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패트롤] 가치투자로 마지막에 웃는다

이채원 동원투신운용 본부장, 기업 자산가치가 우선 투자원칙

흔히 우리는 주식시장을 거대한 도박장이라고 부른다. 투자자들은 수백 개의 종목 중에서 고르고 골라 베팅을 한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은 실패의 늪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기 마련이다.

동원투신운용의 이채원 본부장(40)은 이런 실패의 원인이 투자자들의 위험관리 능력 부재라고 진단한다.

“사실 주식투자에서 위험관리는 투자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부를 정도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정작 주식투자에서 위험이 뭐냐고 물으면 정확히 대답하는 사람이 드물어요. 이런 나태한 위험관리 의식이 잘못된 투자 원칙을 만들게 되는 것이고 결국 투자의 실패를 가져오는 거죠.”


기업정보, 변동 뀌뚫어야

그렇다면 그의 투자원칙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한마디로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치투자’를 고집한다. 가치투자란 수익성과 자산가치를 따져 탄탄하고 건실한 우량기업에 투자를 하는 것. 15년간 증권사에 몸담으면서 줄곧 고집해온 신념이다.

이런 우직함 덕분에 이제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한국 증시 가치투자의 상징’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하지만 그는 이런 찬사가 오히려 부담스럽다.

“일반적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방법은 매매 타이밍을 쫓는 방식과 가치결정에 의한 투자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너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주가를 예측해서 투자한다는 게 말이야 쉽지 어디 그렇게 되나요? 솔직히 15년 간 주식시장에서 일하는 저도 주가 움직임을 맞힌 경우는 절반도 안돼요. 그럴 바엔 차라리 이런 단기적인 움직임과 무관한 기업의 내재가치를 위주로 투자하는 것이 훨씬 수익률을 높일 수가 있다는 거죠.”

가치투자의 기본은 투자할 기업의 정보와 상황 변동을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와 부하 직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발로 뛴다. 직접 기업을 찾아가고 혹시나 기업가치가 변동된 것은 아닌지 수많은 데이터를 찾아 밤늦게까지 정리하고 회의를 거듭한다. 이 본부장은 머리가 좋지 않으니까 몸이 고생하는 거라고 농담조로 말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게 찾아낸 우량 종목은 과감하게 자신의 펀드에 편입한다. 그렇지만 그의 포트폴리오에는 수익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운 기업이 하나도 없다. 생활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의식주 관련 기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생활주변과 관련한 종목을 고르면 그 기업이 장사를 잘 하나 못 하나를 생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게 그의 투자 철학이다.


기업가치 있는 비인기종목에 베팅

“대부분의 펀드 매니저들은 삼성전자나 SK텔레콤 같은 대형주 위주로 펀드를 구성합니다. 대한민국 펀드매니저가 모두 똑같은 자산 운용을 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선택하는 종목이 똑같은 거죠. 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비인기 주식이라도 충분한 기업가치가 있다면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가령 그 주식이 하루에 1주정도 밖에 거래가 안되더라도 참을성 있게 기다려 반드시 주식을 매수하는 것이죠. 한마디로 저의 투자는 끝없는 조사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이런 그의 투자법은 처음엔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 가치 있는 우량주라고 생각하면 비인기주이거나 중소형주에도 서슴없이 투자하는 그의 포트폴리오는 다른 펀드 매니저들의 화려한 포트폴리오에 비하면 초라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비인기주에 투자해 수익률까지 나쁘면 그 책임은 모두 그가 뒤집어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999년 12월 한 경제주간지가 선정한 최우수 펀드 매니저에 선정됐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울면서 상을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아마 제 인생 중에 가장 힘든 때가 1999년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제가 국내 최초로 가치투자 펀드인 밸류펀드를 운용 중이었는데 당시엔 기술주가 엄청난 열풍을 불러일으켰거든요.

그러다 보니 새롬 기술, 다음 등 기술주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데 제가 선택한 농심, 롯데칠성 등으로 짜인 펀드의 수익률은 제자리 걸음인거에요. 매일매일 투자자들한테 전화는 오는 데 아무리 설명해도 화만 내시고 주가는 오르지 않고 정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었죠.”

결국 그는 투자자들의 비난 속에 2000년 4월 동원증권 주식운용팀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개인투자자의 돈 대신 회사 자금으로 투자를 시작한 것이다. 서서히 마음의 안정을 찾아갈 무렵, 기술주 거품이 꺼지면서 숱한 비난에 시달려왔던 그의 펀드가 서서히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기술주들이 끝없는 하락의 늪으로 빠져들어 갈 무렵 그가 선택한 가치주가 급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합주가지수가 절반으로 떨어졌던 2000년엔 오히려 14%의 수익을 내며 한국 증시에서도 가치 투자가 가능함을 보여줬다. 오랫동안 편견과 싸워온 그의 승리였다.


시간과 인내심과의 싸움

“가치투자는 시간과 자기 인내심과의 싸움입니다. 사실 가치투자는 누구나 잘 아는 투자의 기본이지만 이렇게 하기는 참 어렵거든요. 하지만 실제 기업 가치가 뛰어난 종목은 언젠가 반드시 주가가 오르기 마련입니다. 전 아무리 길어도 3년이면 적정한 주가에 도달한다고 생각해요. 기다림의 시간은 고통스럽지만 그 열매는 달콤하니까요.”

일반투자자들에게도 그는 합리적인 가치 투자방법을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기업의 가치 기준은 모두 세 가지. 수익성, 자신가치, 배당수익률이다. 주식의 가치는 수익과 배당으로 결정되며 여기에 자산적 가치가 보완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 추가로 감안해야 할 것은 수익의 안정성과 성장성, 경영자의 자질, 재무건전성, 기업지배구조 등이다.

“흔히 주식투자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주가 하락이라고 생각하지만, 전 기업가치의 하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주가가 떨어져도 기업의 가치가 그대로라면 언젠가는 제값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주주가 횡령을 했다거나 중요한 거래처를 잃었다거나 해서 기업가치가 하락했다면 지금 주가와 상관없이 무조건 팔아야 합니다. 그래서 전 요즘처럼 주가가 폭락하는 시기는 위험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주가가 폭락하면 그는 즐겁기까지 하다. 그만큼 기업가치에 비해 싸게 거래되는 종목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요즘은 너무나 사고싶은 종목이 많아서 어떤 것을 사야할 지 모를 정도로 행복한 고민을 느낀다. 물론 주가가 내려가면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의 수익률도 다소 낮아지지만 그는 여유를 잃지 않는다.

“누군가 주식투자는 정말 이상한 사업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주가가 비싸면 비싸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사려고 하니까요. 하지만 전 이 말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주가가 비싼 종목을 사기보다는 주가가 앞으로 비싸질 종목을 사는 것이 주식투자라고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완벽하게 이해하는 종목에 투자해야 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종목에 투자하고 주가가 오르기를 바라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입니다. 자신이 잘 아는 종목에 투자해서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만이 주식투자에서 성공할 수 있는 투자법입니다.”

오유경

입력시간 2003/02/0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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