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남성본위의 세상에 반기를 든 혁명적 삶


■ 세상을 뒤바꾼 열정
자넷 토드 지음/서미석 옮김/한길사 펴냄

1789년 일어난 프랑스대혁명은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며, 자유롭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인간’은 남성만을 가리켰다. 비합리적인 세속적 질서를 타파하고자 한 이 시대에도 여성은 여전히 미개한 존재였던 것이다.

바로 이 때 여성도 ‘인간’임을 주장한 이가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다. 그녀는 페미니즘의 성서로 일컬어지는 저서 ‘여성의 권리 옹호’를 1792년에 발표하면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존재임을 주장했다.

페미니즘 운동이 시대를 움직이는 한 원동력으로 자리잡은 오늘날에도 페미니스트라면 색안경을 쓰고 보는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당시의 이 같은 주장은 말 그대로 파격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념을 고취했던 장 자크 루소조차도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것은 자연법에 속하는 일이며, 여성이란 남성에게 순종하도록 교육되는 것으로 족하다”고 주장할 정도였으니 그녀가 얼마나 용감했는 지는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녀는 남성 본위의 여성관을 바로 잡으려 애썼다. 또 그러한 여성관이 여성들 자신에게 내재화 되어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여성을 비하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나약한 존재로 인정하고 굴복하는 여성들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세상을 뒤바꾼 열정’은 바로 최초이자 가장 위대한 페미니스트인 울스턴크래프트의 평전이다. 울스턴크래프트는 175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폭군처럼 군림하는 아버지와 노예처럼 복종하는 어머니, 남자 형제들과 자신에 대한 차별 대우 는 일찌감치 그녀의 인생 행로를 결정했다. 열 아홉살이 되면서 집을 나와 귀부인의 말동무, 가정교사 등을 하면서 독립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

독학으로 쌓은 지식으로 당대의 지성들과 교류했고, 세 남자를 만나 사랑을 했다. 사생아를 낳았으며, 또 그 중 한 남자와는 결혼까지 했다. 사랑에 배신을 당해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었으며, 둘째딸 출산 후 산욕열에 걸려 3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은 그녀가 남긴 편지들을 통해 파란만장했던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그녀의 삶은 그 자체가 혁명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자신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언제나 원칙에 따르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철저하게 살고 싶어했다.

그녀의 삶의 궤적을 밟아가다 보면 우리가 당연히 가질법한 기대, 즉 열성적인 투사, 한 치의 어긋남도 허용치 않는 여성옹호론자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감정적 혼란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다가도 한없이 감상적이기도 했으며 자기 부정과 긍정의 양 극단을 끊임없이 오갔다. 그 완벽하지 못한 모습에서 우리는 투사 울스턴크래프트보다는 번민했던 한 인간 울스턴크래프트를 보게 된다.

입력시간 2003/03/0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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