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털 코디네이트 스타일리스트 "멋을 만들어드립니다"

직업 취향에 맞춰 '머리부터 발끝까지' 코디

“이제 마흔 됐어요.” 아직 생일이 안 지났으니 만으론 38살이라고 우겨 볼만도 한데 서슴없이 나이를 밝힌다. 여자 나이 40, 한 시인의 시구를 인용하자면 잔치가 끝났어도 한참 전에 끝났을 나이지만 스타일리스트 남경희씨의 첫인상은 여전히 잔치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하고 있는 일과 유관 할 터.

그녀는 남들에게 자신을 스타일리스트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예전의 명함엔 ‘메이크업 아티스트’, 지금의 명함엔 ‘웨딩 플래너’라고 찍혀 있다.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세 가지 일의 경계가 사실 뚜렷하지 않아요. 스타일리스트를 코디네이터라 부르기도 하구요,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사람이 의상과 소품 코디네이션까지 하기도 하죠. 웨딩 플래너의 경우에도 한 개인을 특별한 날에 맞춰 스타일링 한다는 점에선 스타일리스트의 영역에 속하는 셈이거든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 직종으로 부상

40~50대에겐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는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은 실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선 인기 직종 중 하나다. 굳이 정의하자면 패션이나 소품 코디네이션 분야를 비롯해 인테리어, 디스플레이, 광고, 방송, 영화, 연예, 이벤트, 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창적인 컨셉과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는 토털 코디네이션 전문가라 할 수 있다.

하는 일에 따라 푸드 스타일리스트, 패션 쇼 스타일리스트, 스타 스타일리스트, 광고 스타일리스트, 일반인 개인 스타일리스트 등 다양하게 나뉜다.

푸드 스타일리스트란 말 그대로 요리에 시각적인 생명력을 불어넣는 요리 디자이너이며, 패션 쇼를 연출하고 모델의 의상 및 스타일링을 담당하는 것이 패션 쇼 스타일리스트이다.

광고를 제작할 때 전체적인 의상과 화장의 코디네이션을 하는 것이 광고 스타일리스트이며, 의류 회사에서 상품 기획 및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재구성하여 잘 팔릴 수 있는 상품 라인을 구성하는 역할도 스타일리스트의 몫이다. 소위 말하는 황신혜 목걸이, 김남주 팔찌 등 스타의 유행을 실제로 만들고 이끌어 내는 사람이 코디네이터라고도 불리는 스타 스타일리스트.

이 중 남경희씨가 가장 의욕적으로 개척하고 있는 분야는 일반인 스타일리스트. 유명인도 연예인도 아닌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이 전속 스타일리스트를 둔다는 것에 일단 솔깃하기는 했지만 지나친 호사가 아닌가 싶어 물어 보았다.

“그건 자신의 스타일과 이미지를 제대로 만든 후 갖게 되는 자신감이 얼마나 큰 효과를 낳는지 몰라서 하는 이야기예요. 게다가 개인 스타일리스트는 병원으로 비유하자면 주치의 개념이거든요. 주치의가 있다고 해서 늘 그에게 월급을 주는 건 아니죠. 아플 때 내 몸의 병력을 가장 잘 아는 주치의를 먼저 찾아가 보듯, 스타일링이 필요할 때 나를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전담 스타일리스트를 찾는 거예요.”


의상뿐 아니라 액세서리 향수까지 조언

여자들은 흔히 미용실 의자에 앉아 “저에게 제일 잘 어울릴 것 같은 스타일로 해주세요” 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그건 헤어 디자이너가 족집게 도사가 아닌 이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직업이라든가 나이, 성격, 취향을 알아야만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스타일링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개인 스타일리스트는 단발성 메이크업과는 달리 수 차례 고객과 만나 스타일과 메이크업에 대해 함께 의논하고 시연하며, 어울리는 액세서리나 칼라, 헤어스타일 그리고 향수까지 적극적으로 조언해 준다.

“새로운 고객이 올 때마다 잠시 그 사람과 연애 감정에 빠지는 듯 해요. 가장 그 사람답고 멋지게 표현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하루 종일 고객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실제로 한 여성 법조인이 스타일링을 의뢰해 왔을 때는 법정 소설 여러 권을 섭렵해 가며 직업과 성격에 걸맞은 스타일 창조를 위해 고심하기도 했다고 한다.

동화 속 공주가 살면 어울릴 법하게 화이트와 엔틱으로 꾸민 자그마한 그녀의 사무실. 그 공간의 이곳 저곳에 놓인, 마치 불협화음처럼 어색하게만 보이던 많은 책들이 단순히 남경희씨 개인 취미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부터 정치가의 자서전, 자본주의 경제서, 기업이론, 랭보 시집까지 도무지 독서 취향을 가늠키 어려운 다양한 부류의 책들이 고객을 연구하기 위한 일종의 마케팅 수단인 셈이었다.

“신부 화장만 해도 그래요. 어떤 드레스나 화장이 유행이다 싶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따라 하거든요. 유행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시키느냐가 더 중요하죠.” 웨딩 플래너로서 그녀가 하는 일은 의외로 폭이 넓었다.

메이크업 뿐 아니라 드레스나 한복도 함께 골라 주며 바쁜 신부를 위해서 대신 발품 손품을 팔아 가며 혼수 가구를 쇼핑해 주기도 한다.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것 외에는 결혼에 관한 일체의 어시스트를 해 주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도 고객의 안목이나 취향에 맞아떨어질 성 싶은 것들이 눈에 띄면 어김없이 필름에 담아 온다. 제법 만만찮은 가격의 디지털 카메라 한대가 늘 핸드백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 이 또한 스타일리스트로서의 프로정신이다.

전공과는 큰 상관없지만 스타일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의상 관련학과를 졸업하면 일단 유리하다는 게 남경희씨의 생각이다. 메이크업 경력이나 패션, 디자인 경력도 플러스가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늘 새로운 감각을 유지하는 것. 남경희씨는 “패션 산업의 흐름을 놓치거나 제대로 읽지 못하면 그 순간부터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자격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황순혜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3/02/1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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