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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의 문화읽기] 한국영화의 '영화적 고백'

왜 그런 영화가 있지 않은가. 극장에서 봐야 된다는 생각은 거의 없고 나중에 비디오라도 나오면 봐야지 하고 제쳐 두었는데, 도대체 사람들이 왜 그렇게들 많이 보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서 보게 되는 영화 말이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이하 동갑)가 그런 경우였다. 백인 래퍼 에미넴이 출연한 영화 ‘8마일’을 보러 갔다가 시간이 안 맞아서 그냥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티켓을 끊었다. 개봉 17일만에 300만 명이 극장을 찾았다는 영화가 아닌가. 도대체 왜 그리 난리들인지, 그 대중적인 흡인력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전공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완이 지훈의 집에 처음으로 과외 하러 가는 장면에서 이광수의 ‘무정’(1917)이 자꾸만 연상되는 것이었다. 최초의 근대장편소설 ‘무정’은 가정교사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그려낸 최초의 근대소설이기도 하다. 경성학교의 영어교사 이형식이 수업을 마치고 김장로의 집으로 가면서 생각을 한다.

“가운데 책상을 하나 놓고 거기 마주 앉아서 가르칠까. 그러면 입김과 입김이 서로 마주치렸다. 혹 저편 히사시가미가 내 이마에 스칠 때도 있으렸다. 책상 아래서 무릎과 무릎이 가만히 마주 닿기도 하렸다. 이렇게 생각하고 형식은 얼굴이 붉어지며 혼자 빙긋 웃었다.” 난생 처음으로 여학생을 가르치러 가는 이형식의 심리가 참으로 사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이다. 근대문학 초기부터 과외와 관련된 풍경 속에는 그 어떤 낭만성이 자리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노파심에서 고백하는 것인데, 과외와 관련된 야릇한 상상이나 풍속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1960~70년대의 영화를 통해서 제시되었던 하숙집 풍경처럼, 과외를 둘러싼 모습들 역시 문화적인 측면에서 주목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물음을 던져보고 싶을 따름이다.

한국의 영화나 소설에서 과외가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공교육의 몰락과 사교육비의 과다지출이라는 사회적인 문제의 중심에 늘 과외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방송이나 언론에서 고액 과외나 쪽집게 과외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과외는 일부 부유한 계층의 문제로 인식되는 양상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과외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담론은 사회병리학적인 측면에만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었고, 그와 같은 사회적 담론의 압력이 문화적인 상상력에 보이지 않는 억압으로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

영화 ‘동갑’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과외가 현재 20대들의 공통된 체험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가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과외가 가지는 문화적 의미에 주목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동갑’에 대한 젊은 관객들의 반응 속에는 과외와 관련된 경험과 기억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가정교사가 부유함의 상징이었던 1970년대나, 불법비밀과외로 대변되는 1980년대와는 달리, 1990년대 이후의 과외는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일반적인 공통체험이 아닐까.

과외 받아서 대학에 가고 대학 다니며 과외 하는 경험에 내포되어 있는 세대론적인 의미를 한동안 무시해 왔는지도 모른다. 입시나 과외와 관련된 억압적인 기억들을 최대한으로 낭만화하고 있는 영화를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동갑’은 제목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영화이다. 부잣집 아들이고 2년을 꿇어 여전히 고3인 불량학생과 가난한 집의 딸인 촌스러운 여대생 사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작품이다. 남고생과 여대생, 부유함과 가난함, 불량기와 촌스러움이라는 구별이 이분법의 틀 속에서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두 사람에게 공통된 것은 20살 동갑이라는 사실뿐이며, 모든 구별은 빈부의 문제로부터 주어진다. 만약 ‘동갑’이 로맨틱 코미디였다면 순수한 사랑의 힘으로 사회적, 계층적인 차이를 뛰어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갑’은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가능성만을 남긴 채, 모든 등장인물이 떼로 등장하는 액션씬을 통해서 마무리를 시도한다. 멜로 드라마로 끝난 ‘엽기적인 그녀’에 대한 자의식이 작용한 탓도 있겠지만, 수완과 지훈의 장미빛 미래를 그려내기에는 현실이 너무나도 냉혹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영화비평가 이상용이 사석에서 들려준 것처럼, 한국영화의 결말에 자주 등장하는 몹씬(Mob Scene:군중 등장 장면)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음에 대한 영화적인 고백일지도 모르겠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

입력시간 2003/03/0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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