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위기 지방대학] 교사 사귀기와 홍보전단 돌리기?

학생모집 '영업'에 동원, 연구활동은 뒷전으로 밀려

광주광역시에 있는 D대학 공대 P교수. 40대 초반의 그는 집과 학교가 모두 광주지만 1년이면 3분의 1 가량은 서울에서 살다시피 한다. 원정 강의가 있거나 학술 세미나 등에 자주 참석해서가 아니다. “수도권의 신입생들을 적극 유치하라”는 대학측의 특명을 받고 있는 탓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 석자 앞에는 교수라는 직함 보다 ‘서울ㆍ경인 지역 입시관리팀장’이라는 직함이 먼저 붙는다.

주로 하는 일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학교 입시설명회를 연다든지 원서 접수 창구에서 신입생 모집을 지도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잠시 멋적은 듯 머뭇거리다 “사실은 일선 고등학교를 방문해서 교사들에게 ‘읍소’하는 일이 대부분”이라고 털어 놓는다. “강의를 할 때는 교수이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학교 세일즈맨이죠.” 이번 신입생 원서 접수 기간에도 공동 접수 창구가 마련된 서울 한 지하철역 구내에서 며칠간 홍보 전단을 돌려야 했던 터였다.

부교수, 조교수를 모두 포함해서 D대학의 교수는 50여명. 벌써 5년 전인 1998년부터 모든 교수들이 이렇게 ‘영업’에 동원됐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됐던 대학처럼 강제로 할당된 목표는 없어요. 단지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학교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하는 거죠.” 하지만 실적이 저조하면 승진이나 보직에서 불이익이 주어지거나 심지어는 퇴출까지도 감수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교수들 사이에 팽배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때려치우고 싶을때도 많죠”

P교수가 지난해 가을 학기부터 지금까지 방문한 수도권의 고등학교는 어림잡아 100여곳. 학연 등 연고가 있거나 지인이 있는 학교를 찾아갈 때는 그래도 걸음이 가벼운 편이다. 낯선 학교에서는 “벽에 대고 얘기를 하는 참담한 심정”을 느낄 때도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아예 “전단만 두고 가시라”는 고교 교사들의 냉랭한 반응에 부딪히기 일쑤다. “처음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었어요. 헌데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도 돼요. 전국의 대학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교수들이 찾아 드니 학교 교사들이라고 반가울 리는 없겠죠. 다들 고만고만한 얘기들만 하는데….”

분명한 것은 신입생을 유치해야 하는 상황에서 만큼은 고등학교 교사와 대학 교수가 명백한 ‘갑과 을’의 관계라는 점. 학교측과 교사들에게 뇌물이나 리베이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성의 정도로 봐줄만한 선물을 건네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다.

교사를 간신히 설득해 학생들을 상대로 입시 설명회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잡아도 실제 성과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그는 “7~8개 학교에서 간신히 설명회를 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의 내실과 관계없이 지방 대학 자체를 기피하기 때문에 별 효과는 없었다”고 말했다.

수업이 없는 날은 고스란히 학생 유치 활동에 빼앗기다 보니 연구 활동이나 강의 준비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그에게 사치나 다름 없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간간이 공부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어요. 학교에서도 교수들에게 수업의 질을 높이는 것 보다는 당장 생존 현안인 학생 유치에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자연히 학생들의 수준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취업률 99%”라는 홍보 문구도 그저 낯 뜨거울 뿐이다. “그래도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학생들이 수업을 따라 올 정도는 됐어요. 헌데 요즘은 기초적인 수학 공식 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상당수예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가며 직접 학생들을 유치하고는 있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학생들을 뽑으니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는 자괴감도 듭니다.” ‘세일즈맨으로 전락해 버린 교수님’의 말에는 깊은 자조가 묻어난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2003/02/2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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