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e life] 생식은 사계절 氣를 먹는 '생명식'

사람의 생김새가 다르듯 대하는 밥상의 형태 또한 천양지차이다. 일반적으로‘밥’이라 하면 불에 익힌 화식을 뜻한다. 그런데 하루 두 끼 이상 생식을 하는 가족이 있어 그들의 밥상을 들여다보고자 지하철역 숭실대 입구에 위치한 상화생식연구소(http://cafe.daum.net/sangwha)를 찾았다.

생식원을 운영하는 홍은표(33)씨는 청년기에 생식에 관한 책을 접하면서 인간이 가진 자연 치유력과 체질에 따른 음식 섭취를 통해 병을 고치게 된다는 사실에 큰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있던 그는 당시 한남동에 살았는데, 직접 경동시장까지 가서 곡식을 사고, 이를 말려 방앗간에 가져가서 빻아 생식을 만든 적이 있었다.

“맛이 너무 없었어요, 생식이라해도 콩류는 5%정도 익혀야 생콩에서 나는 생내를 날려 버릴 수 있다는 걸 몰라서 비린내 나는 생식가루를 한동안 먹어야 했지요.”


“머리 맑아지고 몸도 가벼워져요”

96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석 달 동안 안면도에 들어가서 <오행생식요법>의 저자인 김춘식 씨로부터 섭생법을 배웠다.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짜고 떫은 6가지 음식을 체질에 맞게 섭취하면 건강도 유지되고 질병을 치유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 깨우쳤다.

“사람의 몸은 강한 부분이 있으면 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체질에 따라 모자란 부분에 적합한 영양을 공급해 주는 식사 방법이지요. 주목할 점은 불에 익힌 음식이 아니라 익히지 않은 곡식을 먹는 것이죠.

익히지 않은 곡식은 사계절의 정기를 모아 결실된 것으로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어 적은 양으로도 우리 몸에 충분한 영양소를 공급할 수 있거든요. 무엇보다도 소식하게 되니까 위에 부담이 없어요. 게다가 머리도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는게 느껴져요.”

얘기가 무르익어 갈 즈음 부인 이은정(29)씨는 미리 집에서 준비해 온 점심을 식탁에 차려 놓았다. 멋스러운 도자기에 깔끔하게 담겨져 나온 생식가루와 야채잡채, 연근조림과 숙주나물 무침, 유기농쌈채와 찍어 먹을 수 있는 고추장이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배가 고팠지만 필자와 취재 기자는 밥상을 마주하고서도 생식가루를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몰라 잠깐 허둥댔다. 주인 홍씨가 처음 생식가루를 접하는 이들을 배려하여 따끈한 흑설탕물을 가져다 주었다.

생식가루는 활성효소와 각종 비타민이 현미의 1.5~10배까지 함유된 쌀눈을 비롯하여 수수, 팥, 현미, 깨, 약콩, 보리, 양파, 당근, 감자 등 유기농산물과 맥주효모, 비피더스균, 요구르트분말, 알로에, 코코넛, 녹차 등 35~40종의 가장 좋은 재료를 정확하게 배합하여 만든 것이다. 수저로 떠서 입안에 넣었더니 자그만 알갱이들이 제법 씹힐 정도 였다.

홍씨 부부는 봉지를 열어 바로 입안에 털어 넣고는, 잡채나 연근조림을 생식가루에 찍어 먹는 우리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며 웃었다. 숙주나물은 살짝 데쳐 소금과 들기름만으로 간을 해 담백한 맛을 내고 있다.

연근조림은 표고버섯 우린 물에 연근이 잠길 정도로 넣고 간장, 흑설탕, 물엿으로 빛깔이 예쁘게 나오도록 조려낸 것으로 사각거리며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윤기가 자르르한 야채잡채는 단번에 입맛을 사로잡았다. 고기도 넣지 않은 야채잡채가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는지 감탄할 정도였다.


“병원은 잊고 살아요”

하루에 두 끼를 생식하면 요리할 일이 거의 없지 않을까 싶었는 데 전혀 그렇지 않단다. “오히려 뭐든 집에서 만들어 먹으니까 남들보다 요리하는 시간이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아요. 콩을 삶아서 두유도 직접 만들어 먹고, 떡쌀도 담궈 놓았다가 빻아서 분량대로 냉동실에 준비해 두고 송편이나 꿀떡, 백설기 등을 자주 해 먹어요”

떡과 두유는 두 부부뿐 아니라 이제 23개월된 아들 성웅이의 간식으로도 빠지지 않는다. 성웅이는 모유를 뗀 이후부터 생식을 기본으로 한 이유식과 완전 채식으로 자라고 있다. 지금껏 잔병치레를 전혀 하지 않았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부인 이씨 역시 결혼 전에는 아예 의료보험증을 병원에 맡겨 놓고 다닐 정도로 약골체질이었는데 지금은 건강 체질이 됐다고 한다. 환절기 때 마다 피부 알레르기로, 또 매달 심한 생리통으로 죽을 고생을 했는 데 지금은 병원을 아예 잊고 살 정도가 됐다며 환하게 웃는다.

홍씨의 부모님도 생식을 한다고 한다. 홍씨의 아버지는 97년도에 부정맥과 전립선 질환으로, 이와 비슷한 시기에 어머니 역시 자궁근종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 이 때 아들의 권유로 시작한 생식이 계기가 되어 반 년 정도 생식을 하고 치료가 되어 지금 이들 가족은 홍씨의 형님네 가족까지 합해 일가족이 다 생식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 생식은 일반인들이 느끼는 특별한 식사법이 아니라 생활의 자연스런 부분으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33살의 젊은 나이지만 올해로 생식 11년째로 접어드는 홍씨의 소망은 공기도 좋고 제법 넓은 장소에서 함께 생식을 하며 아픈 사람 스스로가 자신의 몸을 돌보고 인간 스스로의 치유력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의 공식대로 살아가지 않고 자신들의 관심 분야를 일로 만들어 사는 삶을 택한 이들 부부를 통해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이주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3/02/0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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