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쓸 사람이 없다

차 떼고 포 떼고… 세대·이념·지역교체 이룰 새 얼굴 찾기 고심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 한달 여를 앞두고 국무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 정무수석과 민정수석 비서관 내정자를 발표하는 등 핵심 요직 인선을 서두르고 있다.

또 장관급 각료와 청와대 참모진 등 ‘정승과 판서’에 대한 낙점도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늦어도 2월 중순까지는 인선을 마친 뒤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한 업무 인수인계과정을 취임 전까지 마무리하겠다는 게 노 당선자의 뜻이어서 벌써부터 주요 자리마다 후보 군이 자천타천으로 거명되고 있다.

노 당선자가 새로 임명해야 하는 정ㆍ관계 간부 및 정부 산하기관장 자리만 해도 줄잡아 수백명선. 어떤 인물들이 어느 자리에 오를 지 예측하기 힘들어도 이미 발표된 4명의 면면을 보면 노 당선자 인재 풀(POOL)의 일단은 엿볼 수 있다.

고 건 전 총리는 역대 정권에서 주요 관직을 맡아온 구 정치인이고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는 민주당 현역 의원, 유인태 정무수석 내정자는 통추 출신 전 의원, 문재인 변호사는 부산 출신으로 노 당선자의 민주화 동지이다.

또 북한 핵 문제와 관련, 대미특사로 민주당 정대철 의원이 순방길에 올랐고, 중국과 러시아에는 각각 이해찬ㆍ조순형 의원을 단장으로 내보낼 방침이다. 북한에는 대통령자문정책위원을 역임한 이종석 인수위원이 간다. 대체로 12ㆍ19 대선 때 노 당선자를 위해 헌신한 민주당 소속 의원과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통추, 고향인 PK(부산ㆍ경남)지역 출신 인사들이다. 이들 3개 권역 출신자를 제외하면 고 전 총리처럼 이전 정권의 인사 중에서 골라야 하는 상황이다.

YS 정권 이전의 ‘영남 정부’에서는 인재 풀이 넉넉한 편이라 오히려 지역에 따라 소외받는 현상이 문제로 대두됐다. 현 DJ 정부에서는 호남 중심의 인사가 횡행해 한 사람이 장ㆍ차관급 자리를 돌아가면서 하는 편협성이 노출되기도 했다. 이전 정권들의 인사가 지역간 인물교체였다고 하면 이번 정권의 인사는 세대교체 이념교체 지역교체를 담아내야 한다.

이를 놓고 노 당선자 측근에서부터 “할 일은 많은 데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결국 노 당선자의 한정된 인재 풀로는 ‘이너 서클’에는 측근 중심으로, 중간중간에는 개혁성과는 무관한 ‘그때 그 사람’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개혁적 인사원칙을 천명했지만 결과는 잡탕밥 인사로 귀결될까 걱정이다.


총리·장관은 인기 순?

새 정권 실세로 떠오른 민주당 신기남 의원은 협소한 노 정권 인재 풀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이 경륜은 아닙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경륜면에서는 일천한 정치인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단물만 빨아먹던 사람들과 달리 새 시대에 걸맞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신 의원을 비롯한 신 실세들은 고 전 총리 내정을 놓고 “옛사람을 쓰는 게 개혁이냐”라고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결국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는 노 정권의 인재 풀이 ▲이전 정권의 보수세력 배제 ▲친 한나라당 인사 배제 ▲당내 반노ㆍ비노파 친위세력 배제 등을 근거로 하고 있어서다.

‘아귀 빼고 따귀 빼고’ 뽑으려다 보니 후보 군의 절대 수조차 얼마 남지 않게 된 것. 그렇다고 무작정 검증도 안된 인사를 기용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여론조사 및 인터넷 추천 방식이다.

노 당선자 대변인인 이낙연 의원은 총리 내정을 발표하면서 여러 후보를 놓고 여론조사를 해본 결과 고 전 총리의 지지도가 가장 높았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국민 지지도가 높은 인물이 재상의 위치에 오른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뒤집어 놓고 보면 국민 지지도가 낮으면 아무리 우수한 인재라도 쓸 수 없다는 말도 된다.

또 대통령직인수위에 설치된 국민참여센터에는 1월10일부터 18개 부처 장관 인사추천을 받았다. 600여명의 장관 후보가 추천됐다. 인사추천위가 구성되면 인터넷에 오른 추천 후보 군들을 분류해 장관 후보를 20배수로 골라 1차 검증작업에 착수해 도덕성 능력 전문성 등을 검증해 5명으로 줄인 뒤 최종적으로 3명이 노 당선자에게 보고된다. 자칫 장관 인선이 인기투표 결과에 흔들릴 지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경제부총리 등 빅4 인선 고심중

노 당선자의 한 측근은 최근 “당선자가 설 연휴 기간 일체의 일정을 잡지 말 것을 지시했다”면서 “이 기간 당선자는 조각 구상에 전념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는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공직자는 법 규정을 최대한 존중하지만 내각은 새 시대에 걸맞게 전면 개편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신계륜 당선자 인사특보가 일부 각료의 유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적임자를 못 찾았을 경우이고, 가급적 새 인물을 내각에 포진시켜 공직사회에 새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게 노 당선자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경제부총리 인선부터 진통을 겪고 있다. 당초 김종인 경제수석을 염두에 두었다가 고 전 총리와 같은 전북 출신이란 점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대안으로 이헌재 사공일 전 장관과 박영철 고려대 교수의 이름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경제부처 수장도 고 전 총리와 같은 안정형 인사로 갈 경우 ‘개혁 실종’에 대한 비난여론이 걱정이다. 그래서 노 당선자의 낙점으로 부산시장에 출마했던 한이헌 전 경제수석 발탁과 전윤철 부총리의 유임가능성도 제기된다.

교육부총리에는 조규항 방송대 총장과 김신복 현 교육차관이 유력 후보군으로 거명되지만 인터넷 추천후보 중 교육부가 89명으로 가장 많아 이중에서 깜짝 인사가 등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이해찬 의원을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했다가 ‘이해찬 1,2세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교육개혁이 실패했던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유 경험자 중에서 선발될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은 현 신 건 원장의 유임과 새 인물 등용이 팽팽히 맞서 있다. 북핵문제 등의 현안 처리에 대한 업무 연속성을 감안하면 유임이 우세하지만 이강래 유재건 의원 등으로의 교체이야기도 설득력을 얻고 있어 쉽게 점치기 어렵다.

임기가 1년 7개월 가량 남은 김각영 검찰총장은 유임 우세속 교체론도 일각에서 불고 있다. 일단 선 사표제출후 정권이 출범되면 재 신임하는 형식으로 임기를 채울 것으로 보인다. 교체가 유력시되는 경찰청장은 이대길 최기문 성낙식 치안정감 중에서 낙점될 전망이다.


장관 인선, 노 당선자 신임도가 열쇠

새 정권은 지역간 교체도, 현 정부의 승계도 아니다. 또 노 당선자가 선거기간 뚜렷이 빚진 사람도 없고 은혜를 갚아야 할 정치세력도 별로 없다. 장관 인선이야 말로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골라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먼저 현안으로 떠오른 북핵 문제 해결 및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정세현 통일부 장관과 노 당선자의 여성 기용 확대 방침에 따라 김명자 환경, 한명숙 여성부 장관 등 일부 장관의 유임설이 나돌고 있다. 적어도 이중 1,2명은 유임될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이밖에 각 부처별로는 민주당과 통추인사, 노 당선자의 오랜 핵심측근 그룹에서 나눠먹기 식의 등용이 되지않겠냐는 전망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국방장관에는 현 이 준 장관 유임설 외에 이남신 현 합참의장과 김재창 조영길 전 대장 등의 이름이 나오고 있으며 노 당선자가 거쳐간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유삼남 의원 등이 경남출신의 지연으로 하마평에 오른다.

외교통상부 장관에는 유재건 조순승 전 현직 의원과 반기문 전 차관, 선준영 전 유엔대사도 물망에 오르고 있으며, 통일부장관도 교체 시에는 장선섭 경수로 기획단장과 연세대 문정인 교수 및 김형기 차관 승진설이 흘러 나온다.

경제부처에는 굵직굵직한 공약을 무리없이 수행할 수 있는 노 당선자의 신임도가 우선시 될 전망. 먼저 기획예산처는 박봉흠 현 차관과 최종찬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등이 거론된다. 산자부는 노 당선자 캠프에서 특보로 참여한 최흥건 산업기술대 총장과 이희범 전 차관, 오영교 KOTRA사장 등이 오르내린다.

건교부는 임인택 장관 유임설과 추병직 차관 승진설외에 조우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이부식 교통개발연구원장 등이 거명된다. 과기부에는 유희열 전 차관과 박원훈 산업기술원장이, 해양부에는 박봉흠 기획예산처 차관과 김두관 전 남해군수가 거론되고 있다.


사회ㆍ문화분야, 정치권 입각싸움 치열할 듯

비교적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회ㆍ문화분야는 정치권에서 가장 탐을 내는 곳. 노 당선자의 의원 입각 배제원칙이 어느 정도 유효할 지가 주목된다. 행자부는 통추출신의 원혜영 부천시장 이야기가 벌써부터 나왔지만 직선제 자치단체장이란 점이 부담이고 국회 행자위 출신 추미애 의원 가능성도 점쳐진다.

법무부는 노 당선자의 측근인 최병모 민변회장 외에 천정배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내부 승진용으로는 박순용 전 검찰총장과 김경한 전 서울고검장 기용 가능성도 있다.

문화관광부는 김한길 기획특보와 김경재 의원이 거론되지만 김명곤 국립극장장 등 외부인사 발탁설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성재 전 의원 외에 김성순 의원 및 통추출신의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까지 폭넓게 관측되고 있다.

여성 몫이 될 것이란 관측 속에 환경부는 이미경 의원과 박윤경 여성환경연대 회장 및 김상희 한국여성 민우회 대표 등이 거론되면서 최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도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여성부는 현 한명숙 장관 유임설 속에 김희선 의원 등 민주당 여성 의원중 한명이 입각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청와대 참모진은 김진표 인수위 부위원장과 김병준 이병완 인수위 간사 등이 수석비서관 등으로 들어갈 전망이고 정순균 대변인과 김현미 부대변인도 청와대행이 검토되고 있다. 또 이강철 특보 등 노 당선자의 오랜 가신(家臣)급 인사가 대거 비서관직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요약해 보면 노무현 집권 1기를 이끌어갈 참모진은 정치부문은 민주당 신 주류와 통추 출신들이 맡고, 행정은 고 건 전 총리(인사청문회에 통과할 경우)를 수장으로 전직 관료가 뒷받침하는 가운데 청와대는 노 당선자와 이념과 사상을 같이하는 오랜 지기들이 보좌하는 형국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각기 분담된 과제를 물과 기름 같은 집단들이 모여 서로 조화롭게 수행할 수 있을 지 결과는 내년 총선 때 국민 심판으로 판가름나게 돼 있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3/01/30 11:37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