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Suki Kim의 ‘북한의 2월’

올해 북한의 2월은 어떠했을까. 워싱턴, 평양, 서울이 북한 핵 문제로 소용돌이 칠 때 Suki Kim이라는 재미 여성 작가가 뉴욕에서 자신의 첫 소설인 ‘통역자’(Interpreter)를 냈다.

작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6갑(회갑의 북한말)을 맞았을 때 Suki Kim은 동부지역 친북단체인 조미 화해 협회 대표의 한 사람으로 평양에 갔다. “‘21세기의 태양’을 뵈러 간다”는 게 목적이었다. 작년 2월 11일 평양에 도착해 머물다가 2월 19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영종도 위에 펼쳐진 거대한 공항에서 비로소 그녀는 ‘21세기’에 다시 돌아왔다고 느꼈다.

Suki Kim은 뉴욕의 지식인이 즐겨 읽는 ‘뉴욕 리뷰 오브 북’ 2월 13일자에 ‘북한의 한 방문’을 기고했다. 그녀는 2002년 2월에서 2003년 2월까지 벌어졌던 그녀 자신과 북한과의 사이에 생긴 ‘설움’과 ‘울음’에 대해 ‘통역’하고 해석했다. 기고문을 낼 때는 이미 ‘통역자’가 소설로 나왔다.

책을 낸 파라 스트라우스사의 평에 의하면 “아메리칸 드림의 어두운 면을 그린 충격적 첫 소설. 이 소설은 29세의 뉴욕 법원 한국인 공식 통역원인 수지 박이라는 여주인공이 재판 과정에서 5년 전에 청과물 가게를 하다 피살된 부모의 사인을 밝혀 내는 것이지만 작가는 이 사건을 추리소설 이상으로 표현했다”고 평했다.

“이 소설은 수지 박 부모의 사인을 단순 강도살인사건이 아니고 한국계 폭력조직의 음모였으며 지하세계 정치의 희생물이 였다는 것을 밝혀내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아시아계 미국인의 전형(典型)인 한국인 ‘통역자’를 등장시켜 옛 세계(한국, 동양)와 새 세계(이민 온 미국), 가난과 특권, 서툰 언어와 새문명의 이해와 충돌을 아우르는 참신한 전달이다”고 축약했다.

흰 윗옷에 검은 스커트, 검은 가죽구두에 단발머리를 한 70년대 한국의 여고생 모습이 표지로 나온 ‘통역자’. 한국에서 태어나 13세에 미국에 와 뉴욕 명문 버나드 대학을 나온 Suki Kim은 이민 1.5세대의 내면의 세계를 잘 ‘통역’해 냈다고 뉴욕타임스는 평했다.

Suki Kim은 기고문 ‘북한의 한 방문’에서 북한을 찾게 된 것은 “38선이 왜 내 아들을 못 찾게 하나”며 한(恨)속에 죽은 외할머니의 넋을 느껴보기 위한 것이었음을 내 비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나자 그녀의 외할머니 윤씨는 그때 17살인 큰아들(윤남중ㆍ살아있다면 68세), 네살배기 딸(Suki Kim의 어머니)등과 함께 서울역에서 피난 열차를 탔다. 차 안은 꽉 찼고 곳곳에서 아우성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일어나요. 노인과 애들에게 자리를 주어야지.”

‘큰아들’은 자리를 내주고 “다음차로 뒤따르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점쟁이에 의하면 “북한 평양 근처에 살아있는 혼이 맴돈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할머니는 그때부터 ‘38선의 한’속에 살다가 아들과 헤어진 지 27년이 넘어 미국에서 돌아가셨다.

Suki Kim과 함께 간 일행 중 북한에서 남으로 왔다가 미국에서 친북 활동을 한 이들은 “북한이 고향이요, 조국”이라 했다. 이런 이들에게는 고려호텔에서 개별상봉이 있었다. 눈물의 상봉을 보며 Suki Kim은 설움에 빠졌다.

“외삼촌이 나타난다면 나는 무어라 할 것인가. 할머니는 27년 전에 돌아가셨는데.외삼촌과 나는 고향이나 어머니의 일생에 대해 아무런 연계도 없고 그가 겪은 상실의 슬픔은 나의 것이 아닌데.” Suki Kim은 그 동안 본 북한과 ‘21세기 태양’이란 얼굴을 볼 수 없는 김 위원장과 그 체제를 ‘통역’해내며 후회하기 시작했다.

2월 16일 저녁. 북한의 해외문화협력위원회가 마련한 경축 만찬에는 호주 독일 등지에서 온 동포들이 함께 자리했다. 독일에서 온 한 중년 동포는 ‘대전 부르스’를 ‘광주’로 바꿔 불렀다. “내 고향은 영원히 광주입니다. 동무들 내 고향 광주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자신이 노래를 부를 차례가 되자 Suki Kim은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땀에 흠뻑 젖어 불렀다. “나는 이 노래를 부르며 민주주의 통일의 이름 아래 죽어 간 한국 학생들을 생각했다.”

그러나 ‘아침이슬’이 끝난 후 북한의 노동당 간부들은 그들끼리 그들만의 노래를 합창했다. “그들은 ‘동무들’을 부르며 그들이 애국자임을 믿고 있는 듯 했다. 그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남과 북을 통일하는 것을 위해 살고 있음을 믿는 듯 했고, 그리고 행복한 듯 보였다.”

다만 평양을 떠나면서 Suki Kim은 버스 창 밖을 지나는 어두운 표정의 인민들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나왔다. “창문을 열고 무어라 이야기하면 대답을 할까” 생각했지만 그들은 고개를 돌릴 것 같았다. “차창 두께보다 더한 간격이 나와 그들 사이에 있다”고 생각하니 설움이 더했다.

Suki Kim이 느끼기에는 북한의 모든 조직체제는 미국에 대한 증오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1년 후인 2003년 61회 ‘2.16’을 평양에서 본 영국 가디언지 조나만 와츠 특파원도 평양에는 ‘미국제국주의자에 대한 저주’가 가득 했다고 보도했다.

Suki Kim은 결론 내리고 있다. “북한의 2월은 겨울인데도 그들은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이 있기에 ‘2월은 봄이다’라는 노래를 부른다. 그 곳은 김정일화(花)가 피어나는, 21세기와는 먼 나라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3/03/0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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