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핵개발로 북이 얻는 것은

부시 미국 대통령은 8일 장쩌민 중국 주석과 통화한 뒤 북한 핵문제와 관련, “외교적인 노력을 계속해 김정일이 핵을 계속 개발하려 한다면 국제적으로 더욱 고립된다는 것을 확신 시키겠다”고 말했다.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만약 미국이 침략군 증감을 중지 않는 한 한반도는 핵 잿더미에 묻힐 것이다”는 성명이 나오기 전후에 한 말이다.

조평통의 수사(修辭)는 곧 전쟁 일보직전의 상황인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워싱턴에서 보수우파를 대변하는 워싱턴타임스의 7일자 사설은 미국 국무ㆍ국방 고위층의 발언이나 북한의 노동일보, 중앙통신, 외무성 성명 등을 “종이 호랑이들의 노호(怒虎)”라고 평했다.

한국전쟁 정전, 한미동맹 50주년을 맞은 2003년에 한반도에 전쟁이 다시 일어 난다는 말인가. 일어 날 것 같지 않다. 말이 많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핵개발 문제가 불거진 지난해 10월말 이후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 하고 있는 점을 볼 때 그렇다.

‘한반도 절반의 상속인’인 김 위원장이 오는 16일에 61세 생일을 맞고 내년 7월 8일이면 그의 아버지 ‘위대한 수령’의 10주기를 지내야 하는데 북한을 핵 잿더미화 하겠는가.

영국의 가디언지 동북아 특파원인 조나단 와트는 영변 핵발전소 재가동, 미 국방부의 한국 근해 해ㆍ공군력 강화 방침 등의 보도가 있은 6일 평양에 도착했다. 와트 기자는 “미국만 선제 공격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방어선을 넘으면 우리도 선제공격 할 수 있다”는 외무성 이평갑 부국장의 발언을 듣고 긴장 했다.

그러나 이 부국장은 북한 선제공격 발언의 배경을 BBC의 마이크 톰슨 기자에게 설명하듯 말했다. “문제는 미국이 이라크 다음에는 북한을 침략 할 것이기 때문에 일어났다. 미국은 우리의 체제를 승인 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미국과 대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핵 발전소는 전기를 생산키 위한 평화적인 것이다. IAEA 요원을 내보낸 것은 제2의 이라크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 사정에 밝은 영국이 불가침 협정을 체결토록 도와 달라”였다.

와트 특파원은 저녁 늦게 도착한 순안공항에서 핸드폰을 압류 당했고 호텔까지 가는 길에 여러 차례 신분확인 검문을 받았다. 평양의 밤은 너무 어두웠다.

아침 10시 김일성 광장에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려 퍼졌고, 혁명전쟁 벽화 너머로 “적들이 쳐들어 온다”는 소리가 불협화음처럼 들렸다. 시민들은 지하 100㎙ 지하철역 구내, 방공호로 들어갔다. 등화관제 훈련이 있던 저녁 7시에 또 한차례 공습 사이렌이 울렸다. 와트 특파원에게는 분쟁을 만들기 위해 긴장을 강화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적의는 없는 긴장이 이 나라 인민의 일상인 것처럼 보였다.

‘선군’의 포스터와 군가와 함께 평양의 아침은 밝아왔다. 어린애들도 “탱크를 몰고 앞서가자”는 군가를 불러대지만 삭막해진 경제사정의 모습을 바꿔 주지는 않았다. 관리들은 미국과 일본이 도와 주지 않아 아동급식 양곡은 5백g에서 3백g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90년대 말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비축 양곡은 몇 주안에 바닥이 난다고 걱정 했다.

와트 특파원이 느낀 평양은 종말을 위한 옷 갈아 입기를 연습 하는 듯 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미국의 경제적 양보를 얻고 정치적 부흥을 위해 핵 위협책을 쓰지만 인민들은 심각한 모험으로 보는 듯 했다.

북한은 전쟁에는 이길 수 없으나 항복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했다. 평양은 저녁 7시 공습경보 사이렌과 함께 수백만 시민이 ‘종말’로 향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런 도시였다.

북한 인민의 이런 모습을 성찰 했는지 뉴욕 타임스는 8일자에 중국으로 탈북한 난민문제를 이번 핵 문제와 관련해 사설을 썼다. 제목은 ‘필사적 탈북자들’. 이 사설은 한국, 특히 중국이 “탈북이 증가하면 북한 정권이 붕괴 하고 그 결과 자신들 내부도 파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북한에 압력을 넣는데 주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국, 일본, 한국의 인도적 식량 원조가 충분치 않아 많은 인민이 더 아사 했을지 모른다고도 점쳤다.

이 사설은 “북의 지도자나 군사정책에 압력을 가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굶는 인민에게 식량지원을 보류하는(미국의 경우)것은 탈북자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미국은 식량을 원조하고 중국은 현재나 앞으로 난민을 발견하는 즉시 한국으로 보내고 한국은 이를 수용 할 것을 촉구했다.

북한이 던진 핵 개발이란 공은 아직 미국이 받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상속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공을 거두고 인민을 살찌울 일에 전념해야 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3/02/1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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