듣는 이를 즐겁게 한다. 실제로 발매 전인 2002년 2월 보스턴 버클리 음대의 퍼포먼스 센터에서 일부 수록 곡을 위주로 해 가졌던 콘서트는 찬사를 받았다. 현지의 실력파 뮤지션은 물론, 서울대 국악과 출신의 거문고 주자 이해원도 함께 했던 독특한 재즈 무대였다.

국민대 수학과 출신의 그녀는 1994년 졸업과 거의 동시에 재즈를 접하게 됐고 그 길로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 들어가 재즈에 몰두했다. ‘박봉곤 가출 사건’, ‘올가미’, ‘플란다스의 개’ 등의 영화에서 들렸던 특색 있는 음악이 모두 그녀의 것이다.

한국에서 활동하기로 한 앞으로의 1년은 지금껏 가졌던 어떤 시간보다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녀는 “그 동안 미국서 접한 지식과 정보의 홍수를 이제 찬찬히 돌이키며 나의 색깔을 찾고 싶다”며 국내 클럽 연주에 충실할 것을 약속했다. 당장은 이번 첫 앨범의 표지 때문에라도 서울에 있어야 한다. 앨범의 표지 사진을 그녀가 즐겨 출연했던 ‘블루문’ 등지의 재즈 클럽에서 촬영하자고 고집한 때문이다.

데뷔 음반의 발매를 앞둔 그녀는 지금 거장 케니 배런이 자켓에 추천사를 써 준 데 대해 무엇보다 감사한다. ‘100개의 황금 손가락’ 단골 출연자로서도 국내에 잘 알려진 그녀는 그 글에서 임미정을 가리켜 ‘스윙과 재즈의 본질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는 뮤지션’이라며 ‘이번 앨범을 통해 훌륭한 재즈 연주자이자 작곡가라는 점을 충분히 입증했다’고 밝혔다.

데뷔 앨범은 2월에 EMI에서 발매, 세계에 깔릴 예정이다. 앨범 발매 기념 순회 연주회(프로모션 투어)는 6월께 나설 예정이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2003/01/3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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