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문신

내 아이들이 유치원생이었을 때 한동안 100원짜리 풍선껌에 열광한 적이 있었다. 요령이 없어서 아무리 불어봐도 동그란 풍선을 만들지도 못하면서 왜 그렇게 풍선껌에 집착하나 했더니 이유는 다름아닌 판박이 때문이었다.

껌을 싸고 있는 겉껍질 안쪽에 유행하는 만화 캐릭터가 있어서 팔뚝에 대고 문지르면 모양이 새겨지게 돼 있었다. 내 손으로 한뼘 밖에 안되는 팔뚝에 온갖 로봇 모양을 몇 개씩 새겨서는 목욕할 때마다 지워질까봐 난리도 아니었다. 한번은 내 팔뚝에다가도 새겨놓는 바람에 점잖은 체면에 주위 사람들이 한동안 키득대고 웃어댔던 기억이 난다.

요즘에는 좀 컸다고 잠잠해졌는데 그래도 과자나 껌 등을 샀다가 판박이가 있으면 여지없이 팔뚝에 새겨넣고 있다. 나중에 이 녀석들이 커서 몸뚱이 어딘가에 문신을 하겠다고 나서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스럽기도 했다.

아들녀석이 드라마나 비디오에서 조폭이 등짝 가득히 문신을 새겨넣은걸 보고 나서는 감격에 겨워서 “아빠, 너무 멋있는거 있지. 나도 이다음에 똑같이 해야지” 하는 소리를 듣고 기겁을 했었다.

나도 어렸을 때는 동네에서 좀 논다는 형들이 어설픈 솜씨로 팔뚝에다가 일심(一心) 이라던가 LOVE 등을 새겨넣은걸 막연한 두려움과 동경이 섞인 눈초리로 슬쩍슬쩍 훔쳐보곤 했었다. 그들이 치기어린 말투로 짐짓 과장을 섞어서 “ 먼저 볼펜으로 글씨를 써넣고 바늘로 콕콕 찌른 다음에 잉크를 찍어서….”하는 얘기들을 들으면서 커다란 어른을 보고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던 적도 있었다.

우리에게 문신이란 그리 긍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80년대에 벌어졌던 이른 바 사회정화 운동 당시 조폭들의 몸에 새겨진 문신들이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 됐던 것도 문신은 어떤 특정 계층의 사람들만이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네 목욕탕에 갔다가도 몸뚱이 어딘가에 문신을 한 사람을 보면 괜히 겁을 집어먹고 혹시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조바심을 내는게 다반사이다.

미국의 유명 여배우가 연인과 함께 서로의 이니셜을 문신했다고 해외 토픽에 소개됐던 적이 있었다. 나중에 예상대로 그 커플이 깨졌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내가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서로의 몸에 새겨진 문신은 어쩌나 하는 거였다.

요즘은 워낙 기술이 좋아져서 문신도 레이저같은 걸로 지울 수 있다지만 헤어짐의 아픔이 한번 더 각인되는 수고로움을 거쳐야 하는 게 안쓰러울(?) 뿐이다.

세간에 떠도는 Y담 중에서 문신을 주제로 한 것도 많다.

“남자들이 모여서 각자의 물건에 새긴 문신을 보여주며 크기를 자랑하는 얘기가 있다. LOVE, 사랑해, 일심동체 등등 새길 수 있는 글자수가 많을수록 크기가 크다고 자랑인데 한 남자가 내놓는 물건에는 달랑 ‘우 다’ 만 새겨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비웃어대자 그 남자는 힘껏 발기를 했는데 다들 까무라쳤다. 왜냐하면 발기한 물건에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문신의 이미지도 무지하게 발전을 했는지 젊은 아가씨들도 패션 차원에서 문신을 하고 다닌다. 여름날 젊은 아가씨들의 팔뚝이나 발목에 가느다랗게 문신이 새겨져 있는걸 보면 여간 앙증맞고 섹시한 게 아니다. 요즘은 영구적인 문신이 아닌 1회용 문신이 더 인기인 모양이다. 대담한 여성들 중에는 자신의 은밀한 곳에 장미꽃 등의 진짜 문신을 하는 케이스도 늘어난다고 한다.

내가 어쩌다 알게 된 후배가 하나 있는데 언젠가 그의 등에 새겨진 용문신을 본적이 있었다. 등에 문신이 있어서 일반 대중 목욕탕에는 잘 안간다고 고백을 한적이 있는데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진짜 용문신은 본적이 없어서 실물로 보고싶다고 어거지를 부렸다. 잠시 주저하던 그는 웃통을 벗고 문신을 보여줬는데 등의 절반 정도를 휘감아 도는 용문신이 참으로 장관이었다.

그런데 용문신이 절반 정도만 새겨져 있었다. 의아해 하는 내게 그가 말했다. “문신이 하루 아침에 뚝딱 되는게 아니거든요. 며칠은 해야 되는데 이거 새기던 놈이 감방에 가는 바람에… 걔가 기술이 끝내주거든요. 걔 출소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머지 하려구요.”

입력시간 2003/03/0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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