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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즐겁다] 예산 추사고택

선비정신의 기품이 서린 양반가옥

우리네 할머니들은 아기 돌상에 무명실과 붓을 놓고 아이에게 이르기를 ‘명은 길어 실같고, 붓을 잡으면 추사를 닮아라’고 했다. 초등학교 문턱도 넘어보지 못해 낫 놓고 ‘ㄱ’ 자도 모르는 할머니들의 입에서도 ‘추사를 닮아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면 그의 학식과 올곧은 선비정신을 더 말해 무엇할까.

조선말기 최고의 석학 추사 김정희(1786~1856). 그는 1786년 예산군 신암면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성리학이 서서히 몰락하고, 봉건사회는 속으로부터 허물어져 가던 때다. 그의 집안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세도 집안으로 대대로 높은 벼슬에 올랐고, 가문의 일거수일투족이 조정의 관심사에 오를 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조선시대 최고의 석학 추사

추사는 어릴 적부터 총기가 남달라 여섯 살 때 이미 글씨로 유명했다. 당시 북학파의 대가였던 박제가는 추사의 천재적인 모습에 감동해 어린 나이인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추사는 서른 살이 되던 해 문과에 급제해 암행어사, 예조참의, 병조판서, 성균관 대사성 등 관직을 두루 거쳤다.

그러나 추사는 1840년 당파싸움에 휘말려 제주도에서 9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고, 귀양살이에서 돌아온 지 두 해 만에 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를 갔다. 추사가 유배에서 풀려났을 때는 안동 김씨가 득세하던 시절이라 관직에 복직하지 못하고, 과천에서 은거하다 생을 마쳤다.

추사는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었고, 실학과 금석학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1816년에 추사는 북한산에 있는 진흥왕 순수비를 판독하여 그 전까지 잘못 알려졌던 것을 고치게 했다. 또한 유교와 불교를 무시로 넘나들었고, 당대의 고승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불교 경전에도 통달한 추사는 백파와 초의 같은 조선 후기의 대선사들과 칼끝처럼 예리한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추사의 이 모든 학문적 성취는 그가 이룩한 추사체란 독창적인 서체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증학을 바탕으로 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필치는 중국은 물론 조선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글씨다.

추사 생가는 예산군 신암면 예림리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 중기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대가집 양반가옥이라 평가받는 이 집은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이 건립했다고 전한다. 80평이 넘는 대 저택으로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와 사당채로 이루어졌다. 안채는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로 완전히 밀폐된 구조로 어찌 보면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벽면에 큼지막한 봉창을 달아 바람이 통하고 빛이 무시로 넘나들게 하는 독특한 구조를 채택함으로서 결코 어둡거나 탁하지 않은 느낌을 준다.


대가집 양반가옥의 전형

방의 앞면에는 툇마루를 놓아 이것을 통로로 서로 내왕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보존 상태가 양호해 당장이라도 살림을 차려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다. 생가 안에는 보물 547호로 지정된 그의 종가 유물이 보관되어 있기도 하다.

생가 곁에는 추사의 무덤이 있고, 그곳에서 100㎙쯤 떨어진 곳에는 추사의 증조모이자 영조의 딸인 화순옹주의 무덤과 정려문이 있다. 화순옹주의 무덤 곁에는 껍질에서 하얀 빛이 쏟아져 나오는 백송(천연 기념물 106호)이 있다.

이 백송은 추사가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에 갔을 때 얻어다 심은 것이라 전한다. 백송은 중국이 원산지로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나무. 관처럼 쓰고 있는 가지에 솔잎이 붙어 있지 않다면 마치 백화나무처럼 보인다. 200년 가까이 되는 수령 탓에 많이 노쇠하긴 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석학이자 예술가요, 시대를 앞서 살다간 선지자인 추사의 고매한 인품처럼 당당하기만 하다.


고려건축의 백미 수덕사 대웅전

추사생가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수덕사는 청도 운문사, 공주 동학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비구니사찰로 꼽는다. 60년대 ‘수덕사 여승’이란 유행가가 만들어질 정도로 오래 전부터 속세의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수덕사의 얼굴은 대웅전이다. 국보 49호 지정된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건립된 것으로, 현재까지 창건연대가 정확히 전해지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대웅전은 미학적 관점에서도 매우 높은 점수를 받는다.

기교나 화려한 장식을 생략해 단순하면서도 균형감을 강조한 맛배지붕 건물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정면에서 보는 것보다 측면에서 볼 때 대웅전의 균형미와 안정감은 한결 돋보인다.


▲ 가는 길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 당진IC로 나와 32번 국도를 따라 합덕 - 예산으로 간다. 합덕을 지나 신례원 3㎞ 못 미처 사거리(이정표가 있다)에서 우회전한다. 1㎞쯤 가면 다시 사거리가 나오는데, 직진해서 1㎞ 가면 추사고택이다. 예산읍에서 서산으로 가는 45번 국도를 따라 15㎞를 가면 덕산온천이 나오고, 덕산온천에서 622번 지방도를 따라 6㎞ 가면 수덕사다. 돌아올 때는 해미IC에서 서해안고속도로 이용한다.


▲ 먹을거리와 숙박

수덕사 입구에 있는 수덕여관(041-337-6022)은 현대 회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 놓았다는 고암 이응로 화백의 본부인이 1950년대부터 운영해오는 식당 겸 여관이다. 초가지붕 아래서 스무 가지쯤 반찬이 나오는 산채정식을 먹는 맛이 남다르다. 식사 후 고암이 새겨놓았다는 이끼 낀 암각화를 둘러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추사고택과 수덕사 사이에 있는 덕산온천은 500년 전부터 욕객이 몰려들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일제시대에 개발되어 해방 후에는 우리나라 제일의 온천관광지로 이름을 날렸다. 덕산온천지구에는 세심천(041-538-9000)을 비롯해 7개의 온천이 있고, 50여 개의 숙박시설이 있다. 백제장(041-337-1651), 수암장(041-338-1048) 등.

김무진 여행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3/03/0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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