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프레소] 브래드 멜다우 내한 콘서트

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ㆍ34)가 솔로 피아노 콘서트를 갖기 위해 온다. 세 번 째 내한이다.

2002년 자신의 트리오를 이끌고 펼쳤던 내한 콘서트에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만원 사례를 빚었던 주인공이다. 마치 빌 에번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머리를 건반 바로 위까지 푹 수그리고 연주하는 모습과, 에번스를 능가하는 서정주의 덕택에 국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그다. 그의 첫 내한은 2001년 ‘백개의 황금 손가락’ 무대 중 최연소 출연자로서 였다.

그는 현재 에번스 이후 세 가지 길로 나뉘어 있는 재즈 피아노계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신성이다. 키스 재릿이 클래식과 재즈를 마음대로 오가며 백인적 재즈 피아니즘의 정수를 길어 올리고 있다.

허비 행콕은 정반대다. 흑인이라는 태생적 차이는 물론, 음악적으로도 펑키와 전자적 사운드를 재즈의 어법으로 녹였다는 점에서 대극에 선다. 또 한 사람 칙 코리어는 라틴 음악의 활력을 재즈에 불어 넣은 뮤지션으로 대별될 수 있다.

멜다우는 놀라운 테크닉과 감수성으로 재즈라는 자칫 낡아 보일 수 있는 음악을 동시대의 감성에 바짝 밀착시킨다. 2002년 내한 공연의 모습을 잠깐 보자.

2층까지 가득 메웠던 객석의 열기에는 관심 없다는 듯 그는 이내 자신의 연주속으로 몰입해 갔다. 그 모습은 살아 있는 빌 에번스였다. 그러나 그의 손에서 펼쳐 나오는 것은 록 그룹 라디오 헤드의 ‘음악에 부치는 음악(Music To Music)’ 등 최신 팝 선율을 마음대로 해체하고 조합한 선율이었다. 객석은 이내 달아 올랐고, 그는 푸짐한 앵콜로 그들을 더욱 즐겁게 했다. 한국 팬들이 그를 유달리 좋아 하는 것은 ‘팬 서비스’ 정신 덕분인지도 모른다.

이번 내한 연주는 2002년에 발표한 9번째 음반 ‘라르고’의 발매를 알리기 위한 것이다. ‘라르고(매우 느리게)’란 문패에 속지 말자. 지금껏 서정주의자로만 알려져 온 자신의 모습에 일대 변신을 꿈꾼 신보다.

재즈와 팝, 특히 록 사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신보는 그래서 재즈가 어떻게 최첨단의 유행과 결합하는 지를 극적으로 보여줄 텍스트인 셈이다. 음반 발표 직후 갖는 내한 연주회가 관심을 끄는 이유다.

비틀스의 고전적 팝과 보사노바를 결합시킨 '파도/대자연 어머니의 아들(Wave/Mother Nature’s Son)’, 신예 그룹 라디오헤드의 히트곡을 놀라운 재즈적 즉흥으로 탈바꿈시킨 ‘편집병에 걸린 인조 인간(Paranoid Android)’ 등의 작품에서는 젊은 뮤지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을 음악적 아이디어가 만발하다.

일반 재즈팬이라면, 또 멜다우의 서정성을 사랑했던 팬이라면 충격적일 수 밖에 없는 변신이 이뤄진 문제의 곡이 ‘안식일(Sabbath)’. 록도 아니라 헤비 메탈, 그것도 급진적인 데스 메탈(death metal)에서나 들을 법한 충격적 사운드다. 어떻게 피아노에서 저런 음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다.

피아노 현에 막대기 등의 물체를 밀착시켜 전혀 새로운 음색을 내게 하는 이른바 ‘프리페어드 피아노’다. 여기에다 녹음 마이크를 기존과 전혀 색다른 방식으로 배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상상의 벽을 허문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극단적 파격속에서도 투명한 서정성이 혼재해 그를 사랑하는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비 내릴 때(When It Rains)’는 전통적 재즈 피아노 트리오에다 클래식적인 8인조 목관악기를 동원, 한편의 산뜻한 수채화를 보는 느낌이다. 또 ‘물결/대자연의 아들(Wave/Mother Nature’s Son)’은 보사노바의 명곡과 비틀스의 음악을 재즈로 엮어 낸 솜씨가 놀랍다. 그의 신보는 그래서 대안인 동시에 보완이다.

재즈 칼럼니스트 김정민씨는 “멜다우는 동년배의 재즈 피아니스트 곤잘로 루발카바와 쌍벽을 이루는 신성”이라며 “이번 내한 무대에서는 새 앨범에서 드러난 혁신적 면모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기존의 재즈는 답습하지 않겠다는 21세기 재즈의 자기 선언이 어떤 식으로 표출될 지 기대된다는 것이다.

재즈 보컬인 부인 플루린(Fleurine) 멜다우 사이에 딸을 두고 있다. 부인과 함께 음반 ‘사랑하기엔 더 이상 가까울 수 없어(Close Enough For Love)’을 발표했다. 2월 13일 오후 8시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02)599-5743.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2003/02/2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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