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민영교도소, 장밋빛 만일까?

대학 기숙사 수준의 환겨, 영리추구·민간 인권유린 등 우려

“1985년 인천교도소. 거구인 한 교도관이 재소자들을 불러 모아 기합을 주면서 모두에게 입을 벌리게 하고 가래침을 입안에 뱉었다. (이 교도관은) 재래식 화장실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얼굴을 처박게 했다.” 30개월간의 신출귀몰하는 도주 행각 끝에 99년7월 검거된 부산교도소 탈주범 신창원이 일기장에서 거침 없이 고발했던 교도소의 인권 유린 실태다. 반인륜적인 교도 행정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사건이었다.

신창원 일기장의 배경이 됐던 시점으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난 2005년. 경기 여주에 국내 최초로 민영 교도소가 들어선다. 해가 갈수록 수형자들이 늘어나면서 1명당 0.75평의 공간 조차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 하지만 쪼들리는 예산 때문에 마땅히 손을 쓸 수 없었던 상황을 타개해보자는 취지다.

첫 민영 교도소 위탁운영 주체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만든 재단법인 아가페가 선정됐다.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민영 교도소에는 형기 7년 이하, 전과 2범 이하, 잔여 형기 1년 이상 등의 조건을 만족하는 남성 수형자 중에서 법무부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선발한 이들이 수감될 예정이다.

민영 교도소가 세인의 기대를 모으는 것은 단순히 교도소의 운영 주체가 정부에서 민간으로 이양된다는 표면적인 데 있지 않다. 숱한 공기업 민영화 사례에서 보아왔듯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자율과 경쟁을 보장할 수 있을 거라는, 무엇보다 탄력적인 교화 프로그램을 통해 교도소가 ‘인권 사각지대’의 오명을 벗어버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다.

과연 민영 교도소는 인권 보호의 울타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아가페측이 밝히는 장밋빛 구상을 토대로 민영 교도소의 생활을 먼저 들여다보자.


미리 가 본 민영 교도소

2006년 봄, 경기 여주에 막 문을 연 민영 교도소. 3만여평의 부지에는 재소자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현대식 사동과 교육동, 그리고 정원과 운동장이 펼쳐져 있다. 사기 등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1년6개월을 복역한 뒤 2개월 전 이곳으로 이감된 홍00씨. 너무나 달라진 생활 환경에 “이곳이 교도소인지 대학 기숙사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다.

홍씨의 생활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사방(교도소 방). 10평 남짓한 공간에 열댓명이 북적대야 했던 것과 달리 이곳 5인실의 사방은 재소자 1명에게 1평이 넘는 공간을 제공한다.

수치심까지 불러 일으켰던 사방 내 화장실은 세면까지 할 수 있는 현대식 욕실로 바뀌었다. 방마다 TV가 설치된 것은 물론이다. 사동 가운데는 기숙사 휴게실을 본 따 각종 편의 시설이 갖춰진 거실이 마련돼 있어 비교적 자유롭게 동료 재소자들과 어울릴 수도 있다.

사방에서 배급을 받아 옹기종기 모여 메마른 밥을 삼켜야 했던 식사 환경도 몰라 보게 달라졌다. 1,2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식당에서 영양사와 자원 봉사자들이 끼니마다 달리 내놓는 식사는 웬만한 기업의 구내 식당을 능가한다.

홍씨가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생활 프로그램’이 마련된 저녁 시간. 이전 교도소에서는 오후 4시, 늦어도 6시쯤이면 폐방이 돼 방 밖을 나갈 수 없었지만, 이곳에서의 저녁 생활은 자기 계발을 위한 더 없는 기회다. 1,000명에 달하는 전문가 자원 봉사자들이 어학이나 직업 훈련 등 각종 교육을 해주고 사진 촬영, 악기 연주 등 취미 교습도 해준다. 재소자들이 스스로 취사 선택할 수 있는 프로그램만 30여개. 홍씨는 요즘 중국어 공부에 여념이 없다.

홍씨를 더욱 감동시키는 것은 재소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다. 하늘색 등 단색으로 통일됐던 죄수복은 서울 시내 도심 거리를 활보해도 전혀 어색할 것 같지 않은 생활 복장으로 바뀌었고, 왼쪽 가슴에는 죄수 번호와 함께 ‘홍OO’ 이름 석자가 함께 박혀있다.

‘1234’라는 숫자로만 불려야 했던 그는 이제 ‘1234 홍OO’로 이름을 되찾았다. 잔여 형기가 5년 이상인 이들에게만 허용됐던 ‘부부 접견’이나 ‘가족 접견’도 모든 재소자들에게 개방됐다.

콘도미니엄 형태로 지어진 건물에서 며칠 전 접견을 온 아내와 함께 음식도 만들어 먹고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재소자들로 구성된 자치회 활동도 활발하다. 취침 시간을 몇 시로 할 지, 일반 면회 시간에 교도관의 배석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등이 모두 교도소측과 자치회측의 협의로 결정된다. 이쯤 되면 조금 과장해서 ‘꿈의 교도소’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민영 교도소 운영은 봉사 차원”

아가페측은 민영 교도소를 짓는데 400억원 가량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향후 교도소 운영에 필요한 경비만, 그것도 기존 교정시설 예산의 90% 수준인 연간 45억~50억원 정도만 지원하기 때문에 순전히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하는 금액이다.

수형자들이 작업을 통해 번 교정 수입도 국고에 모두 환수되는 탓에 별도의 수입도 기대할 수 없는 터다. 그렇다면 아가페측은 이처럼 막대한 자금을 들여가며 왜 민영 교도소 사업에 뛰어든 것일까.

아가페 이상진 목사(행정실장)의 말은 확고하다. “기독교인들을 포함해 종교인들이 사회를 위해 봉사를 한다는 것 외에 반대 급부는 없습니다.” 400억원의 자금도 범 기독교인들의 헌금으로 조성된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법무부 교정기획단 유병철 사무관은 “종교 단체가 교도소를 운영하는 데 따른 이득은 단순히 주판알을 튕겨 나오는 것이 아니다“며 “일종의 사회 봉사 활동을 통해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부대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인권 단체, “민영 교도소 추진 중단”

하지만 역풍도 거세다. 역풍의 진원지는 인권 단체들이다. 교도소 인권 문제 개선에 톡톡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되는 민영 교도소에 대해 인권 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니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이들이 던지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은 ‘과연 국가가 국민들에 대한 형벌 집행권을 민간에 이양해도 좋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느냐’ 이다.

“수형자들은 재소 기간 교도관들로부터 종종 징벌을 받습니다. 교도소 내에서 또 한번 형벌이 가해지는 격이죠. 과연 이런 형벌을 민간이 민간에게 가해도 좋은가 하는 문제에 부딪힙니다.”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유해정씨는 정부의 민영 교도소 설립 추진 방침에 조목조목 문제를 제기한다.

유씨는 “특히 교도관들의 평점에 의해 결정되는 가석방이나 사면 등의 조치가 더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공무원도 아닌 민간 교도원들이 매긴 점수에 의해 형기가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을 누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종교 단체에 의해 교도소가 운영되면서 신앙 여부에 따라 평점과 처우가 달라지는 등 선교 활동을 위한 도구로 이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민간에 의한 인권 유린 우려

민영 교도소에서 오히려 더 심각한 인권 유린이 자행될 수 있다는 것도 인권 단체들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최근 성명을 통해 “역사적으로 권력이 집중되고 외부의 통제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거의 예외 없이 권력이 남용되고 인권 침해가 발생해 왔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형제복지원이나 양지마을 등 민간 사회복지시설에서 인권 침해 사례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미국, 호주 등 전 세계 180여개에 달하는 민영 교도소에서도 체벌과 폭력 등 인권 유린 실태는 끊임없이 보고되고 있다.

모의 감옥 속의 인간을 소재로 한 독일 영화 ‘엑스페리먼트’(Das Experiment)는 ‘민간에 의한 민간의 통제’가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 연구소가 2주일 간의 모의 감옥 실험에 참가할 사람들을 모집한다. 4,000마르크(240여만원)라는 적지 않은 돈을 받고 감옥에 가고 싶어하는 자원자 20명이 모여든다.

이들은 연구소 곳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 앞에서 8명의 간수와 12명의 죄수로 각각의 역할을 부여 받았다. 첫날은 그냥 장난처럼 살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완장’과 ‘죄수복’의 노예가 된다. 간수들은 복종하지 않는 죄수들을 통제하고, 권위주의를 앞세운 폭력으로 죄수를 다스린다. 견딜 수 없는 모멸감과 인권 유린에 시달리는 ‘죄수 아닌 죄수’들은 저항하거나 혹은 자포자기한다.


“무차별적인 확산은 막아야”

정부는 이 같은 인권 단체들의 지적을 ‘기우’라고 일축한다. 정부 역시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검토 끝에 이를 해소할 만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맞선다.

법무부 유병철 사무관은 “우선 민영 교도소에 7명의 인력을 파견해 교도관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리하고 감독하게 된다”며 “특히 재소자에 대한 징벌 부과 등 인권과 관련한 사안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려면 감독관의 승인을 얻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 수형자들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들이 작업을 통해 벌어들인 교정 수입은 전액 국고에 환수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공식 입장과 달리 정부 내에서도 민영 교도소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천주교 단체, 불교 단체 등 다른 종교 단체들과 사설 경비업체 등 일부 민간 기업들까지 민영 교도소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민영 교도소의 무차별적인 확산은 막아야 한다는 경계심도 확산되고 있다.

법무부 한 관계자는 “예산 부족 탓에 어쩔 수 없이 1곳의 민영 교도소 설립을 허용했지만 우후죽순격 설립은 막아야 한다”며 “정부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경우 교도소가 선교나 영리 추구의 도구로 전락해 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2003/03/04 10:41


이영태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