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세계여행-45] 인도네시아 발리

테러 사건 악몽 털고 활기 되찾은 '신들의 섬'

2002년 10월 12일 오후 11시20분 세계적인 관광휴양지 인도네시아 발리의 꾸따비치 뒷편 르기안거리에 위치한 사리클럽. 발리 최대의 번화가인데다 물 좋기로 유명한 외국인 전용 나이트클럽인 이 곳으로 폭탄을 가득 실은 차량 한대가 돌진했다.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졌고 일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발리의 환상적인 밤을 즐기던 관광객 400여명 중 193명이 숨지는 사상 최악의 관광지 테러사건은 그렇게 순간적이었다.

이 폭발로 인근 페디카페, 알로하 등 반경 1㎞이내 건물의 유리창 대부분이 파손되고 사리클럽앞 도로는 폐허로 변했다. 현장에서 10㎞ 떨어진 곳에서도 폭발음이 감지될 정도였다니 그 위력을 짐작할 만하다.

사건 직후 사리클럽 앞에는 매일 수천명의 추모행렬이 이어지면서 새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는 듯 했다. 그러나 신변안전을 이유로 발리를 찾는 관광객이 크게 줄면서 관광업이 생업인 지역 주민들에게는 테러의 충격보다 더 큰 생계의 위협을 느껴야 했고, ‘신들의 섬’으로 불리던 발리는 어느새 ‘저주받은 섬’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로부터 100일을 넘긴 지난 2월 초 사리클럽의 사건현장은 말끔하게 치워졌으나 내부를 보지 못하도록 펜스가 쳐져 있었다. 또 줄을 잇던 추모행렬은 끊어졌고 사건 발생 사실을 알려주는 그 흔한 팻말 하나 찾을 수 없다.

과연 이 곳이 엄청난 인명피해를 낸 사건 현장인지 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단지 펜스 앞에 흩어져 있는 시들은 꽃 몇 송이를 통해 당시의 헌화 행렬을 짐작케 했다. 발리당국은 이 곳에 테러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발리힌두식 추모사원을 건립할 예정이다.

택시운전을 하는 현지인 끄뜻(32)씨는 “발리인의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다 보니 아픈 기억은 빨리 잊으려고 노력한다”며 “추모행렬이 줄어든 것은 테러의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반증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발리가 빨리 관광지로서의 옛 명성을 회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폭발사건 충격에서 서서히 회복

아시아의 대표적인 관광지 발리섬이 재도약의 기지개를 펴고 있다.

테러의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시면서 뚝 끊겼던 외국인 관광객들의 방문이 재개되고, 각 호텔도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섬 전체가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아직은 테러사건 이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폐허가 되다시피 했던 꾸따지역의 상권도 회복되고 호텔의 투숙률도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발리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하루 평균 8,000여명으로 테러 이전(2만명)의 40%수준. 연간 700만여명이 찾는 관광지치고는 초라한 실적이지만 10%에도 못 미치던 테러 직후와 비교하면 그나마 크게 나아진 셈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현지 호텔들을 중심으로 한 발리 전체의 관광객 유치운동이 크게 기여했다. 특히 호텔의 파격적인 할인마케팅에다 한국, 일본, 중국 등 3국의 겨울휴가 및 방학 특수 요인도 적지 않았다. 발리섬은 이제 여름 시즌을 준비중이다.

관광객이 늘면서 테러 직후 10%대의 투숙률로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던 대다수 호텔들이 60% 이상의 투숙률을 기록, 손익분기점(투숙률 50%)을 넘겼다. 발리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40%이상을 차지하던 호주인들이 테러사건 때 1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내면서 발길을 거의 끊었으나 최근 들어 서서히 늘어나고 있는 것도 좋은 징조.

한때 개점휴업 상태이던 꾸따지역 레스토랑과 나이트클럽이 이들의 방문에 힘입어 회생기미를 보이고 있다.

테러 발생이후 급감했던 한국발 발리행 항공편의 탑승률도 조금씩 늘고 있다. 지난 해 9월 처음으로 인천-발리 직항편을 일주일에 3편씩 띄우면서 의욕적인 마케팅에 임했던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은 사고 직후 여행객의 감소로 2편으로 줄여 운행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발리 여행객이 늘면서 250석을 모두 채우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가루다측은 4월부터 항공편을 일주일에 3편씩 늘려 테러이전 수준으로 되돌리기로 했다.

또 각 여행사들이 전세기 형태로 띄우던 발리직항 대한항공편도 곧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발리 전문 여행사 관계자는 “현재는 발리직항편이 적어 많은 관광객들이 자카르타나 싱가포르, 홍콩 등을 경유, 발리로 들어가는 비행편을 택하고 있다”며 “시간도 많이 들고 경비도 만만치 않아 직항편을 늘려줄 것을 요구하는 고객들이 많다”고 말했다.


천혜의 섬 발리

발리는 1만7,500여개의 섬을 가진 세계 최대의 도서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이름나 있다. 2억3,000만 인도네시아 인구의 90%가 이슬람교도인데 비해 350만명의 발리인 93%는 발리힌두교라는 힌두교와는 또 다른 특유의 종교를 믿고 있다.

위도상으로 남위 8도에 위치, 연평균 26~32도의 온도 분포를 보이고 있고, 동서 140㎞, 남북 80㎞로 제주도 면적의 2.7배에 달하는 넓은 지역이어서 푸켓, 괌, 사이판, 보라카이 등 동남아지역의 전통적인 휴양 관광지에 비해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다양하다.

우선 발리 서해안에 위치한 최고의 번화가 꾸따비치는 전 세계 서핑애호가들로부터 각광받는 이른바 ‘서퍼스 파라다이스’(surfer’s paradise)로 정평이 나 있다.

일년 내내 거센 파도가 치기 때문에 비치 앞에는 늘 서핑보드를 든 외국인들의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특히 계절에 상관없이 서핑을 즐길 수 있고 거리상으로도 가까운 데다 물가도 싸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젊은 호주 여행객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돼왔다.

또 비치 뒷편으로는 각종 쇼핑센터와 레스토랑, 저렴한 숙소들이 즐비하고 밤새도록 젊음을 발산할 수 있는 수많은 나이트클럽이 늘어서 있어 젊은 배낭 여행객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곳이다. 테러사건에서 젊은 호주인의 희생이 많았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꾸따지역이 외국인 자유여행객을 위한 ‘발리의 이태원’이라면 동해안에 위치한 누사두아비치는 ‘발리의 중문단지’ 혹은 ‘보문단지’로 일컬어진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1987년부터 의욕적인 개발을 벌이고 있는 이 곳은 10여개의 고급 호텔들이 즐비한 데다 단지 내에는 관광업무를 제외한 현지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병원, 약국, 식당, 경찰서 등 모든 공공ㆍ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안전하게 해양스포츠와 남도의 정취를 맛볼 수 있다. 또 꾸따지역과는 달리 바다가 잔잔해 수영은 물론, 파라세일링, 제트스키, 바나나보트 등 각종 해양스포츠를 10~15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한국인 신혼여행객과 가족 단위 여행객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또 있다. 세계적인 관광휴양 리조트 체인인 클럽메드를 비롯, 그랜드 하얏트 발리, 니코발리, 힐튼발리, 쉐라톤 누사인다 등 전용비치를 소유한 유명 호텔들이 많기 때문. 크게 무리하지 않고 안전하게 이국의 정취를 맛보기에는 그만이다.

대표적인 리조트 체인인 클럽메드는 매끼 식사와 함께 와인, 맥주 등 음료가 무제한으로 제공되고, 빌리지내의 6홀짜?골프장 이용은 물론, 윈드서핑, 카약, 스노클링 등 다양한 스포츠를 무료로 배우거나 체험할 수 있다.

또 누사두아 북쪽해안에 위치한 탄중 브노아와 사누르비치에서는 누사두아보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만끽할 수 있다.


래프팅과 크루즈관광, 만족도 높아

비치에서 노는 것이 조금 지루해진다 싶으면 래프팅이나 크루즈 여행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내륙지방인 아융강 일대에서 펼쳐지는 래프팅은 발리를 여행하는 관광객들로부터 만족도 1위를 기록했다.

발리에서 유람선으로 1시간 30분 가량 떨어진 누사 페니다와 누사 렘봉안섬을 왕래하는 퀵실버와 발리하이 크루즈는 가족 단위 여행객들의 필수 관광코스. 국내에서도 패키지 상품을 통해 여행을 갈 경우 래프팅은 1인당 68달러, 크루즈여행은 85달러 정도를 내야 하지만 발리레포츠(www.balileports.com) 등 한국인이 운영하는 현지 여행사에 직접 연결하면 절반 정도의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발리가 여타 동남아 휴양지와 대비되는 것은 해변을 벗어나도 무궁무진한 볼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누사두아지역에서 차량으로 2시간 가량 북쪽으로 올라가면 해발 1,500㎙안팎의 고지대에 위치한 화산호수와 만나게 되는데 이 곳이 유명한 낀따마니 화산지구이다.

이 곳은 낮에도 약간 서늘한 기운이 감돌며 아침 저녁으로는 긴팔 옷을 입고 가지 않으면 추위를 느낄 정도여서 열대지방에 왔다는 사실을 순간 잊게 해준다. 땀빡실링, 빠쭝지역은 왜 발리가 계단식 논으로 유명한 지를 단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각종 미술품과 목각, 은세공 전문점이 밀집한 우붓, 쁠리아탄, 마스 등은 발리인만의 독특한 미술세계를 느낄 수 있는 마을로, 토산품을 구입하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원순례도 또다른 볼거리

발리의 또 다른 매력으로 섬 전역에 펼쳐있는 사원과 이 곳에서 벌어지는 제사의식을 빼놓을 수 없다. 각 사원마다 1년에 한번씩 제사를 지내고 있는 데 발리에는 2만개가 넘는 사원이 있으니 매일 수십 곳의 사원에서 제사가 열리는 셈이다. 발리(bali)라는 말이 ‘신에게 제물을 바친다’는 뜻의 와리(wari)에서 유래됐다고 하니 제사가 얼마나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우리나라에도 유명 사찰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듯 발리의 사원도 예외는 아니다. 발리의 여신 데위 다누(Dewi Danu)의 배가 변한 것이라고 전해지는 울루와뚜 절벽에 위치한 울루와뚜 사원은 인도양의 거친 파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으며, 밀물 때 바다 위에 떠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따나롯 사원은 세계 최고의 석양을 자랑하는 곳이다. 에로영화의 대명사격인 ‘엠마누엘부인’의 촬영지가 된 후 더욱 유명해졌다.

또 해발 1,200㎙ 브두굴지역에 위치한 울룬다누 사원은 호수에 떠있는 듯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발롱댄스, 께짝댄스 등 발리 고유의 춤도 볼거리.

발리레포츠 이기수(46) 사장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되면 관광객들이 줄어들기 때문에 현지 호텔들이 더욱 파격적인 할인가격을 제시하며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다른 관광지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에 고급스런 여행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메리트는 올 연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창만 기자

사진 클럽메드 코리아ㆍ발리레포츠

입력시간 2003/02/26 11:13


한창만 cmh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