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패션] 섹시 터프 밀리터리 룩

강하면서 부드러운 멋, 실용적인 군복을 입는다.

세계가 전시의 기운에 휩싸여 있다. 패션의 세계에도 전쟁의 징후가 나타나 있다. 바로 밀리터리 룩이다. 올 봄ㆍ여름 컬렉션에 등장한 밀리터리 룩은 신선하게 느껴진다. 1,2차 세계대전 중에 유행하기 시작해 현대에 와서도 자주 유행의 중심에 섰던 만큼 밀리터리 룩은 혁신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말 그대로 군복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이전과는 다르게 이번 시즌의 밀리터리 룩은 섹시하고 부드러워졌다. 남성복의 틀을 깨고 매력적인 패션으로 다가온 밀리터리 룩을 만나 보자.


봄ㆍ여름 밀리터리 룩의 코드는 실용주의와 섹시함

‘밀리터리 룩(Military look)’ 하면 딱딱하고 직선적인 제복 스타일이나 카키색의 얼룩 무늬, 카무플라주(Camouflage) 프린트, 힙합 스타일을 떠올리기 쉽다. 생각보다 다양하고, 우리 주변에 가깝게 널려 있다.

밀리터리 룩은 육군복 스타일(Army style)을 말하지만 넓게 해군복 스타일(Navy style, Sailor style), 공군복 스타일(Airforce style, Aviator style)까지도 포함한다. 여름에 인기를 더하는 마린 룩(Marine look), 해군생도의 제복이 변형된 세일러복(Sailor suit) 등도 이미 친숙한 패션 테마이다.

이 외에 파일럿 룩(Pilot look), 폴리스 룩(Police look)도 넓은 의미에서 밀리터리 룩에 해당한다. 흔히 아프리칸 룩으로 알고 있는 사파리 룩(Safari look) 역시 군복의 영향을 받았다. 옷장 안에 한 벌씩 걸려 있을 트렌치코트도 군용 방수 코트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니 밀리터리 룩은 더욱 친근하다.

이번 봄ㆍ여름 밀라노, 파리, 뉴욕에서 열린 여성복 패션쇼에서 선보인 톱 디자이너들의 의상에서는 보다 여성스럽고 섹시한 여군들이 등장했다. 변형된 트렌치코트와 카키 컬러를 선보인 ‘막스 마라’와 도회적인 마린 룩을 보인 ‘마이클 코어스’의 쇼에서 밀리터리의 요소를 엿볼 수 있었다.

‘크리스챤 디오르’와 ‘구찌’의 컬렉션에서는 군복 디자인에 광택 나는 소재를 사용해 고급스럽고 섹시한 군복의 이미지를 연출했다. ‘존 갈리아노’는 과장된 밀리터리 룩을 이슬람 스타일과 조화시켜 무모한 전쟁을 비웃는 듯 했다.

톱 디자이너들이 말해주듯이 올 봄ㆍ여름 밀리터리 룩의 코드는 실용주의와 섹시함이다. 1차 대전의 발발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시작됨과 동시에 군복의 실용성은 입증된 셈이다. 여성해방을 가져온 밀리터리 룩은 이후 저항정신을 앞세운 스트리트 패션에서 그 모습을 들어낸다.

1960~1970년대 초, 밀리터리 룩은 베트남전 반대운동이 확산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히피들이 군용 코트나 위장재킷 등의 군복을 입고 저항운동을 하면서 군복 스타일이 젊은이들에게 유행했다.

특히 카키색의 의상과 ‘US ARMY’ 로고가 새겨진 셔츠나 모자, ‘체 게베라’가 입었던 군복 스타일과 베레모가 인기를 얻었다. 대학생들은 커다란 코트, 위장재킷, 군복 바지나 셔츠를 싸게 사서 착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군복 스타일은 청바지와 잘 어울렸고, 시간이 지나 낡아도 멋지게 입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소재와 액세서리로 다양한 연출이 가능한 밀리터리 룩

밀리터리 룩의 스타일은 직선적이고 기능적이며 활동적이다. 장식도 겉에 달려 있는 패치 포켓(Patch pocket), 주름이 잡힌 아코디언 포켓(Accordion pocket) 등을 사용하여 기능성을 준다. 어깨에 부착된 고리장식과 허리 옆선에 달린 사이즈 조절용 여밈 고리도 기능성을 생각한 장식이다.

액세서리로 개버딘 소재의 커다란 가방과 철 조각이 펀칭된 벨트, 금속 단추, 군화 스타일을 활용한다. 장식용으로 견장이나 자수된 심벌마크를 달거나 군용 목걸이를 해도 좋다. 색은 단연 카키 계열. 무늬는 원래 전쟁터에서 적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모자와 의복 등에 프린트한 위장용 카무플라주 프린트(Camouflage print)를 사용한다.

남성적인 군복 스타일을 멋스럽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소재의 선택이 중요하다. 광택 있는 소재의 카키색 재킷이나 스커트는 군복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여성스럽고 섹시하게 연출할 수 있다. 또 짧고 작은 사이즈를 몸에 딱 맞게 입으면 여성미를 강조할 수 있다.

거칠고 강한 느낌을 원한다면 아웃포켓이 많은 디자인이나 지퍼 디자인 등 디테일이 많은 스타일을 권한다. 군복스타일이 부담스럽다면 소품으로 센스를 발휘한다. 카무플라주 프린트의 티셔츠나 굵은 벨트, 가방을 코디하면 된다.

밀리터리 룩을 가장 쉽게 매치할 수 있는 캐주얼 스타일에는 진 소재가 잘 어울린다. 군복 느낌의 재킷이나 티셔츠에 청바지나 짧은 청치마를 입고 카키색 벨트를 매면 훌륭한 밀리터리 룩이 완성된다.


전쟁은 여성을 해방시켰다?

밀리터리 룩을 여성들이 착용하게 된 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로, 400년동안 착용하던 코르셋에서 해방되는 계기가 됐다. 1,2차 세계대전 기간에 여성의 사회 참여 및 지위 향상에 대한 표현으로 여성복의 패션에 남성복의 형태가 도입되었다.

여기서 밀리터리 룩이 등장했다. 군복을 응용해, 벨트로 여미는 엉덩이를 가리는 긴 재킷과 발목에서 15㎝ 정도 올라간 스커트를 입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공습에 대비해서 상ㆍ하의가 붙어 있는 올 인원 보일러 슈트 바지를 입었는데 이 때문에 사이렌 슈트라고도 불렸다. 전쟁기간 동안 여성들은 부족한 물자 탓에 담요를 염색하여 코트로 만들었고, 낙하산 실크를 언더웨어나 이브닝웨어로, 그물커튼이나 표백하지 않은 아이보리색 면을 웨딩 드레스로 변신시키며 강인하게 살아 남았다.

2차 대전의 복식은 남성적 분위기가 가장 많이 표현된 시대. 장식성이 없어지고 어깨가 각지고 넓어졌다. 여성들은 남성적인 테일러드 슈트를 택했고 바지가 일상화되었다. 각지고 넓은 어깨는 거의 모든 의상에 사용되어 슈트나 코트 뿐 아니라 속옷, 블라우스, 드레스까지도 어깨 패드를 사용하였다.

1,2차 대전 기간 동안의 밀리터리 룩은 전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사회진출과 여권신장을 표현하는 저항 패션으로 착용되었다. 군복이 갖는 실용성과 함께 남녀의 성 차이를 드러나지 않게 하거나, 남성과 똑같이 입음으로써 여성의 능력을 표현했다.

여성의 권리주장이 강해지면서 남녀가 같은 복식 스타일로 착용하게 된 트렌치 코트, 사파리룩 등은 밀리터리 룩에서 유래된 유니섹스 웨어로 여권신장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밖으로 뻗어나간 남성들의 권력 싸움 중에 여성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은 것이다.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3/02/2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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