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크族 지갑을 열어라

맞벌이 부부의 소비지향적 생활패턴에 맞춘 마케팅

맞벌이 부부 최광희(여ㆍ34)씨는 인터넷 홈쇼핑 마니아다. 두 딸을 위한 육아용품에서 화장품, 식료품까지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주문을 한다. 하루종일 회사 업무에 시달리다 허겁지겁 시댁에 맡긴 아이를 데려와야 하는 최씨에게 시장에 나가 직접 장을 보는 일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는 인터넷을 통해 세탁기와 전자레인지를 새로 구입했다. 4년 전 이사를 하면서 장만한 제품들이 아직 쓸만했지만, 시간을 절약해 준다는 멀티 기능의 제품들로 교체했다. 주말마다 산처럼 쌓이는 빨래를 탈수에서 건조까지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세탁기와 10여 분만에 초고속으로 간편하게 밥을 지을 수 있는 전자레인지다.

세탁기를 구입하는 비용만도 100만원이 넘게 들어갔다. 결코 만만치 않은 비용이지만 가사 일에 들어가는 시간을 절약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에 투자한다면 오히려 ‘남는 장사’라는 생각에 즐겁게 지갑을 열었다.

공무원 박모(여ㆍ31)씨는 얼마 전 6개월 둔 아들을 위해 유모차를 샀다. 일반 국내 제품들보다 10만 원 이상 비싼 30만 원대 고급형 수입용품이다. 박씨는 “자녀들을 키우는 엄마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모임에서 고급형 유모차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용품만큼은 최고로 해주고 싶은 마음에 망설임 없이 구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시간절약형 상품으로 유혹

경기가 곤두박질 치고 있는 가운데 왕성한 소비 성향을 보이는 듀크족이 늘고 있다. 듀크족(DEUK:dual employed with kids)은 어린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 경제력은 있지만 가정생활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들은 시간절약형 상품과 자녀를 위한 상품 구입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업체들이 경기 침체를 뚫는 마케팅의 일환으로 듀크족에 뜨거운 ‘러브 콜’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육아나 가전용품에 한정됐던 듀크족 마케팅 붐은 최근 생활 서비스 전반으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최근 불 붙은 듀크족 마케팅의 진원지는 인터넷 홈쇼핑몰. 듀크족이 대부분 20대 후반~30대 초반의 ‘턱걸이 30대’들로 인터넷 사용에 익숙해 시간과 노력이 절약되는 ‘홈쇼핑’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CJ홈쇼핑이 운영하는 CJ몰(www.cjmall.com)은 1월부터 30대 맞벌이 부부를 위한 ‘프리미엄 숍’을 열고 듀크족 공략에 나섰다. 우수 고객에 대한 구매 성향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이 브랜드와 명품에 대한 욕구가 강한 30대 초ㆍ중반 맞벌이 부부였다는 데 착안, 별도의 전문 매장을 기획한 것. 여기에는 파브, 지펠, MCM, 설화수 등 유명 브랜드 상품만을 판매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요즘 인터넷 홈쇼핑 업체들 사이에는 듀크족의 최대 관심사인 유아 교육용 컨텐츠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 포털사이트 코리아닷컴은 최근 유아 전문 쇼핑몰과 연계해 ‘어린이 키즈’(kids.korea.com) 서비스를 개시했다. 어린이 교육용 프로그램과 유아 쇼핑몰을 연결시켜 시너지 효과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어린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친숙한 곰 캐릭터인 ‘빅 베어’를 등장시켜 호응을 얻어가는 중이다.


‘1등엄마’ 욕구 이용한 판촉전략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interpark.co.kr)는 올해 들어 유아쇼핑몰 ‘키즈파크’의 캐치프라이즈를 ‘1등 엄마의 쇼핑’으로 내걸고 유명 수입완구의 브랜드 상품을 다양하게 구비했다. 유모차의 ‘벤츠’라 불리는 ‘조깅스트롤러’ 유모차가 30만원 대를 호가하는 데도 입소문이 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또 10만~30만원대의 고급 수제 인형과 플레이모빌도 젊은 엄마들이 선호하는 상품이다.

이 회사 이현정 홍보팀장은 “듀크족은 한 가정에 1~2명의 자녀를 두고 있어 자신의 아이만큼은 1등으로 키우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다”며 “명품 수입완구들이 일부 상류층을 중심으로만 팔리는 것이 아니라, 맞벌이 부부 계층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자녀 보육 문제에 대한 듀크족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부모 대신 자녀들을 돌봐주는 새로운 사업 모델도 등장했다.

어린이 도서 방문 대여 기업인 ㈜아이북랜드는 최근 맞벌이 가정의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대상으로 방과 후 부모의 퇴근 시간까지 어린이의 모든 생활을 돌봐주는 프로그램인 ‘맹자엄마(www.mjmom.com)’를 새롭게 선보였다.

맹자엄마는 아이들의 학습지도 뿐 아니라, 실제로 엄마가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듯이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준비물을 챙겨주며, 학원을 보내고 간식을 마련해 주는 프로그램이 특징이다.

맹자엄마 영등포지점 곽은주 교사는 “교육지도는 물론 엄마 같은 보살핌으로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을 돕는다”고 말했다. 1인당 회비가 월 20만원(방학일 경우 28만원)이지만, 유치원이나 놀이방에 맡길 수도 없는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근무시간 내내 마음을 졸여야 하는 부모들이 이용하기에는 딱 좋다.


멀티기능 갖춘 아이디러 상품 봇물

가전업체들도 빠르고 편리한 것은 물론 멀티기능까지 갖춘 아이디어 상품으로 듀크족의 마음을 파고 들고 있다. 집안 일로 보내야만 했던 시간들을 아껴 가족과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한다는 게 마케팅 테마다.

바쁜 아침 시간에 간단히 요리를 데울 수 있는 전자레인지는 직장을 가진 주부들에게 요긴한 상품. 삼성전자의 인버터 전자레인지 ‘공기밥(32만 5,000원)’을 이용하면 전용 밥 그릇을 이용해 15분만에 밥을 지을 수 있다.

또 잡곡밥과 쌀밥 등 두 종류의 밥을 동시에 취사할 수 있어 편리하다. LG의 ‘토스트 겸용 전자레인지(17만 2,000원)’와 삼성의 ‘토스트 플러스 전자레인지(27만 2,000원)’도 눈길을 끄는 제품. 토스트 플러스 전자레인지는 토스트와 계란 후라이를 따로 할 필요가 없고 빵을 구우면서 다른 요리도 가능하다.

㈜남양키친플라워가 최근 출시한 전기 생선구이기(13만 9,000원)는 뒤집지 않고도 생선을 노릇노릇하게 구워낼 수 있는 기능성 제품이다. 짧은 시간 안에 물을 끓여주는 전자 주전자(5만~7만원대)나 스팀 기능이 있어 분무기를 따로 쓸 필요가 없는 다리미(5만~6만원대)도 맞벌이 주부를 위한 편리한 상품이다.

아무리 좋은 주방용품이 있어도 활용이 어려운 맞벌이 부부들 사이에는 식사 배달 서비스가 인기다. 출근길에 편의점이나 테이크아웃 전문점에 들르기도 귀찮아 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명가아침’(www.myungga.net)은 서울과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매일 아침 간단한 국을 곁들인 주먹밥이나 죽 등을 고객의 집이나 사무실로 배달한다. 1인분 20일 배달에 5만 6,000원. 한 달 단위로 매일 식단이 바뀐다. 조미료나 방부제를 일체 사용하지 않아 건강을 중시하는 사람들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지난해 8월 본격 영업을 시작한 이 회사의 현재 회원은 2,500여 명 정도. 노일호 사장은 “대도시 아파트 단지의 맞벌이 부부들이 주 고객”이라며 “식사를 주문하는 고객들은 물론 프랜차이즈 사업에 대한 문의도 끊이질 않는다”고 말했다.


“아직도 아침을 해 먹나?”

‘CJ푸드시스템(www.e-cjfood.com)’은 냉이된장국 달래전, 가자미 구이, 과일샐러드 등 가장 다양한 식단을 자랑한다. 아침과 저녁의 식단(2인분 기준 3,500~1만원 선)은 물론, 당뇨 환자를 위한 ‘당뇨 식단’, 집안 잔치 등 특별한 날을 위한 ‘스페셜 식단’도 구비해뒀다.

‘조찬(www.jochan.net)’은 김밥과 샌드위치를 기본으로 빵과 밥을 번갈아 배달해줘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다. 주 5일 배달되며 1인분에 1,700원이다.

싱싱한 과일을 매일 아침 배달해 주는 사이트도 있다. ‘아침과일(www.fruitime.com)’은 지난해 10월 서비스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서울과 경기권에 50개 가맹점, 5,0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다. 월 20회 기준으로 양과 종류에 따라 3만5,000~5만8,000원까지 과일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다이어트를 하거나 아침에 밥을 먹기가 부담스러운 이들이 많이 찾는다. 당일 수확한 야채를 12시간 이내에 깨끗이 샐러드용으로 다듬어 배달해주는 ‘모닝샐러드(www.moringsalad.com)’와 아기 이유식만을 전문으로 하는 ‘아기밥(www.agibob.co.kr)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순화 수석 연구원은 “듀크족 마케팅은 상대적으로 경제력은 있고 시간은 없어 많은 서비스가 필요한 맞벌이 부부의 특성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며 “저축보다는 소비 지향적인 이들 세대의 생활 패턴과 맞물려 갈수록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듀크족이란?
   

‘듀크족’은 미국의 경제 호황기인 1990년대에 생긴 신조어. 1~2명의 자녀를 가진 맞벌이 봉급생활자 부부를 일컫는 말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듀크족은 현재 300여 만 가구(2001년 기혼여성 경제활동 인구 705만 4,000명, 임금 근로자 61.5% 반영)에 달한다.

최근 무자녀 부부가 늘어나고 있지만, 자녀 출산을 당연시하는 우리 사회의 풍토상 “둘이 벌어 아이 없이 풍족하게 산다”는 ‘딩크족(DINK: double income no kids)’은 아직 듀크족만큼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듀크족은 안정된 경제력과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 수준, 그리고 적극적인 사회ㆍ정치 활동으로 사회 변화의 핵심 세력으로 떠올랐다. 경실련과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간부들의 80% 이상이 듀크족이라고 한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2003/03/04 11:11


배현정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