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성 파괴의 득과 실

예전부터 여자 프로 골퍼들 사이에선 ‘남자 프로와 함께 플레이하면 비거리가 는다’, ‘코스 공략이 과감해진다’는 등의 속설이 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여자 프로 골퍼들이 큰 대회에 출전하기 전에 남성 선수와 실전에 버금가는 경기를 치르곤 한다.

정말 그럴까? 내가 보기에는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아마추어가 유명한 톱 프로의 퍼팅 자세를 따라 하다가 간혹 퍼팅에 자신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이 상대하는 선수에 따라 크게 바뀐다는 것은 과장된 말이다.

여자 프로 골퍼들이 남자 프로와 몇 번 실전 라운딩을 한다고 해서 자신의 드라이브 비거리나, 코스 매니지먼트가 바뀔 수는 없다.

단지 함께 라운딩을 하면서 남자 프로들의 폭발적인 샷과 과감한 플레이 등의 분위기에 잠시 젖는 것 뿐이지 240야드 나가는 드라이버 샷이 갑자기 270야드로 늘 수는 없다. 오히려 잘못하다가는 자신의 스윙 리듬을 잃어 경기를 아예 망칠 수도 있다.

실제로 일부 여자 프로들은 거리 욕심에 평소보다 힘을 들여 치다가 자신의 페이스를 완전히 상실하기도 한다. 사실 골프는 잘치는 사람을 따라하기 보다는 자신의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 하는 데 중심을 줘야 한다.

현 여자 골프계의 지존 아니카 소렌스탐이 남자 프로들이 겨루는 미국 PGA투어 BC오픈에 공식 초청됐다. 소렌스탐은 스케줄만 맞는다면 최소한 1개 대회 이상의 미국 PGA투어 대회에 출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

소렌스탐이 남자 대회에 나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후 한국 여자골프의 간판인 박세리도 미국 PGA투어에 뛰어들 의사가 있다고 공언했다. 현 세계 여자 골프계의 쌍두마차가 남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정말 소렌스탐이 드라이버 비거리만 30㎙ 이상 차이 나는 남자 프로들과 진검 승부를 해 볼 의사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한번쯤 남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골프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려는 호기에 불과한 것일까?

소렌스탐의 진의는 잘 모르겠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소렌스탐이 남자PGA투어 대회에 나가지 않았으면 한다. 혹시 소렌스탐이 평소 이상의 기량을 발휘해 3위 안에라도 들게 된다면 아마 앞으로 세계 골프대회는 남자, 여자의 구분 없이 함께 경기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솔직히 골프 대회에 남녀의 영역이 없어진다면 생각만 해도 왠지 위축된다. 타이거 우즈의 폭발적인 드라이버 샷과 소렌스탐의 부드럽고 리드미컬한 드라이버 샷. 아무리 생각해도 소렌스탐이 우즈와 자웅을 겨룬다는 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지금 당장은 소렌스탐이 남자 PGA투어 선수들과 겨룬다는 것이 흥미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긴 안목으로 본다면 오히려 갤러리들의 흥미를 반감 시킬 수 있다. 남자는 남자답게 폭발적이고 과감하며, 때로는 무모할 정도로 거친 플레이를 선보이는 것이 묘미다. 반면 여자는 섬세하게 부드럽고 지능적인 플레이를 할 때 진가가 드러난다. 이성의 영역에 무리하게 도전하는 것 보다는 각자 성의 장점을 살릴 때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현대 사회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의 영역에 잠입하는 성(性) 파괴 시대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성 파괴는 조금 다른 영역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스포츠의 기본은 에너지와 정신이다. 에너지는 육체에서 나오는 힘을 뜻하고, 정신은 그런 육체를 컨트롤 하는 소프트 웨어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분명 에너지의 크기와 정신의 색깔이 다르다. 그것이 단지 유행이라는 추세 때문에 서로 섞인다면 그것은 진정한 스포츠의 정신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물 흐르는 듯한 소렌스탐의 부드러운 샷과 버디를 잡은 뒤의 수줍은 미소는 타이어 우즈의 정교하고 강렬한 샷과는 다른 멋과 아름다움이 배어 나온다.

박나미 프로골퍼·KLPGA정회원 올림픽 콜로세움 전속 전 국가대표

입력시간 2003/02/11 15:54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