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배우들, 갈 길은?

위기의 30대 여성연기자, 배역 소화 못해 상품성 하락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의 이상적인 주연 여배우는 나이는 18세에서 22세 사이, 키는 160㎝에서 170㎝ 사이여야 하고, 잘 정돈 된 몸매와 특출나게 아름다우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미국 영화 연예 잡지나 대중문화 종사자 그리고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주연 여배우 캐스팅에 대한 외부 조건이다.

이러한 캐스팅 조건은 우리에게도 상당 부분 적용된다. 특히 대중문화의 주요 흐름을 결정하는 문화 상품의 소구력이 10~20대에게서 가장 왕성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드라마, 영화, 가요 등 대중문화 콘텐츠 대부분이 젊은층을 겨냥하고 있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그래서 언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10~20대의 위주의 획일적인 대중문화가 범람한다.


전환점에 직면한 30대

영화나 드라마의 주연 자리는 이러한 상황 때문에 신세대 젊은 연기자들의 독점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콘텐츠의 다양화를 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문화상품의 소비력이 30대 이상 중장년층에서 살아나면서 근래 들어 30대 여성 연기자들의 활동이 예전보다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배우별로 기복이 매우 심한 편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작품의 선택에 따라 스타로서 상품성을 높일 수도 있지만 30대라는 연령은 분명 여자 연기자에게 있어 연기의 전환점에 직면하는 나이다. 어느 때보다 캐릭터의 변신과 이미지의 변화를 잘 해야만 한다. 변신과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스타로서 뿐만 아니라 연기자로서의 생명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시장의 협소함, 대중문화 콘텐츠의 획일성 등으로 인해 20대 여배우들이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연을 독점하는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지만 콘텐츠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은 사정이 다르다.

미국 연예전문주간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최신호는 올해 영화배우 중 가장 각광받을 여배우 10명을 발표했는데 리즈 위더스푼(26)을 제외한 르네 젤웨거(33), 니콜 키드먼(35), 줄리아 로버츠(35) 줄리언 무어(42) 등 대부분이 30~40대였다. 20대가 젊음과 신선감을 내세운다면 이들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연기력과 노련함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최근 우리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30대 여성 톱스타들의 위력이 점점 약화하고 있다. 변신과 작품 선정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선 30대로서 여전히 주연으로 나서 활동을 하고 있는 여자 탤런트는 김혜수(33) 채시라(35) 최진실(35) 김희애(36) 전인화(37) 등이 있고 영화에선 이영애(32) 이미연(32) 전도연(30) 등이 흥행을 담보하는 배우로 인정 받고 있다.

이들의 최근 행보는 배우마다 명암이 엇갈리고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에 전념하다 지난해 KBS 100부작 사극 ‘장희빈’의 타이틀롤을 맡아 2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김혜수는 특유의 카리스마는 온데 간데 없고 20대 초반의 장희빈 역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시청자의 비난을 받고 있다.

시청률은 10%대에서 오르지 않고 있고, 그녀의 상품성은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전도연 역시 충무로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다 5년만에 여의도에 돌아와 출연한 드라마 ‘별을 쏘다’ 에서 신세대 스타 조인성과 호흡을 맞췄으나 자연스러운 극 흐름을 이어가지 못하고 특유의 연기력과 특성을 살리지 못했다.


명암 엇갈리는 여배우들

결혼과 육아로 활동을 잠시 중단하다 드라마 출연을 계기로 연기 활동을 재개한 채시라와 최진실도 그녀들의 예전 이름값을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 최진실은 아이를 출산한 뒤에 나온 MBC 주말극 ‘그대를 알고부터’ 에서 연변처녀 역을 맡았으나 어설픈 연변 사투리에 캐릭터 소화력마저 떨어져 그녀의 장점이었던 귀엽고 신세대적 주부 이미지 마저 상실했다.

또한 채시라는 요즘 방송되고 있는 MBC 주말극 ‘맹가네 전성시대’에서 이혼녀 역으로 나서고 있으나 일상적인 인물을 표출하는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비해 전인화와 김희애는 나이에 맞는 배역과 자신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30대 연기자로서 안방 극장의 스타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3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한 전인화는 사극 ‘여인천하’ 에서 문정왕후역을 맡아 전인화표 카리스마를 분출하며 30대 연기자의 노련함과 연기력을 과시해 상품성을 더욱더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5년만의 드라마에 나온 김희애는 요즘 방송되고 있는 KBS 미니시리즈 ‘아내’에서 나이에 걸맞은 30대 중년 여성의 역을 농익은 연기력과 분위기로 자연스럽게 연출해 찬사를 받고 있다.

물론 ‘아내’는 ‘야인시대’의 기세에 눌려 시청률 면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으나 김희애의 진가는 인정받고 있다.

근래 들어 영화계에서 30대 여배우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세 주역이라는 트로이카, 전도연 이영애 이미연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 붐 조성에 일조 했다. 이들은 여전히 영화의 흥행보증수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국 영화 발전의 동인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이들의 활동은 신세대 여배우들의 기세에 눌려 가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해말 영화제작자 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배우들의 관객 동원력에 대한 조사에서 전지현(22)이 66만명, 김정은(28)이 50만명으로 1, 2위를 차지, 이들 트로이카의 아성을 무너트렸다. 김정은 뒤를 이어 이영애(37만명) 이미연(34명) 전도연(33만명)순으로 나타났다.

이영애는 ‘JSA 공동경비구역’ ‘선물’ ‘봄날은 간다’ 등에서 이지적이고 청순한 이미지로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으나 연기력은 경력에 비해 뒤쳐져 있고 이미연과 전도연은 지난해 각각 ‘중독’과 ‘복수는 나의 것’에 주연으로 나섰으나 흥행에 실패했다. 세 명의 스타 여배우들은 상당 부분 연기의 색깔에서 매너리즘을 보이고 있으며 대중이 선호하는 이미지 창출에 실패했다.

여자 톱스타에게 있어 30대라는 나이는 다양한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나이가 들면서 여자 톱스타들이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의 반경은 좁아들 뿐만 아니라 실제 나이와 걸맞은 배역 선택과 소화 여부에 따라 인기의 높낮이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중기호 못따라가는 이미지

10대후반부터의 장희빈 역할을 한 김혜수의 캐릭터 부적응은 실제 나이와 극중 나이의 극복하지 못한 것에서 초래됐다. 이전 장희빈을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장희빈역을 맡은 김지미 남정임 윤여정 이미숙 전인화 정선경이 21~24세 였던 데 비해 김혜수는 32세였다.

채시라 최진실 등도 실제 나이에 걸맞은 캐릭터를 찾지 못한데 인기 저조의 원인이 있다. 이에 비해 30대라는 나이에 걸맞는 작품과 캐릭터 선택을 해 인기를 상승시킨 경우가 전인화와 김희애이다.

대중이 선호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거나 연기자들이 창출한 이미지에 대중들이 환호할 때 스타는 탄생하며 스타의 상품성은 높아진다. 한 배우의 이미지는 신문과 방송 등 미디어 텍스트에 의해 구축되는데 텍스트의 소재는 배우가 맡는 극중 캐릭터와 사생활이다.

10~20대 스타들의 풋풋한 이미지가 극중 캐릭터에서 유발되는 경우가 많다면 비교적 사생활이 언론에 많이 공개된 30대 여배우들은 사생활에서 배우의 이미지가 창출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관객이나 시청자들은 사생활이 덜 공개된 신세대 스타와 그들이 맡는 매력적인 극중 캐릭터와 동일시하며 20대 스타들에게 맹목적으로 빠져들지만 30대 톱스타를 볼 때는 실제 배우와 극중 인물을 비교하기 때문에 30대 여배우들의 캐릭터에 쉽게 몰입하지 못한다.

“시청자와 관객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은 30대 여배우들을 한 남자의 아내로 겹쳐보기 때문에 배우 자체에 몰입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는 김희애의 말은 30대 여배우의 상황을 정확하게 적시해준다.

또한 스타에 대한 대중의 기호는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같은 이미지의 배우가 있다면 신선감이 있는 신세대 스타에 대한 대중의 환호는 더욱 커진다. 청순한 이미지의 이영애가 같은 이미지의 손예진에게 밀리는 상황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도 30대 스타 연기자들에 대한 관객과 시청자들의 기대는 확대 재생산되기 마련이다.

이전의 작품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좀처럼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것도 30대 연기자의 추락 원인으로 작용한다.


연기력과 끝없는 변신으로 승부해야

그렇다면 30대 여배우들의 탈출구는 없는 것일까. 아니다. 신세대 연기자들이 갖지 못한 탁월한 연기력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작품의 캐릭터를 잘 소화한다면 스타로서 위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작품과 캐릭터 선택에 있어 보다 신중을 기해 자신만의 특성과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한다면 30대 여성 스타의 상품성은 이전보다 상승할 것이다.

30대 여배우들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이들의 활동이 왕성할수록 획일적인 우리 대중문화 콘텐츠는 그만큼 다양해지고 풍부해지며 관객과 시청자는 새로운 이미지와 정체성을 가진 스타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을 것이다.

30대는 체념과 가능성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나이다.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삶의 문양이 달라진다. 연기자도 마찬가지다. 30대 여배우들이 가능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연기 활동을 펼쳐 늘 새로운 캐릭터와 연기 변신으로 지속적으로 사랑 받기를 바란다. 이는 대중문화 발전의 동인일 수도 있다.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

입력시간 2003/02/1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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