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0원짜리 기름' 에 불 붙었다

휘발유 첨가제 세녹스·LP파워 인기 폭발

“물량이 없어서 난리예요.” 서울 송파구 가락동 세녹스 판매점은 최근 본사에서 물량을 제대로 공급하지 않고 있다며 아우성이다. 하루 기본 판매량이 20리터 들이 100통에 달하는데 벌써 며칠 째 찾아오는 고객을 맨 손으로 돌려 보내느라 진땀을 뺀다. “아마도 요즘 전국적으로 세녹스가 불티나게 팔려 나가면서 물량 공급이 어려운 모양”이라고 투덜댄다.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400원이 넘어서는 등 고유가 시대에 접어들면서 가짜 휘발유냐 휘발유 첨가제냐를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 ‘990원짜리 기름’ 의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다.

초기 붐을 일으켰던 세녹스, 후발 브랜드이지만 최근 판매망을 급속히 넓혀가고 있는 LP파워가 대표 주자. 가장 큰 매력은 역시 가격이다. 리터당 990원, 휘발유보다 적게는 300원, 많게는 400원 가량이나 저렴하다.

업체들은 게다가 “엔진 세정 효과는 물론 연비도 높일 수 있다”고 홍보한다. 업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대체 에너지’라고 불러도 좋을 법하다. 이들의 인기를 등에 업고 ‘유사 세녹스’ ‘유사 LP파워’까지 득세할 정도다.

물론 역풍도 거세다. 가뜩이나 고유가 탓에 몸살을 앓고 있는 주유소들은 ‘불법 첨가제’ 로 인해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며 잔뜩 볼 멘 소리를 한다. 정부도 소매를 걷고 나섰다. 주무 부처인 산업자원부가 세녹스와 LP파워를 ‘유사 휘발유’로 판정하며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벼르고 있고, 국세청은 교통세 등 에너지 세금을 부과하고 나섰다. ‘990원짜리 기름’을 둘러싼 대혈투가 고유가 시대를 배경으로 막판 불꽃을 튀기고 있다.


인기 상한가 누리는 ‘990원짜리 기름’

세녹스가 시중에 첫 선을 보인 것은 지난해 6월. 벤처기업 ㈜프리플라이트사는 2년여간의 연구 끝에 솔벤트, 톨루엔, 메틸알코올 등을 적당한 비율로 혼합해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연구원은 제품 출시에 앞서 가진 성능 검사에서 세녹스가 휘발유에 비해 일산화탄소 배출이 34% 줄어들고 탄화수소와 질산화물도 각각 25%씩 감소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제품의 유형은 ‘휘발유 첨가제’, 권장 사용량은 40%였다. 즉, 휘발유 60%에 세녹스를 40%까지 첨가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첨가제로 판정을 받은 만큼 교통세, 교육세 등 에너지 세금이 면제된 것은 당연했다. 세금이라곤 부가세 10%만 붙어 리터당 990원의 막강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40리터를 주유할 경우 적어도 6,000~7,000원은 절약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알음알음 입 소문이 번진 세녹스는 요즘 인기가 최고 상한가를 달린다. 하루 평균 판매량은 지난해 말 20만리터 가량에서 올 들어서는 30만리터로 껑충 뛰었다. 한번에 40리터를 주유하는 차량을 기준으로 하루 2만대 가량이 세녹스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아예 ‘6대 4’의 첨가비율을 무시하고 세녹스만으로 연료통을 채우는 이들까지 생겨날 정도. 프리플라이트 구동진 차장은 “서민들은 휘발유 가격 몇십원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며 “앞으로 기름 값이 더 오를 거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부쩍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1월 중순 전남 영암에 있는 공장을 증설해 하루 최대 생산량이 200만리터에 달하지만 원료 부족 탓에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아이베넥스라는 회사가 제조, 판매하고 있는 LP파워도 ‘990원짜리 기름’ 붐에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제품이 시중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개월여 전인 지난해 11월. 하지만 300개 가량의 판매점을 통해 하루에만도 18리터 들이 용기가 최대 2만개까지 팔려나가는 등 튼실한 기반을 구축했다.

역시 세녹스처럼 휘발유와 6대 4의 비율로 혼합해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된 유사 성분 제품. 이 회사 조성욱 대리는 “총판, 대리점, 판매점으로 돼 있는 이중, 삼중의 판매 구조 탓에 정확한 판매 현황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연초와 비교해서도 판매량이 두 배 가량은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연쇄 부도날라, 주유소 불만 폭발

첨가물(세녹스, LP파워)이 본제품(휘발유) 시장을 급속히 잠식하는 기형적인 현상에 정유업계, 특히 기존 주유소 운영업자들의 불만은 폭발 일보 직전이다.

“첨가제가 휘발유와 가격 경쟁을 벌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런데도 시청에 항의했더니 단속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하네요.” (충남 아산 K씨) “최근 지역에 세녹스와 LP파워 판매점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결국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고 주유소를 운영하는 사람들만 무더기 도산 위기를 맞고 있어요.” (전남 여수 K씨) “인근 세녹스 판매점은 오전에 물량을 다 팔아 오후에는 문을 닫는다고 하네요. 우리 주유소는 파리만 날리고 있는데….” (대전 S씨) 산업자원부, 재정경제부 등 관련 정부 부처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세녹스와 LP파워 판매를 금지해달라”는 주유업자들의 글들이 빗발친다.


혼선 부추긴 정부 뒷북 정책

혼선은 정부의 뒷북 정책, 부처간 이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세녹스 출시 이전 주무 부처인 산업자원부는 회사측의 시판 허용 질의에 “석유사업법 상 석유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환경부나 행정자치부에 질의를 해 봐라”는 어정쩡한 답변을 내놓았다. 환경부가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환경 성능 시험을 거쳐 ‘휘발유 첨가제’ 판정을 하고, 행자부가 소방법에 따라 위험물저장취급소 허가를 내 준 것도 이 무렵. 세녹스와 LP파워가 ‘휘발유 첨가제’라는 합법적인 간판을 달고 당당하게 시중에 판매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정부 덕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제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정유업계의 반발이 심해지자 산자부가 지난해 8월 부랴부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애초의 어정쩡한 판정을 뒤집고 세녹스는 휘발유 첨가제가 아니라 유사 휘발유, 즉 가짜 휘발유라며 사법기관에 형사 고발 조치를 취한 것.

솔벤트와 톨루엔을 절반씩 섞은 것이 시중에 불법 유통되고 있는 가짜 휘발유인데 여기에 메틸알코올을 조금 첨가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는 주장이었다. 국세청도 뒤늦게 세녹스 기존 판매분에 대해 교통세, 교육세 등 휘발유에 준하는 세금을 부과했다. “세금 탈루를 노린 유사 석유제품으로 판정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업체들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았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일반 주유소의 주유기를 통해 세녹스를 판매하던 프리플라이트사는 별도 전문 판매점을 모집해 용기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주유소에서 판매가 이뤄지지 않는 한 산자부의 행정 조치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교묘히 활용한 것이었다.

국세청의 세금 부과에 대해서는 영암 공장 등을 담보로 올 3월까지 납부 유예 신청을 한 뒤 국세심판원에 심판 청구를 내놓았다. 이 무렵, 아이베넥스사의 LP파워까지 시장에 본격 뛰어들면서 “불법 가짜 휘발유냐, 합법 휘발유 첨가제냐” 싸움은 장기전에 돌입했다.


유사 휘발유냐, 휘발유 첨가제냐

현재 산자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세녹스와 LP파워는 명백한 불법 제품입니다. 40%가 혼합된다면 첨가제가 아니라 유사 연료라고 보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일부 소비자들은 당장 문제가 없다고 제품을 사용하고 있지만 엔진 부식 등 부작용은 수년 후에 나타날 겁니다.” 염명천 석유사업과장은 논쟁에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환경부에 이들 제품의 혼합 비율을 1~2% 이내로 제한해 줄 것을, 행자부에는 소방법 상 판매를 금지시켜줄 것을 요청해 놓기도 했다.

업체들도 마지막 ‘항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아이베넥스 안상철 이사는 정부 정책이 모순 투성이라며 항변한다. “한번 보세요. 산자부는 LP파워와 세녹스를 가짜 휘발유라고 판정했습니다. 불법 제품이니까 아예 팔 수 없다는 거죠. 근데 다른 한편으로는 환경부에 첨가 비율을 1~2%로 제한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불법 제품의 첨가를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 아닙니까? 게다가 세무 당국의 과세 조치는 세금만 내면 계속 팔아도 좋다는 건지, 뭔지….”


3월말, 논쟁에 마침표 찍나

유사 휘발유 논쟁은 이제 종착역으로 치닫고 있다. 최대 고비는 지난해 6~9월 세녹스 판매분에 대한 누적 세금(43억원) 43억원의 납부 유예 기간이 끝나는 시점, 3월말이다. 불과 1개월 남짓 남은 이 때까지 판정이 뒤집히지 않는 한 회사측은 43억원을 고스란히 세무서에 납부해야 한다.

당장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쳐도 휘발유와 동일한 세금을 계속 납부하면서는 990원의 가격 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정부 관계자는 “회사측이 리터당 800원이 넘는 세금을 물면서 990원에 제품을 파는 밑지는 장사를 계속할 수는 없다”며 “최악의 경우 담보로 잡힌 공장이 세무서에 압류돼 회사가 문을 닫는 사태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프리플라이트나 아이베넥스측도 “세금을 납부하게 되면 더 이상 제품을 판매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인정한다. 업체들이 기대고 있는 희망은 국세심판원 결정. 최종적인 판단이야 법원에서 내려지겠지만 양측의 치열한 공방에 미뤄볼 때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베넥스 안 이사는 “환경 오염물질이 거의 함유돼 있지 않은 만큼 대체 에너지로 인정돼 오히려 세금을 절감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지리한 공방 속에 열풍의 중심에 있는 소비자들이나 이제 막 사업에 뛰어든 판매점이나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세녹스 출시 이후부터 제품을 사용해왔다는 장중현(35ㆍ서울 잠원동)씨는 “지금까지 제품을 써봐도 별 탈이 없어 저렴한 맛에 계속 이용하고 있다”며 “하지만 정부 부처마다 엇갈린 판정을 내놓아 사실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천 남구 세녹스 판매점인 학익점 윤모(38) 사장은 “사업성이 좋다는 생각에 불과 며칠 전 판매점을 개설했다”며 “자칫 사업 자금을 모두 날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2003/02/26 16:20


이영태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