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人열전] 영화감독 조근식

"낯설지 않은 시대적 자화상 그리기죠"

"흑백에서 컬러TV로 옮아가고, 교복자율화가 실시됐죠. 여전히 한쪽에서는 알게 모르게 잔인한 시간들이 계속되고 있었죠." 신예 조근식(360 감독은 그래서 1980년대라는 '모호한 시간'을 주제로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좆같다', '씹새끼', '씹창나다' 같은 말은 기본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친구'처럼 폭력적 일탈자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어느 한편에 무게를 주기보다는 쭉 펼쳐서 재구성한 다음 최신 기법을 이용해 재배치하는 쪽을 택했다


기발했던 그때 그시절

첨단 영화 기법도, 옛날 영화처럼 무작정 '비나리는' 화면도, 때에 따라서는 만화적 기법도 불사했다. 요컨대 이 영화는 잡탕이란 점에서 포스트 모던적이고, 사회적 의식이나, 이데올로기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21세기적이다. 1890년대에 대한 독창적인 풍속화 '품행제로'는 그렇게 등장한 것이다.(KM컬쳐).

'애꿎은 딸딸이만 죽어라 까야 되는' 시기의 주인공들이 보여 주는 모습은 그러나 전혀 낯설지 않다. 바로 우리의, 또는 친구들의 과거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를 그린 제작비 20억의 영화 '품행제로'가 대자본 영화의 홍수속에서 분투하고 있다. 2002년 극장 성수기인 12월27일 개봉, 구정까지 관객 170만여명을 동원하는 좋은 성적을 낸 이 영화는 멀티플렉스 상영장으로 옮겨 인기몰이를 계속하고 있다.

"센터까서 나오면 십원에 한대씩"이라며 겁에 질린 학생들을 외진 곳으로 끌고 가 '삥뜯고', 기발한 동양상 포르노를 보여주며 구경값을 받아 챙긴다.

남녀가 성행위 하는 모습이 한컷 한컷씩 분할된 정치화면으로 그려진 책갈피를 드르륵 빨리 넘기면 성행위가 하나의 동영상으로 되살아 난다. 클릭 몇 번으로 생생한 포르노를 볼 수 있는 요즘 10대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장면이다.

"1980년대 전반기의 청소년들이 어떤식으로 향유할 수 있었던 문화적 코드를 한데 녹여 보자는 의도였어요." 미술, 조명 등 스텝진과 가졌던 스터디 시간을 포함, 시나리오 작업에만 1년반이 걸린 것은 그래서다. 이 영화는 그래서 집단 기억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1980년대라느 ㄴ시간에 굳이 흥미를 느끼는 이유는?

"변화야 퇴행이 공존했던 이상한 시기였어요. 흑백에서 컬러TV로 전환하고 교복 자율화가 막 시작되는 등 나름대로는 활력에 차 있었죠. 그러나 한쪽에선 여전히 잔인한 시간들이 계속되고 있었고." 자유와 억압이 기이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던 때였다는 것이다.

대학가요제와 예술의 전당 건립 등 관주도 문화사업이 격렬한 반정부 시위와 공존했던 때, 청소년들은 어떻게 그들의 문화를 창출했던가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이 영호는 그 같은 거대 담론속에서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사소한 일상과 그것들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막 피기 시작한 패스트 푸드점과 브랜드 개념, 여고생 취향의 가수 김승진의 히트곡 '스잔'등 당시 10대를 열광케 했던 것들을 곳곳에 던져 놓고 관객들을 미소짓게 한다.

국기 강하식에 맞춰 태극기가 흘러 나오자 사람들이 일시에 정지하는 모습은 지금 보면 낯설기까지 하다. 이 영화의 힘은 일상을 재현하는데서 나온다.


격렬한 시대의 중간지대를 그리다

조 감독은 "내가 생생히 경험했던 1980년대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광주 민주화 운동 등 가혹했던 날들에 대한 기억, 미경험자들이 당시에 대해 품고 있는 판타지 등 극단적으로 차이 나는 두 중간의 틈을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영화가 '그 때를 아십니까'류의 다큐멘터리와 구별지워 지는 것은 최신 촬영 기법들이 군데군데 등장하는 덕택이다. 패싸움 장면에서 공중을 날아다니는 대목에서 동원된 컴퓨터 그래픽과 와이어 액션, 시위나 전투 현장을 포착할때 쓰는 핸드 헬드 카메라로 촬영된 장면 등은 독특한 생동감을 보여한다.

'닭장'(디스코장) '로라장'(롤러 스케이트장)의 생동감 넘치는 장면 역시 그 시대에 대한 감독의 이해로 빛난다.

"요즘이야 모든 것이 구획지워 지지만 당시는 혼재했던, 잡탕의 때였어요." 영화속의 공간들을 보자. 영화에서 똑똑히 재현되는 바, 탁구장이나 롤라장은 동시에 만화 가게였다. DJ박스마저 함께 있던 그곳은 엉성한 형태의 포스트모던적 공간이었던 셈이다.

또 실제의 성격과 배역의 성격이 일치해 더욱 실감 나는 연기를 보여준다는 것도 영화의 자랑이다. 모범생 민희로 분한 임은경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과 TTL광고 등으로 한껏 주목 받고 있는 신인이다.

"2002년 고등학교 졸업해 지금이 아니면 '민희' 같은 역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응했다"는 그의 말은 영하속의 연기에서 왜 그 또래의 생동감이 넘쳐나고 있었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조 감독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한껏 신비화된 그의 이미지를 현실화시키는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오공주파의 두목 나영이로 나오는 공효진은 깽패 소녀라는 망가지는 배역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아 조 감독의 마음을 편하게 했다.

문제는1980년대의 흔적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조 감독은 "서울 수색의 폐공장, 부산 성모여고 가사실, 광주 송정 롤러 스케이트장, 서울 삼청동 한옥 마을 등 전국의 퇴색해가는 장소 12곳에서 로케를 촬영됐다"며 "그 시절의 디테일을 살리려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학교건물은 2002년 9얼 군산의 중앙여중이다. 여름방학을 끝으로 폐교된다는 정보를 입수, 온 데를 누비며 마음껏 촬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 곳곳에서 묻어나는 자연스러움은 조 감독의 독특한 원칙에서 비롯한다. "콘티를 꼼꼼히 검토하는 것은 기본이죠. 다음, 내가 생각한 큰 원 안에서 배우들이 마음대로 놀게 한 뒤, 나는 그들의 화학반응을 지켜보는 거죠." 배우의 자율성과 즉흥을 최대한 배려하는 민주적 감독이다.

스타급들이 자신의 최대치를 자연스럽게 발휘시킬 수 있었던 나름의 비결이기도 하다.


따스한 시선으로 되돌린 일탈의 시간

그가 일탈의 청소년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보낼수 있었던 것은 3수생 생활이라는 갑갑한 시기를 관통한 덕이다. 서울 예전 영화과 89학번이었던 그는 졸업 후 영화 아카데미로 들어가 본격 영화의 꿈을 다졌다.

그는 "당시만 해도 연영과는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애들이나 돈 많은 날라리들이 가는데로 인식됐다"먀 "그러나 1학년 단편 실습에 들어가면서 영화만의 독특한 매력에 빠져 들었다"거 말했다.

8mm 무비 카메라를 들고 그럴 듯한 것들을 무작정 찍던 시기였다. 그러나 자기가 찍은 것을 다시 돌려보는 시사회에서 그는 영화라는 것의 매력을 깊이 느꼈다고 한다.

졸업 작품으로 청각 장애 여인의 내면을 매끄럽게 그린 '워너 비'로 시선을 끌었던 그는 졸업 후 댄서의 꿈을 그린 20분짜리 다큐 드라마 '열일곱'의 촬영으로 참여, 영상 언어의 감을 익혀 갔다. 당시 핸드캠을 들고 방송국 스튜디오를 쫓아 다녔던 경력이 이번에 독특한 영상으로 살아 난 것이다.

이어 충무로로 들어갔다. 장선우 감독 아래서 '거짓말' 조감독으로 장편 영화의 감을 익힌 그가 내놓은 첫 작품이 이것이다. 당대의 잡지, 신문, 사진 등 관련 자료는 물론 주변인들의 기억까지, 모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모아 도달한 결론인 셈이다.

"충무로에 시나리오를 들고 가면 '주제를 20자로 줄여서 재미 있으면 읽어 본다'는 말이 있을 만큼 만만찮은 동네죠." 충무로의 눈은 이 작품이 팔팔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직감했던 것이다.

최근 들이 닥친 패러디 바람은 이 영화를 그냥 두지 않았다. '품행제로'의 포스터 장면을 정치판에 빗긴 것이다. 이 영화의 개봉을 앞둔 시점인 2월초. 인터넷 패러디 신문 '오프 라인 딴지'가 이인제 현대 자민련 총재 권한 대행을 희화시키는데 영화 포스터가 사용됐다.

여기서 '이인자'로 탈바꿈한 이인제는 DJ 다방이 주워 온 아들로 상정된다. 어느날 '무형'이 다방 운영권을 인계 받는 데에다, '몽중'이라는 기둥 서방마저 등장하자 테이블 관리가 어렵게 된 인자는 다방을 뜬다는 설정이다. 때마침 JP 다방이 그러잖아도 테이블을 마련해 놓았다며 '인자'룰 유혹한다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추억의 웃음을 선사하고 있는 영화 '품행제로'는 사실 제목을 외국 영화의 고전에서 따 온 것. 프랑스의 천재적 무정부주의자 영화 감독 장 비고가 1933년, 그의 나이 28세 때 만든 작품의 제목이다. 억압적 사회에서 개인적 자유는 어떻게 말살돼 가는가를 그린, 21세기판 '품행제로'와는 정반대 분위기의 영화였다.


허위의식을 일거에 뒤집다

조 감독은 "이 영화에 나의 몇 년을 바쳤다. 이제는 잊어 버리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어떤 게 들어올지는 그 때 가봐야 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틈이 나면 주변 사람들이 모르게 극장에 가 자신의 영화를 본다고 한다. "관객들이 웃고 즐기는 표정이 내게는 (영화보다) 더 의미 있으니가요." 그러나 한가지 지적은 아프게 받아 들이고 있다. 잔인한 1980년대를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 시대를 너무 희화시켰다는 평이 그것이다. 그에게 다음 영화를 기대하는 것은 그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1980년대를 나의 주관으로 개념화하기에 앞서 이면의 정서를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라며 "그 시대를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죄송하다"고 말했다. 당시에 대한 하나의 독특한 목소리로 생각해 달라는 것이다.

"저마다 똑같은 소리를 내야 하겠어요?" 그렇다면 당신이 보는 이 시대 한국은 무엇인가?

"월드컵과 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우리 시대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고 봐요. 그 사건들을 한국이 한번도 세련돼 보인적 없었던 내게 이곳을 다시 돌아다보게 해 준 계기있죠."

명품 열풍으로 대표되는 허위의식을 일거에 뒤집은 사건이라는 것이다. '품행제로'의 주인공 박중필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입력시간 2003/02/2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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