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손보기] '사법'에 걸린 SK…무사할까?

최태원 회장 전격 사법처리, 창사 이래 최대 위기

올해 4월로 창립 50주년을 맞는 SK는 대대적으로 준비해온 창립 행사를 갑작스럽게 축소했다. 검찰이 SK그룹에 대해 전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한 2월18일 SK텔레콤, SK㈜, SK 글로벌 등 계열사 주가는 푸른 빛으로 물들며 급락했다.

SK㈜는 전날보다 1,400원(9.40%)이나 떨어진 1만3,500원이었고, SK증권(마이너스8.52%), SK글로벌(//2.02%), SKC(//2.92%), SK텔레콤(//2.84%) 등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SK, 심리적 공황까지

1953년 창사 이래 대부분 주가가 푸른 빛으로 바뀔 만큼 최대의 위기다.

재계 서열 3위 SK 그룹이 잇단 악재와 봉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동 전화 식별 번호가 010으로 통합됨에 따라 수년간 공들여온 011 브랜드 파워가 한 순간에 힘을 잃게 된 것은 그 전초였다. 결정타는 검찰 압수 수색에 이은 최태원 SK㈜ 회장에 대한 전격적인 사법 처리다. 그룹의 위상마저 와해될 위기에 처한 것은 이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검찰 압수 수사는 그룹 수장인 손길승 회장이 제28대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지 불과 열흘 만에 터졌다. 그룹 살림을 챙기는 데 좀더 힘을 쏟아야 할 최 회장은 출국 금지에 이어 수사착수 5일 만에 검찰 출두 후 사법처리의 길을 밟아야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검찰 수사와는 별도로 SK증권 증자와 관련해 법 위반 여부가 드러나면 과징금 부과와 검찰 고발, 시정명령 등 조치를 취할 방침이어서 SK그룹 관계자들은 아예 심리적 공황 상태다. 재계 일각에서는 SK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로 내몰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1995년 고 최종현 SK 회장이 전경련 회장으로서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했다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은 지 근 10년만의 일이다.

특히 올해는 SK 그룹 창사 50주년을 맞는 해로 다음 반세기를 준비해 야 할 중대한 시기라는 점에서 그룹 관계자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SK 그룹은 외환 위기 이후 탄탄한 구조 조정을 발판으로 ‘공기업 사냥꾼’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지난해 KT 민영화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온라인 포털 업체인 라이코스, 팍스넷, 세계 물산을 인수하는 등 사업 영역을 확대해 왔다. SK는 과거 유공(현 SK(주))과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등 굵직한 공기업을 인수하면서 승승장구 해왔다.

그러나 검찰이 오너인 최태원 회장을 喚?사법처리 한데 이어 수사범위를 SK 주요 계열사로 확대한 터라, 비자금 조성 여부에 대해서까지 불똥이 튈 지 몰라 그룹 전체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고 경영진에 대해 검찰이 속전 속결로 사법 처리함에 따라, 1998년 고 최종현 회장 이후 그룹 경영권을 자연스럽게 장악해 온 최 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논란은 물론 지배 구조에 대한 변화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회장이 왕성한 대외 활동을 해오며 경영 전면으로 부상했는데 덜컥 사법처리 된 것은 향후 경영권 장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감을 표명했다. SK관계자는 “회사운영은 이미 계열사별로 대표 이사들의 책임아래 이뤄지고 있어 별 문제가 없다”며 “경영권과 관련해서는 수사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잇따른 악재속의 분투

올들어 SK그룹은 한전 발전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의 입찰 참여를 추진해오고 있으며 가스공사의 민영화 참여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기존 카드사 지분 인수 등을 통해 신용카드 사업에도 진출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사실 지난해만 해도 SK그룹은 KT 최대주주 부상과 두루넷 전용회선망 인수 등 빠른 속도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재계의 부러움을 샀고 자금 동원력과 인수ㆍ합병(M&A) 능력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자산 규모 52조원, 총매출 54조원, 세전 이익 3조6,000억원(2002년 말 기준)의 탄탄한 그룹 외형에다 손길승 회장이 전경련 회장에 오름으로써 쌍두마차 체제를 유지해 온 최 회장으로서는 경영 전면에 나설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됐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검찰의 수사로 최 회장이 사법 처리 됨으로써 SK의 앞날에 큰 암운이 닥쳤다. 그의 사법 처리에 따라 공격 경영의 기조에 변화가 불가피 할 수 밖에 없도록 된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SK그룹의 신규 사업은 공기업 민영화와 관련되거나 정부승인을 받아야 하는 성격인데 예전처럼 공격적인 사업추진이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다 최근 그룹 기반을 흔드는 악재가 연이어 터져 나옴으로써 SK로서는 설상가상이다. 지난달 SK텔레콤은 ‘010번호 조기 도입’과 ‘번호이동성 시차도입’이라는 악재에 직면하고 있다. 손길승 회장의 전경련 회장 취임에 이은 최회장의 사법처리는 그룹 구조조정본부의 컨트롤 타워기능을 마비시킬 만큼 충격적인 사건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SK 관계자는 “그룹 재무구조가 탄탄한 데다 각 계열사가 중심이 돼 사업을 해오고 있어 기존 추진하던 사업방향에 커다란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김창근 그룹 구조조정 본부장겸 SK㈜ 사장이 경영일선에 나서고 최 회장 가족 중 사촌동생 최창원 SK글로벌 부사장과 친동생인 최재원 SK 텔레콤 부사장 등이 경영에 적극 참여하는 등 비상경영 체제로 운영할 가능성이 크다”고 귀뜸했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2003/03/03 15:45


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