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먹는 한의사, 풀을 먹게 하는 한의사

유제품·육류·인공첨가물 멀리하는 자연식

건강에 대한 관점을 ‘보신’에서 ‘해독’으로 포커스를 맞추며 마이너스 건강법을 제시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가 있다. 종로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손영기 원장(34세)이 그 주인공. 현재 마이너스건강클럽(www.MinusClub.org)을 이끌고 있으며 한의사와 한의대생으로 구성된 한의학 학술단체인 ‘해토파’의 대표이기도 하다.

어떤 것이 어디에 좋다는 소문만 나면 순식간에 씨를 말려 버릴 정도의 ‘보신문화’에 익숙해 있는 우리들에게 손 원장은 먹으면 해가 되는 오염식품에 대해 경고를 아끼지 않는다. 양적으로 풍부해진 먹을거리의 이면에 가려진 문제들에 집중하면서 ‘먹지마 건강법’이라는 책을 내게 되었고, ‘나는 풀을 먹는 한의사다’라는 책에서는 어떻게 먹어야 하는 지에 대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의사이면서 별나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식이요법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까닭이 있었다.“99년 심한 안구건조증으로 고생한 적이 있었어요, 진료를 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내겐 정말 심각한 문제였는데 이 때 맺은 스승과의 귀한 인연으로 인해 식이요법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된거죠.”

숱한 잔병치레로 늘 골골거리던 그는 자신이야말로 전형적인 인스턴트 세대로 계란, 햄, 소시지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한의대 시절 극심한 시험 스트레스로 인해 만성소화장애로 2년간 된장국만 먹었던 적이 있고, 이외에도 노이로제, 불면, 환청, 귀울음, 현기증 등을 앓기도 했다.


자칭 ‘食醫’, 식습관으로 병 낫게 해

이런 병력과 음식을 통해 이를 극복해 나가는 실제 경험을 통해 손 원장은 자신의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음식을 가려 먹을 것을 적극 권하고 있다. “병이 중하고 깊을수록 약만 갖고는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죠. 4년 동안 수천명의 임상경험을 통해 식이요법을 병행할 때는 그 이전의 치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유가 빠르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음식의 조절을 통해 병을 낫게 하는 ‘식의’를 자청하는 그는 “정갈한 식습관이야 말로 육체의 병, 나아가 마음의 병까지도 잡을 수 있는 바탕이 된다”며 음식 문화를 계몽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유제품을 포함한 육류와 밀가루, 인스턴트 식품을 피하고 농약, 중금속, 각종 호르몬, 인공첨가물 등으로 오염된 음식을 멀리하라고 권하는 그의 밥상은 과연 어떨까. 이미 정갈하게 차려진 저녁밥상은 한 눈에 소식하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유기농 5분도미로 지은 밥과 된장찌개, 시금치나물, 파래무침, 주먹감자, 갈치구이, 야채찜, 연근우엉조림, 맵지않게 담근 김치 등이 놓여있다. “여기 있는 것도 제가 다 먹는 건 아니구요, 평소엔 이것보다 훨씬 적게 먹어요.”

당근과 버섯, 실파, 양파, 콩나물을 살짝 익혀 찹쌀가루를 풀어낸 물로 걸쭉하게 버무려 내 놓은 야채찜은 풋익은 야채가 사각거리며 씹히는 맛이 입안을 개운하게 한다. 잘게 잘라 익힌 다음 으깨어 소금으로 간한 후 적당한 크기로 뭉쳐 놓은 주먹감자는 감자자체의 담백한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면서 한결 먹기가 수월하다.

이 집 된장찌개의 특징은 “고추를 넣지 않고 대신 감자와 호박으로 심심한 맛을 내는데 중요한 점은 된장을 맨 끝에 살짝 풀어서 가볍게 끓여 약으로서의 된장 효능을 충분히 발휘하게끔 하는데 있다”고 귀띔했다.

식탁이나 도시락 반찬 메뉴로도 빠지지 않는 연근은 탁월한 섬유질 때문에 해독음식으로 꼽히는데, 보통 조려먹는 방법 외에도 한 번 삶아서 먹기 좋게 썰어 된장에 찍어 먹거나, 말린 연근을 가루 내어 자연산 꿀에 재어 두었다가 커피나 홍차처럼 마시는 방법도 있다. “거의 대부분의 음식재료를 ‘한살림’이라는 유기농산물단체에서 공급받아 쓰고 있는 덕에 오염에 관한 걱정을 덜고 있지요.”


현미 소식, 식사 2시간 뒤 물 마셔

손 원장은 “제 밥상에는 원칙이 있다”고 말했다. “먼저 현미식에 소식을 합니다. 끼니마다 된장찌개가 꼭 들어 가는데 밥 따로 물 따로의 ‘음양감식법’을 따르고 있는 중이라 건더기만 건져 먹고 식사 후 2시간이 지나면 물을 먹습니다.

생선은 구운 형태로만 먹는데 비늘이 있는 생선만 먹어요. 등푸른 생선의 경우 신선도가 떨어지면 좋지 않거든요. 조리할 때에는 설탕과 기름을 거의 쓰지 않는데 꼭 필요한 경우 조청과 미강유(현미의 쌀눈과 쌀겨에서 추출한 100%현미유)를 소량 사용해요. 맵고 짜지 않게 하고 감자를 많이 이용하고, 또 톳이나 미역같은 해조류가 꼭 들어 가도록 하죠.”

먹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덧 주변 사람들과는 다른 식습관으로 소외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인터넷상에서 서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며 함께하는 소속감을 가지도록 ‘마이너스건강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6,500명 정도의 회원이 등록되어 있고 한 달에 한번씩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다. 이곳의 요리실에는 각자가 개발한 그야말로 다양한 방법의 요리가 소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글로 푸는 게 유일한 취미라는 손 원장의 솔직한 칼럼 역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가 이끌고 있는 또 하나의 단체인 ‘해토파’는 환경과 식이요법을 중시하는 한의사와 한의대생들이 한의학적인 관점에서 식이요법을 연구해 나가고 있다. 그가 펴낸 두 권의 저서에서 나오는 인세는 100% 이들을 지원하는 장학기금으로 쓰이고 있다. 이 장학기금으로 공부한 한의대생들이 앞으로 식이요법의 전도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손영기 한의원: 02-734-3375

< 유기 농산물 단체>

한살림(www.hansalim.or.kr): 02-3486-9696

여성민우회생협(coop.womenlink.or.kr): 02-581-1675

생협중앙회(www.coopkorea.net): 02-3486-9696

입력시간 2003/02/13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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