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예스런 고을로 떠나는 시간여행

귀경길 교통체증 잊고 맛 보는 전통의 향기

차라리 시동을 꺼버릴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귀경 행렬. 올해도 예외는 아니라고 다짐을 했지만 슬슬 부아가 치민다. 목, 허리, 어깨 결리지 않은 곳이 없다. 어디 시원한 바람 쐬며 쉬어갈 곳은 없을까.

교통체증은 명절 때마다 겪는 고통이다. 올 설도 예외일 수는 없다. 특히 설 연휴가 사흘 밖에 되지 않아 교통 체증이 더욱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로 고향에 내려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답답하다. 그러나 피해갈 수는 없는 일이다. 차라리 귀성, 귀경길을 여유 있게 잡고 즐기면서 올라가는 게 속 편하다. 오고 가는 길에 가볼 만한 옛 고을을 모아봤다.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중앙고속도로가 지나는 제천에 있는 청풍호는 호반 드라이브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청풍호 중간에 충주댐이 만들어지면서 수몰된 마을에서 가져온 문화재를 모아 전시한 청풍문화재단지도 볼거리다. 절구도 찧어보고, 싸리비도 쓸어보며 명절 분위기를 돋군다.

문화재단지 곁의 충주호에서는 150m 높이로 벼락처럼 치솟는 분수가 있다. 귀경길 정체에 짜증난 속이 시원하게 뚫린다. 분수는 오전 11시, 오후3시, 5시, 8시 30분에 솟는다.

청풍문화재단지(043-647-4566)에 가려면 중앙고속도로 단양IC로 나와 36번 국도 충주 방향으로 가다 수산에서 좌회전하면 된다. 문화재단지에서 82번 군도를 이용해 제천으로 나와 다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거나 38번 국도를 이용해 장호원-이천을 경유하는 방법이 있다.


문경새재

영동고속도로와 충주를 잇는 새로운 고속도로가 뚫렸다. 이화령도 4차선 터널이 뚫려 경북 내륙에서 서울로 오는 길이 한결 수월하다. 경북 문경 첫머리가 새재다. 문경과 충북 괴산을 잇는 새재는 영남으로 가는 관문.

영남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갈 때 항상 넘던 고개다. 그 고개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장꾼들이 묵어가던 주막도, 왜군을 막던 성벽도 그대로다. 게다가 1관문에서 10분이면 KBS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세트까지 있어 한층 옛 고을 다운 맛을 풍긴다. 문경읍에는 황톳물처럼 뿌연 온천수가 솟는 문경온천이 있다.


아산 외암민속마을

서해안 고속도로도 밀리기는 마찬가지다. 호남에서 논산과 공주를 잇는 1번 국도와 공주 아산을 잇는 39번 국도를 타고 서울로 가는 게 낫다. 공주에서 39번 국도를 따라 오다 만나는 외암마을도 옛날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400년 전 예안 이씨 일가가 터전을 일군 외암마을에는 조선 말기와 일제 초기에 지어진 고가 86호가 모여 있다. 외암마을은 마을을 감싼 4㎞에 이르는 이끼 낀 돌담이 운치 있다. 마을로 들어서면 장승과 열녀문, 초가로 지은 정자가 반갑게 맞는다. 외암마을에서 39번 국도로 오르면 바닷바람이 시원한 아산만 방조제다.


남원 광한루원

설 나들이 삼아 찾기 좋은 곳이다. 광한루원은 고려 후기부터 300년에 걸쳐 조성된 정원으로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이 무르익은 무대다.

연못에 뜬 섬과 오작교, 춘향사당, 충혼각, 인월정 등 볼거리가 많다. 광한루원 나들이에 추어탕을 빼놓을 수는 없다. 광한루원 근처에 40여 곳의 추어탕집이 있다. 새집 추어탕(063-625-2443)은 전국에 소문난 맛집.


청주 상당산성마을

상주나 보은 등 경북에서 25번 국도를 타고 청주로 드는 길에 찾기 좋다. 미원 지나 4km 가다 우회전 해 512번 지방도를 타면 상당산성을 경유해 청주까지 최단 시간에 간다. 상단산성은 백제시대 축조된 산성으로 삼국시대 중요한 요새였다. 둘레만도 4.2㎞에 달한다.

분화구처럼 파인 산성 안에는 20여년 전에 조성된 한옥마을이 있다. 상당산성의 얼굴인 남문에서 북문쪽으로 난 성벽길이 걷기 좋다. 성벽에 올라서면 청주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산성을 따라 걷다 지치면 산성마을에 들를 차례. 40여집이 대부분 요리를 파는 식당이다. 이곳의 먹을거리는 도토리빈대떡과 대추술이다.


안동 하회마을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돈다고 해서 물도리동이라고 불린다. 조선 초 정이품 벼슬을 지낸 유종혜가 터를 잡은 후 광산 유씨가 600년 동안 살아온 전통마을의 원조다. 전형적인 영남의 양반가옥 북촌댁과 양진당, 충효당이 있다.

또 멋들어진 소나무 군락 만송정 너머로 펼쳐지는 강변도 운치가 있다. 하회마을 초입에서 왼쪽으로 돌아서 비포장길을 4㎞쯤 달려가는 병산서원은 서원 가운데 운치가 가장 뛰어난 곳.

하회마을 초입에는 한국의 탈 200여점과 네팔 인도네시아 등에서 가져온 세계의 탈이 전시되어 있는 하회탈박물관(054-854-5760)이 있다. 하회마을의 먹거리는 헛제삿밥과 안동국시.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로 나와 34번 국도 예천 방향으로 가다 풍산읍에서 좌회전한다.


순천 낙안읍성

호남과 서해의 평야지대 가운데 읍성 안에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순천의 낙안읍성과 진도의 남도석성 2곳이 전부다. 그러나 해마다 가을이면 초가의 지붕을 갈아주는 곳은 낙안읍성 뿐이다. 백제시대부터 성을 쌓고 그 안에 고을을 만든 낙안읍성에는 100여가구가 산다.

관청과 망루를 제외하면 대부분 초가다. 이곳은 높게 쌓은 성곽을 따라 거니는 맛이 남다르다. 초가의 지붕과 지붕이 맞닿아 이어지고, 그 사이로 비좁은 마을길이 미로처럼 이어진다. 표고버섯부침과 더덕구이 등 8가지 음식을 맛보는 낙안 팔진미에 더덕과 찹쌀로 빚은 사삼주는 낙안읍성의 별미. (낙안읍성 관리사무소 061-749-4893)


강릉 선교장

고향 없는 서울내기가 동해바다 여행을 떠났다가 찾기 좋다. 강릉 경포대해수욕장 초입에 있는 선교장은 조선시대 지어진 강원도 개인주택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건평만 무려 318평. 이 호화주택은 효령대군의 11대 손 이내번이 족제비를 쫓다가 우연히 발견한 명당터.

선교장 초입에 삼면이 연못으로 둘러싸인 활래정이 눈길을 끈다. 이밖에 세계 축음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참소리박물관(033-652-2500), 계절 없이 찾는 경포대해수욕장, 바닷물을 간수로 만든 초당두부까지 곁들이면 여행이 한결 풍성해진다.

입력시간 2003/01/3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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