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돈나무

향기로운 '똥'내음이 천리밖까지

요즈음 국립수목원내 유리온실에 들어가면 실내 가득히 풍겨 나오는 말할 수 없이 좋은 꽃 향기가 있는데 그 나무의 주인공이 바로 돈나무이다. 향기로 사람의 마음에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값진 일인가 싶다.

돈나무라고 하니 작년 내내 회자되었던, 올해도 결코 모든 이들의 가슴에 떠나지 않을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떠오를지 모르겠다. 하지만 돈나무는 그 ‘돈’과는 무관하다.

돈나무란 이름의 유래는 명확한 기록이 남아있지는 않으나,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제주도 사람(돈나무는 제주도를 비롯한 따뜻한 남쪽 바닷가나 섬 지방에 주로 분포한다.)들은 돈나무를 두고 ‘똥낭’ 즉 똥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꽃이 지고 난 가을 겨울에도 열매에는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묻어 있어 여름이나 겨울이나 항시 온갖 곤충은 물론이지만 특히 파리가 많이 찾아 와서 똥낭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한 일본인이 제주도에 와서 이 돈나무를 두고 그 모습에 매료되어 이름을 묻게 되었고, 똥낭이라고 하는 대답에 ‘똥’자를 발음 못하고 ‘돈’으로 발음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똥나무로 취급하고 무시하는 사이에 일본의 학자들에 의해 우리나라 식물의 기초가 마련되면서, 돈나무를 좋은 관상수로 개발한 일본사람들에 의해 거꾸로 일본에서 묘목과 이 나무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아예 일본인들의 부족한 발음으로 만들어 진 돈나무가 되어 버렸고 이제 사람은 왜 인지도 모르고 그저 돈나무로 부른다. 이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하도 화가 나서 머리가 돌아 버려 돈나무가 될 지경일 것이다.

그 뜻이 어떠하든 돈나무는 사시사철 보기 좋다. 줄기의 밑둥에서부터 자꾸 가지가 갈라 지면서 마치 전정을 해놓은 듯 균형 잡힌 몸매를 가다듬고는 일년 내 볼 수 있는 주걱같은 잎새를 달고 있다.

잎은 윤기가 돌며 동글동글 뒤로 말린 채 모여 달려 그 모습이 귀엽고, 봄이면 그렇게 한자리에 모인 수십장의 잎새 가운데 피어나는 향그러운 꽃이 아름답다. 이 꽃이 맺어 놓은 큰 구슬같은 열매들은 가을 내내 충실히 익어서 벌어지는데 동그랗던 열매가 세 개의 삼각형을 만들며 갈라진 사이로 점점이 붙어 있는 작고 붉은 종자들은 마치 루비알을 가득 박아 놓은 듯 신비롭기만 하다.

정원에 보기 좋은 모양으로 심어 놓아도 좋지만 인적이 드문 남쪽의 한가한 바닷가에서 온갖 바다의 바람과 빛을 한 몸에 받으며 상록수림가에 자리잡고는 활짝 웃고 있는 돈나무를 만나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돈나무는 섬음나무, 갯똥나무, 해동 등 지역에 따라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 운다. 섬음나무라는 이름은 중부지방에서는 음나무가지를 걸어 집안에 귀신이나 액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풍속이 있지만 음나무가 드문 남쪽의 섬이나 바닷가에서는 귀신을 쫓는 역할을 돈나무가 대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방삭이 무서워하는 것도 붉은 팥죽과 이 돈나무라고 한다.

한자로는 해동 이외에 칠리향(七里香)이라는 이름과 천리향(千里香)이란 이름도 있다. 그 꽃의 향기가 좋아 그리 부른다고 하니 기회 있으면 향기가 백리를 간다는 백리향과 향기를 비교하여 칠리향이 옳은지 천리향이 옳은지 보아야 겠다.

돈나무의 수피나 뿌리에서는 좋은 꽃 향기와는 또 다른 냄새가 난다. 결코 좋다고 그렇다고 아주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독특한 냄새는 주로 수피에서 나지만 뿌리를 캐어 보면 특히 더하다.

이 냄새는 불에 태워도 사라지지 않고 더 나므로 사람들은 좀처럼 베어다가 장작으로 때지 않았고 이 냄새 하나로 지금까지 목숨을 연장하고 살아 남은 나무들이 많다. 살아 가기 위한 숲속 나무들의 투쟁은 정말 다양하기도 하다.

향기로운 돈나무 이야기로 시작한 새 봄엔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기려나? 최소한 나쁜 일은 막아 주겠지.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2003/02/1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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